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금산분리 완화 요구…금융권 찬반 갈려
진 회장 “금산분리 개혁 불가피” 모험자본 시장 확대 vs 금산분리 원칙 훼손 우려 팽팽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공식 제안하며 금융권의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탈(CVC) 사업으로의 진출을 요구했다. 혁신 자금 공급 확대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 안정성과 감독 공백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진 회장은 1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민 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해왔다는 비난을 받아들이지만, 우리나라만 예외적으로 CVC 금산분리를 유지하고 있어 금융 대전환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 벤처투자 생태계 변화 필요
금융권은 CVC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특히, CVC는 지주회사가 벤처투자를 위해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 자회사가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형태다.
CVC가 모기업의 사업 및 투자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 구조로 운영되는 만큼, 은행의 산업 분석 역량과 자금력이 결합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구글벤처스와 인텔캐피탈, GM벤처스가 대표 사례로, 초기 스타트업 육성에 이바지했다. 일본도 미쓰비시UFJ와 소프트뱅크 등 복합형 CVC가 활발하다.
해외에서 활발하게 운용되는 것과 달리, 국내는 CVC 관련 특별한 규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어 기업들의 CVC 운용에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선 대기업 일반 지주가 조건부로 CVC를 보유할 수 있지만, 금융지주는 금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배제됐다. 현재 은행권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주요 수단은 벤처펀드 출자나 계열 증권과 캐피탈사를 통한 간접 투자에 국한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지주회사는 177개로 전년(174개) 대비 소폭 증가했으며, 2023년 5월말 기준 일반지주회사 소속 CVC는 총 12개사에 불과하다. 2021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가 제한적으로 허용됐으나, 여전히 금융지주회사는 엄격한 금산분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
특히, 금융권에선 부동산 중심의 담보대출에서 벗어나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 압박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제기된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 조정과 CVC 투자규제 완화 요구도 같은 맥락이다.
진 회장이 “금융회사가 혁신 기업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규제완화를 요청한 것도 이런 체계를 조정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이날 진 회장은 구체적인 협력 방안으로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이 5000만 원 투자하면 은행이 5억 원 투자한다”는 방식을 제시하며, 이를 스타트업 자금 조달의 새로운 모델로 제안하기도 했다.
◆ 금산분리 완화 시 ‘시장 왜곡·부실 리스크’ 우려
반면, 성급한 규제 완화가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금산분리 완화가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벤처투자의 전문성 없이 자금력만으로 시장에 진입할 경우 투자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금융지주가 직접 CVC를 설립할 경우 대규모 자금이 유입돼 자본 쏠림과 시장 왜곡이 불가피하단 시각도 제기된다.
해외 실패 사례도 경고음을 울린다. 미국은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당시 대기업 계열 CVC의 70% 이상이 철수하며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투자 기업과 전략적 연계 없이 단기 수익성만 추구한 결과였다. 일본 역시 은행계 CVC가 경기 침체기에 ‘좀비기업’에 자금을 투입하며 부실만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감독 공백 역시 우려된다. 현행 감독 체계는 금융회사의 펀드 출자와 대출은 관리할 수 있지만, CVC 형태로 벤처에 직접 투자하는 구조는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과 내부거래, 계열사 편법 지원 등이 현실화될 가능성도 크다.
미국과 일본은 각각 투자 공시 의무와 출자한도, 사후 모니터링 장치 등 안전판을 두고 있지만, 한국은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다. 이처럼 금융권이 직접 모험자본에 뛰어들 경우 산업 성장 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감독과 통제가 없다면 시장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을 통제해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원칙이다. 외부자금 유치와 관련된 운용규제는 금산분리 원칙의 예외로 기존 허용된 규제 한도의 범위 내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단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진 회장 발언은 국내 모험자본 공급을 늘리는 현실적인 방안일 수 있으나, 동시에 금융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잠재적 리스크도 있다”며 “통제 장치 없는 규제 완화는 추가적인 부실을 키울 수 있기에 혁신 지원과 금융 안정 사이의 균형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CVC 규제 완화는 결국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시장 독점력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며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오히려 해칠 수 있는 만큼 벤처투자 전문성 확보와 리스크 관리 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