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ELS·LTV 제재로 10조 과징금 직면
ELS·LTV 과징금 최대 10조원 “정책·시장 괴리 축소 보완책 필요”
은행권이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와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 담합 의혹 등에 대한 정부의 이중 제재로 10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제재에 직면했다. 금융당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강경 대응이 업계 전반의 자본건전성과 대출 여력을 동시에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당국은 ELS 불완전판매 사안과 관련해 판매액 기준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확정하고, 자율배상 이행 여부에 따라 감경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5대 시중은행의 2021년 홍콩 H지수 기반 ELS 판매금액은 총 16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로 ▲KB국민은행(8조1972억 원) ▲신한은행(2조3700억 원) ▲하나은행(2조1183억 원) ▲NH농협은행(1조9322억 원) ▲우리은행(413억 원) 순으로 파악된다.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과징금 산정 기준인 판매금액을 적용할 경우 최대 50%까지 부과될 수 있어 단순 계산 시 총 8조 원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KB국민은행은 관련 배상 비용으로 약 8600억 원을 충당부채로 인식했으며, 업계에선 최대 9000억 원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NH농협은행도 분쟁조정위원회 대표사례 기준 최종 배상 비율이 65%로 가장 높고, 기본 배상 비율 또한 KB국민은행과 함께 40%로 최고 수준이다.
반면, 하나은행은 최종 배상 비율이 30%, 기본 배상 비율이 20%대로 상대적으로 낮은 부담 구조이나, 앞으로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위험가중자산 반영이 확대될 경우 추가 압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LTV 담합 의혹에 따라 최대 2조 원, 국고채 담합은 7조~8조 원 수준의 공정위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금융권은 “공정위가 금융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담합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 은행 대응 기조 엇갈려…신속·협조 VS 신중·강경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가 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질서 확립 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견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율배상 노력을 감안해도 제도 개선과 엄정한 제재 없이는 시장 신뢰 회복이 어렵다”며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도 중요하지만, 투자자 보호와 공정 경쟁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주요 은행의 대응 기조는 크게 신속·협조론과 신중·강경론 등 두 갈래로 나뉜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며 투자자와의 합의를 조기 마무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자율조정 동의율이 높고 배상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만큼, 금융소비자 보호 기조를 강조하며 사태 진화에 서두르는 모습이다. 특히, KB국민은행의 경우 투자자의 약 97%가 배상안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그 외 은행들은 당국의 최종 결정을 지켜보며 대응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경우 판매금액과 과징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아직 적극적으로 움직일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정위 최종 결정을 지켜본 뒤, 결과에 따라 행정소송 가능성까지 검토하겠다”는 강경 기조를 내비쳤다.
◆ 자본건전성·금융중개 기능 약화
은행권 일각에선 중첩된 부담이 금융중개 기능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과징금이 단순 비용을 넘어 위험가중자산 증가로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악화시키고, 이는 곧 대출 여력 축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배상과 과징금, 위험가중자산(RWA) 반영까지 겹치면 자본 건전성과 금융중개 기능 모두 위축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와 제재 수위 사이의 간극이 시장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확대와 서민·중소기업 지원 강화를 요구하는 동시에, 자본 여력을 제약하는 고강도 제재를 추진하면 실질적 금융지원 능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단기적 제재와 중장기적 금융 안정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시스템 리스크 시험대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들은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책임과 역할을 나눠 지되, 실물 경제의 흐름을 막지 않는 현실적 조정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이 의도한 정책 방향과 현장의 실행 여건이 점점 엇갈리는 상황”이라며 “결국 정책과 시장의 괴리를 줄이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