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正論] 사법이슈가 내란종식에 저항하는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국민주권정부는 이재명 정부가 표방하는 가치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체와 지향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1일 이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선출권력이 임명권력에 우선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런데 헌법 정신은 선출권력과 임명권력의 차이를 넘어서 입법·행정·사법의 세 부서의 상호 견제와 감시·균형을 담고 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 사퇴의 포문을 연 이후 여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민주당의 정청래 대표는 지난 15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에 대해 대법원장은 책임져야 한다”며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추 의원 주장과 관련하여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나온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는 데 ‘원칙적 공감’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6일 “대법원장의 거취를 논의한 적 없으며 앞으로도 할 계획이 없다”며 “사법개혁에 대한 여러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대법원장 거취에 대해 대통령실이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강 대변인의 발언이 대통령실이 조 대법원장 사퇴론에 힘을 실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명확히 선을 긋고 더 이상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16일 국무회의에서 “선거를 통해서든 임명을 통해서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라며 “마치 권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뜻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선출 권력들”이라며 “사법이란 정치로부터 간접적으로 권한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후 여당에서 조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이어졌다.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헌법 1조의 국민주권주의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 100일 기자회견의 발언이 자칫 사법부에 대한 입법부의 압박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는 걸 차단하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실이 대법원장 사퇴론에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은 시의적절하다. 대법원장 사퇴론은 여권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혐의자들에 대한 엄중한 단죄이며, 내란 모의의 시점과 대상 등 전모를 밝히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 사퇴론으로 이슈가 바뀌면 헌법정신인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이란 대원칙이 훼손될 수 있고 자칫 내란 이슈가 여권의 사법부 독립 침해의 프레임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는 여전히 탄핵 반대론을 고수하고 있는 국민의힘과 이른바 ‘자유우파’ 등에게 그들이 주장하는 ‘정치보복’ ‘독재’ 등 여권에 대한 공세에 명분을 제공할 수 있고, 이 대통령 국정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법부 역시 대법원장 사퇴론이 나온 배경과 맥락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 사퇴론에 우려를 표하는 것이 조희대 사법부의 내란 관련 재판에서 보여준 행태를 감싸는 것이 아님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당시 이재명 후보에 대한 2심 무죄를 뒤집고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은 대법원이 대선에 개입하려 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지귀연 부장판사의 윤석열 전 대통령 석방, 한덕수 전 국무총리 구속 영장 기각 등은 보편적 상식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여권에서 제기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주장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사법개혁이 피할 수 없는 대세라면 사법부 개혁에 사법부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법부가 배제되는 사법개혁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민주당의 주류인 강성 그룹이 내란 종식을 명분으로 사법개혁을 주장하려면 절차와 명분을 따라야 한다. 대법원장 사퇴와 같은 이슈는 내란 종식을 늦추고 내란 규명에 대한 전선(戰線)과 프레임의 전환을 가져와 야당의 입지를 오히려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내란을 전담하는 재판부 신설 등에 대해 사법부도 화답하지 않으면 논쟁은 격화할 수 있으며, 진정한 국민주권정부는 여론과 민의의 소재에 충실하게 반응하는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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