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전환사채 콜옵션, 지배주주 편법 지분 확보 우려
한진이 최근 전환사채(CB) 콜옵션을 특수관계인에게 매도 청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현민(조에밀리리)사장 등 지배주주의 편법적 지분 확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진은 2023년 7월 발행한 제109회차 사모 전환사채의 일부를 회사가 아닌 특수관계인인 조현민 사장과 경영진 등 5명에게 매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해당 전환사채는 전체 발행 규모의 0.1%, 약 3000만 원에 불과하지만, 계약상 발행회사는 최대 27.51%까지 제3자 지정이 가능한 구조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이번 콜옵션 제3자 지정이 발행회사에 실질적 이득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배주주 일가가 저가로 회사 지분을 취득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진은 2023년 7월 유진투자증권을 대상으로 300억 원 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했으며, 만기는 5년, 발행 1년 후부터 주당 1만9170원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계약상 한진은 2024년 7월 24일부터 2026년 1월 24일까지 해당 사채의 27.51%를 한도로 발행회사 또는 발행회사가 지정하는 제3자에게 매도청구할 수 있는 옵션을 보유한다.
문제는 이번 특수관계인 대상 매도 청구 시, 전환가격이 주당 1만8630원으로 한진 주가 (2만850)원 대비 약 11% 저렴하다는 점이다. 총 27.51%까지 제3자 지정이 가능하므로, 특수관계인은 추가 지분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취득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경영상 목적보다는 지배주주의 편법적 지분 확보 수단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과거 기업들은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시 콜옵션 부여와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등을 통해 지배주주의 지분 확대에 활용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시장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했다.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발행을 전면 금지했고, 2015년 공모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2021년에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부여되는 콜옵션 한도를 발행 당시 지분율 이내로 제한하고, 사모 전환사채 리픽싱 시 상향조정을 의무화했다. 2022년에는 전환우선주에도 동일 규제를 적용했으며, 2024년에는 콜옵션 행사자 지정·제3자 양도 시 주요사항보고서 공시 의무를 추가하고, 리픽싱 최저한도 미만 적용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했다.
한진 사례는 과거 현대엘리베이터 사건과 유사한 양상이라는 게 경제개혁연대의 해석이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콜옵션 부 전환사채를 발행한 뒤 일부를 조기 상환하고, 인수한 자기전환사채 콜옵션을 지배주주에게 유상 양도함으로써 지분 확대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진은 이번 사례에서 발행회사가 아닌 지배주주 일가에게 매도해줄 것을 청구, 사실상 콜옵션을 무상 양도한 것과 유사하다.
이번 사건은 전환사채 발행 목적과 지배주주 이익 간 괴리가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시장 신뢰와 공정성을 위해 보다 엄격한 규제와 공시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러한 편법을 그대로 방치하면 한진은 더 큰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지배주주 일가에게 저가 지분 취득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며, 다른 회사들도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금융당국은 전환사채의 당초 발행 목적에 부합하도록 매수청구권(콜옵션)을 행사할 시 발행회사에게만 매도할 수 있도록 한정하는 등 조치를 취해 콜옵션이 제3자에게 무상 양도되지 않도록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