[김형준 時評] ‘진실되고 일관된 레토릭’ 없이 ‘설득’은 없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2025-09-25     news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논쟁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둘러싼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저는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협상팀에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대한 상업적 타당성 보장 문제로 미국과의 이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통화 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 달러를 인출해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북핵 문제 관련해서 이 대통령은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현재와 같은 압박을 계속한다면 북한은 더 많은 핵폭탄을 계속 생산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핵 중단-축소-폐기’의 3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또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비핵화라는 장기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은 분명한 이익이 있다”며 “결실 없는 최종 목표(비핵화)를 고집할 것인지, 아니면 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일부라도 달성할 것인지 문제”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핵무기 제거 대신 당분간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는 내용을 합의한다면 이를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1일 페이스북에서 “상비 병력 절대 숫자의 비교만으로 우리의 국방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무인 복합 체계로 무장한 스마트 정예 강군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중요한 건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고도 했다. 이 대통령은 “‘똥별’이라는 과한 표현까지 쓰면서, 국방비를 이렇게 많이 쓰는 나라에서 외국 군대 없으면 국방을 못 한다는 식의 인식을 질타한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며 “강력한 국방 개혁으로 완전한 자주 국방 태세를 갖춰 나가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자주 국방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한미 동맹을 훼손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고도화로 우리 국민이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위험한 안보 의식’”이라고 거세게 반박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들은 레토릭(Rhetoric)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레토릭은 단순히 평상시 말이나 메시지와는 다른, 특정 목적과 효과를 지닌 전략적 언어 사용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레토릭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 첫째, 설득적 목적이다. 국민들을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게 만들거나, 특정 행동을 지지하게 만든다. 둘째, 전략적 선택이다. 단어, 문장 구조, 비유, 은유, 수사적 질문, 서사(storytelling) 등 모든 언어적 요소가 면밀히 계산되어 선택된다.

셋째, 가치 및 이념 고취다. 특정 가치(예: 공정, 통합, 실용)를 강조하거나, 특정 이념(예: 기본 사회)을 반복적으로 제시하여 국민의 공감을 얻는다. 넷째, 정치적 함의다. 항상 특정한 정치적 맥락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거나, 반대 세력을 비판하거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목적을 가진다. 다섯째, 감정 유발이다. 국민의 감정(희망, 분노, 두려움, 연대감 등)을 자극하여 설득 효과를 높인다.

이런 대통령의 레토릭은 국정 운영 전반에 매우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은 자신의 레토릭을 통해 국정 운영의 큰 그림과 핵심 가치를 제시한다. ‘실용’을 강조하거나 ‘공정’을 내세우는 등 반복적인 레토릭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우선순위를 국민에게 각인시킨다. 이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지를 얻어 정책 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대통령의 레토릭은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결정과 집행에 영향을 미친다. 특정 이념이나 가치를 강조하는 레토릭은 해당 이념에 부합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는 정당성을 제공한다. ‘규제 혁파’ 레토릭은 실제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이어지고, ‘법과 원칙’ 레토릭은 엄정한 법 집행이나 특정 수사 기조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대통령의 레토릭은 주요 현안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이거나 포용적 레토릭은 국민 통합에 기여할 수 있지만, 부정적이거나 공격적인 레토릭은 사회적 갈등과 진영 간 대립을 심화시킬 수 있다. 국정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레토릭은 국민을 안심시키고, 상황을 통제하려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레토릭은 대통령이 펼치는 ‘설득의 리더십’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진실되고 일관된 레토릭은 대통령의 진정성(integrity)을 강화하고 국민적 신뢰를 쌓는데 기여한다. 반대로 거짓되거나 모순된 레토릭은 신뢰를 훼손하고, 대통령의 모든 메시지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과거의 말과 현재 행동이 다른 ‘이중적 레토릭’은 신뢰를 크게 저하시킨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한미 정상이 만나 관세협상을 한 후에 정부는 합의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협상을 했다고 했었다”면서 “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만약에 합의문에 서명했더라면 탄핵을 당했을 것’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관세협상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난번 정상회담 때 도대체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국민들은 궁금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감한 현안인 관세 협상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선 한미 정상 회담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들에게 소상히 밝힐 필요가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북핵 동결은 현실적”이라는 이 대통령 발언에 대해 “북한 비핵화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으로 가기 위한 것이 아닌지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군축’이라는 표현 자체가 곧 북한의 핵 보유를 전제하는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영원히 불가능한 길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주목할 것은 북한 김정은이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의 ‘중단-축소-비핵화 3단계 비핵화론’에 대해서는 “우리의 무장 해제를 꿈꾸던 전임자들의 숙제장에서 옮겨 베껴온 복사판”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 대통령이 제시한 ‘중단→감축→폐기’라는 북한 비핵화 3단계 접근법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나?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레토릭을 토대로 설득의 리더십을 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통령의 주장이 감정적 호소에만 그치지 않고,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적 설명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호소력을 가져야 한다. 시간과 상황이 변해도 핵심적인 가치와 메시지에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말이 자주 바뀌면 신뢰를 잃는다. 이것이 충족돼야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국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는 설득의 리더십을 성공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 방안으로 교류(Exchange)·관계 정상화(Normalization)·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첫 글자를 딴 ‘엔드(END)’ 이니셔티브(구상)을 내놨다. 기존 ‘중단·축소·비핵화’ 3단계론이 핵·미사일 시설 폐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엔드’는 대북관계 전반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레토릭 관점에서 이 대통령의 ‘엔드 이니셔티브’가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논리적으로 타당하고(로고스), 감성적으로 공감을 얻으며(파토스), 신뢰할 수 있는 주체(에토스)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결여되면 ‘엔드 이니셔티브’는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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