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여행, 지역 화폐 안 쓰면 바보?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지역 화폐를 안 쓰면 바보네”
최근 강릉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자의 아내가 한 말이다. 지난 8월 오로지 ‘강릉페이’ 카드 한 장 만을 들고 다녀온 강릉은 지역화폐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인상이었다.
강릉은 지난 2020년 1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보호, 지역 내 소비 촉진을 위해 ‘강릉사랑상품권’을 도입했다.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상품권을 구입하는데 10%의 할인을 제공해 인기를 끌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 및 정부의 민생 지원금 지급과 함께 ‘강릉페이’가 도입돼 현재 누적 발행액이 수천억원에 달한다. ‘관광 도시’답게 방문객들도 강릉페이를 활용할 때 지역민들과 차별없는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취재(여행)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역시 ‘사용성’이다. 아무리 혜택이 좋아도 쓸 곳이 없다면 계륵일 뿐이니까. 하지만 강릉페이는 사용할 수 있는 곳보다 사용하지 못하는 곳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
강릉에 도착해 점심을 먹기 위해 계획없이 들어간 ‘초당 두부 마을’의 한 두부 요리 전문점에서도 당연하게 강릉페이가 거래됐다. 이어 월매출이 억대는 우습게 넘어갈 듯한 인테리어의 로컬 커피숍에서도 강릉페이 사용이 가능했다.
여행 중 반드시 한번은 들르게 될 편의점이나 주유소, 심지어 펜션에서도 강릉페이 결제가 가능하다. 심지어 펜션 주인 아주머니는 본인이 강릉페이에 가입한 것을 모르고 계셨을 정도다.
정확하게 말하면 펜션은 보통 예약을 통해 미리 결제하기 때문에 강릉페이를 현장에서 굳이 사용하지 않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이외에도 직접 사용해본 것은 아니나 ‘택시’에서도 강릉페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놀란 부분은 혜택이다. 강릉페이는 기본적으로 결제시 8% 캐시백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펜션에서 10만원을 결제했다면 8000원을 ‘강릉페이 캐시’로 돌려받을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고, 숙소에 짐을 풀고 차를 저녁을 먹고 확인해보니 15000원 정도의 캐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쌓인 캐시는 강릉페이 앱을 통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적립 캐시 왼쪽의 ‘사용’ 버튼을 누른 후 ‘전액 사용’을 누르고 ‘캐시 사용’을 누르면 10분 안에 강릉 페이 실물 카드로 결제하는 건에 캐시가 우선 사용된다.
문제는 캐시 사용분도 다시 캐시가 적립된다는 것. 캐시백 지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썩히기 아까운, 유의미한 양의 캐시가 적립되니 소비를 멈추기(?) 어려웠다. 다행히 적립 캐시의 월 한도는 30만원이라고 한다. 물론 기자는 한 번의 여행에 375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출하기는 어려워 울며 겨자먹기로 강릉을 떠나긴 했지만.
강릉 모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매일 수 차례, 여러 손님들이 지역화폐 사용 여부를 묻고 강릉페이로 음식값을 결제한다”라며 “(실물)카드를 활용해 일반 신용카드처럼 결제하기 때문에 굳이 지역 주민들은 사용 여부를 묻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 오는 9월부터 캐시백이 13%로 늘어난다. 민생 회복 지원에 총력을 다 하고 있는 정부가 국비로 8%를 지원하고, 강릉시청에서 지방비 5%를 들여 캐시백을 지급한다. 특히 이는 전국 모든 지자체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존에는 강릉시가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해 6%를 지원하고 정부가 2%를 지원했다고 한다.
강릉시청 관계자는 “기존에는 지자체마다 재정자립도 등에 따라 캐시백 할인 혜택이 상이했던 것으로 알고 있고 강릉시는 발행 규모를 월 100억원 정도로 계산하고 매달 약 8억원을 집행하고 있다”라며 “지역 상권 활성화와 민생 회복을 외치는 정부 정책에 따라 9월부터는 전국적으로 13%까지 혜택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사용처나 혜택 등 장점이 많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온라인 사용처가 적다. 강릉시는 최근 ‘땡겨요’와 협업해 강릉페이를 온라인에서 편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땡겨요에 입점한 음식점의 수가 적어 아직은 없느니만 못한 수준이다.
또 대부분의 숙박업소들은 온라인 예약을 통해 결제까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네이버나 야놀자, 여기어때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는 고객들은 강릉페이를 활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자가 머문 숙소와 주변 펜션들은 강릉페이 가맹점으로 현장 결제가 가능했고 여행객 입장에서 가장 큰 폭의 캐시백을 받을 수 있는 숙소에서의 캐시백 혜택을 놓친다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강릉페이 앱은 캐시 충전과 페이 사용의 기능은 충실하고 편리하게 구현돼 있으나 ‘소비자가 이용하는’ 가맹점 찾기 아이콘이 ‘가맹점들이 활용하는’ 가맹점 전용 아이콘과 구분없이 섞여있어 복잡하고 불편하다는 인상이다. 특히 최근 어르신들의 키오스크 사용 문제가 사회적 어려움으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유저인터페이스(UI)의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파이낸셜투데이 최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