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담보영업 탈피 ‘첫 시험대’…혁신 신호탄 될까
채용 규모 ‘소수’…참여 범위 ‘논의’ 수익 구조 개선…책임 소재로 담보 회귀 가능성
신한은행(은행장 정상혁)이 은행권 최초로 담보 중심 영업의 한계를 벗어나 산업 전문성 기반의 여신 체계 구축에 나섰다. 이번 변화가 정부의 산업정책 기조와 맞물려 금융권의 근본적 사업모델 전환으로 이어질지, 단순한 일회성 시도에 그칠지 관심이 집중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전일(22일) 첨단 소재·부품과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분석 전문가 공개 채용한다.
이번 결정은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이달 10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서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반성한다”고 밝힌 지 불과 12일 만에 나온 것이다.
진 회장은 이날 ‘국민 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하는 원인은 선구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정확한 신용평가와 함께 산업 분석에 대한 능력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용 대상은 ▲에너지 ▲인공지능(AI) ▲바이오·의약 ▲화학 등 관련 전공자 및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산업 리서치와 심사지원 두 분야 중 선택해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심사지원 분야에서는 벤처캐피털(VC) 경력자를 우대한다고 명시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구체적인 채용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소수 인원을 검토 중”이라며 “세부 역할과 참여 범위는 현재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 전담조직 통한 실행력 확보
신한은행의 이번 시도에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한 인력 충원을 넘어 전담 조직을 신설한다는 점이다.
먼저 ‘초혁신경제 성장지원 전담 심사팀’이라는 애자일(Agile) 조직을 새로 구성해 채용한 전문가를 배치할 예정이다. 애자일 조직은 실행에 중점을 두고 고객 및 시장 테스트를 거쳐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서비스를 개발하는 조직을 뜻한다.
이 조직은 정부가 추진하는 ▲초혁신경제 15대 선도 프로젝트 영역별 연구·조사 ▲관련 우량 기업 발굴 ▲지원을 위한 심사 고도화 등을 담당한다.
산업 리서치 분야 전문가들은 국내외 산업 이수 분석과 신용리스크 및 등급 평가를 수행하고, 심사지원 분야 인력은 산업 동향 분석을 바탕으로 투자 및 여신 관련 의사결정을 지원하게 된다. 또한, 기존 심사역을 대상으로 한 산업역량 교육도 담당해 조직 전체의 전문성 향상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번 전담조직 신설은 기존 은행의 정형화된 심사 체계와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통해 산업 성장성 중심의 여신 업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아울러, 은행 영업모델이 단순 이자 장사를 넘어 산업 성장성 중심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시사한다.
은행 측은 신설 조직 구성원의 역할에 대해 “프로젝트별 연구·조사와 우량기업 발굴·심사 고도화를 전문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해 맞춤형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채용된 전문가들의 실질적 의사결정 범위나 범위나 투자 참여 여부, 제도적 장치 등 구체적인 운영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확인된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제도적 장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단계적으로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전통적인 담보대출은 부동산 등 자산가치에 의존하다 보니 산업 생태계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기술력과 성장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역량이 확보된다면 은행도 고수익 여신으로 수익 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보수적 문화와 충돌 우려는 여전
하지만, 일각에선 보수적 은행 문화 속에서 이 같은 전문가 조직이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산업 전문가들이 아무리 정교한 분석을 내놓더라도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서 보수적 여신 관행에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또한, 과거 금융권이 전문조직 확대를 추진했으나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가 있어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손실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면서 결국 안전한 담보 위주 대출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전문가 영입은 좋지만 이들 판단에 따라 실제 여신 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형태의 장식용 조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신한은행이 채용된 전문가들의 구체적 역할이나 의사결정 참여 범위를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황이라,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위험 회피적인 은행 문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첨단 산업 전문가들 간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첨단 산업 전문가 풀의 한계도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금융업무에 대한 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단기간 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이 담보 중심 대출에서 벗어나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여신 업무로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전문가 영입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에 대한 관리 체계도 함께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