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 관세 압박·장비 규제 이중고...불확실성 재점화
트럼프 “이익 많은 반도체에 더 높은 관세 부과” 지난 7월 반도체 품목관세 최대 100%까지 언급 삼성·SK하이닉스 반도체 장비 中 반입 허가 철회 업계 “양국의 추가 논의 사항 등 예의 주시 할 뿐”
미국의 관세 부과 압박이 재점화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지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법인이 VEU(Verified End User) 승인 명단 제외 소식도 겹쳐 관세 리스크와 대미 장비 수급 규제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게 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품목 관세를 재차 언급하면서 국내 반도체 시장이 시름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 시간) 영국 방문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반도체는 자동차보다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며 “반도체와 의약품의 이익률이 자동차보다 높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 EU의 자동차 관세가 15%로 인하된 데 대해 자국 자동차 업계의 불만이 커지자 반도체 등 주요 수입품목에 대한 추가 압박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7월에도 반도체에 최대 100%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어 국내 반도체 업계들의 긴장감이 고조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2주 내 수입산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으나 실제 발표는 계속 지연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관세 산출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어 업계의 불안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반도체 업계에서는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으나 최근 미국 정부의 추가 압박 정책으로 불안 요인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메모리, 비메모리, 스마트폰 등 다양한 품목으로 관세 부과 대상을 확대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방위적인 관세 압박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영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양사는 HBM4 시장에서 기술 개발과 양산에 속도를 내며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의 불확실한 관세 정책 변화가 공급망과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법인을 VEU(Verified End User) 인증 명단에서 제외하면서 양사는 앞으로 중국 현지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때마다 건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위기에도 직면해있다.
삼성전자는 2021년 완공한 중국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설립에 약 30조원을 투자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D램 공장 신설과 인텔 중국법인(솔리다임)의 낸드플래시 생산 시설 인수 등에 20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양사는 중국 공장을 핵심 생산거점으로 두고 있다.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은 전 세계 낸드플래시 생산의 약 30~40%를 차지하며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의 약 40%를, 다롄 공장에서는 낸드플래시를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산 장비 반입에 대한 규제가 본격화되는 데다 대외적으로 관세 압박까지 가중되면서 양사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간 관세 협상 역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25% 관세 재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며 합의안에 대한 조속한 서명을 압박하고 있으나 양측이 핵심 현안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협상 장기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관세 협상 세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적용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정부의 외교적 협상 강화와 기업의 기술 경쟁력 및 시장 대응력 강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미국 측의 관세 압박 강화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다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현지 생산 확대와 공급망 다변화 등 대응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으나 변동성이 워낙 크다보니 선제적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미국산 장비 반입에 관한 규제를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 만약 100% 관세까지 적용된다면 대미 수출뿐 아니라 해외 주요 고객사와의 거래 조건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양국의 추가 논의 사항을 면밀히 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정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