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fps] 부산에서 본 ‘대홍수’…재난의 파도, 흔들린 모성
BIFF 2025 한국영화의오늘 부문 초청작 12월 19일 넷플릭스 공개
《리뷰》
대홍수 / 108분 / 19일 상영회 /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소포모어 징크스가 꽤 오래 지속되는 모양새다. 2013년 ‘더 테러 라이브’로 한국 상업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김병우 감독. 한정된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 심리를 압축 및 ‘폭발’시키는 솜씨가 당시 국내 장르 영화의 진화를 촉발하는 시금석이 됐다. 그러나 그 후 10여 년, 계속해 아쉬운 결과만 뒤따른다. 올여름 개봉한 ‘전지적 독자 시점’도 흥행누적 관객수 106만명과 평단 모두에게서 냉랭한 평가를 받았다. 그런 와중에 신작 ‘대홍수’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오늘-스페셜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됐다. 관객과의대화GV에 참여한 김 감독이 “최최최최종 파이널의 전전 버전”이라 말했듯,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하지만 12월 넷플릭스 최종 공개를 앞두고도 대주제인 모성애를 피상적으로만 다루고 있는 게 다소간 실망스럽다.
―소행성 충돌로 녹아내린 빙하. 바닷물이 지구를 삼키며 아파트 저층까지 물이 차오른다. 인공지능AI 연구원 안나김다미 분는 아들 자인권은성 분과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집채만 한 파도와 연쇄 가스 폭발이 이어진다. 구조 임무를 띤 인력보안팀 희조박해수 분는 인류의 미래인 “새 인류”를 위해 모자母子가 꼭 필요하다며 이들을 헬리콥터가 있는 옥상으로 인도한다.―
전반부는 재난물의 관습을 충실히 따른다. “밖이 수영장이 됐다”는 아이의 말이 불러일으키는 불안, 베란다까지 차오르는 물, 특히 아파트 전체를 덮치는 파도의 스펙터클은 오직 극장에서만 체감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다. 계단 중앙을 가로지르며 솟구치는 물기둥 역시 장르적 쾌감을 선사하는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이런 대형 볼거리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다시 말해 ‘대홍수’는 집에서 보면 그 야성이 거세된 극장용 영화다.
영화는 단순한 재난 묘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보도자료에 소개된 본작의 장르는 ‘SF’ 재난 블록버스터. 곧 방향을 틀어 모성이라는 소재를 SF물에 걸맞게 취하려 든다. “10년 전 누나가 아이를 낳았는데,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고 과연 이게 무엇인지 싶었죠.” 김 감독의 말이다.
다행히 초반에는 아들을 향한 안나의 구체적 행동과 감정만으로 모성애가 충분히 쌓인다. 주사기가 등장하고, 주사기를 잃어버리고, 엄마는 동분서주한다. 그러나 이 모성은 각종 반전으로 점철된 후반에 갈수록 극의 유일한 동력으로 점차 위치가 공고해짐에도 불구, 정작 그 표현 방식이 ‘엄마니까’ 내지 ‘엄마라서’라는 도식에 갇히고 만다. 자인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플래시백마저 단편적 몽타주에 그쳐 설득력이 더더욱 약화되며, 마침내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란 오래된 정의定義만이 남는다. 감독이 남자라서 이성異性의 모성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장르물과 드라마 사이에서 그만 길을 잃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길 없는 부분이다.
배우 김다미는 이러한 한계를 온몸으로 메우려 한다. 2022년 촬영 당시 서른도 안 된 나이. 그렇지만 6살 아들이 있는 엄마를 연기했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에 절박함을 실으며 감정을 토해 낸다. 입가 근육의 미세한 떨림과 배경인 파도 소리가 서로 공명하는 순간에는, 배우가 계산하지 않았음에도 의외의 명장면이 탄생했다. 다만 이야기 전개 면에서 전작 이미지가 겹쳐 보일 때가 있고, 이에 몰입이 확 깨지기도 한다. 희조 역의 박해수는 김다미와의 합이 썩 잘 어울린다. 또한 순간순간 본인만의 톤으로 캐릭터에 전사를 집어넣는데, 이렇듯 두 배우가 헌신적으로 만든 장면들이 비록 모성은 흔들렸지만 ‘대홍수’가 무너지지 않게 붙드는 버팀목이다.
아직 솜씨만큼은 확실하다. 빠르고 명쾌한 진행 속에 뽐내기성 롱 테이크 연출도 등장한다. 그러나 감독은 왜 자꾸 세계의 크기를 키우려고만 할까. 종국에 이종 교배가 얼치기로 끝나며 무게 중심까지 잃는다. 영화가 끝나고 ‘모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헌신’ 같은 답 외에, 감독 의도를 확실히 가리킬 수 있는 이 몇이나 될 것인가. 남은 3개월간 이 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몇몇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작으로만 남을 수 있다. 편집의 마술을 기대해 본다.
부산=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