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政評] 한미 관세 협상, 시간과 전략의 시험대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15%의 관세율을 관철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서는 관세율이 낮을수록 유리하지만, 관세율의 현실적 마지노선은 15%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7월 11일 발표한 ‘2025년 하반기 수출 전망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10대 수출 주력 업종 영위 기업 150개사)의 92.0%가 미국의 관세 인상률이 15%를 초과할 경우 감내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은 나름대로 선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상황이다. 협상을 위해서는 우선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조차 순탄하지 않다. 위성락 안보실장과 루비오 국무장관 간 면담 계획이 무산됐고, 2+2 회담 역시 취소됐다. 루비오 장관은 위 실장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호출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점을 세 차례나 전화로 사과했다고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에서는 단 한 차례의 회담 무산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두 회담이 연이어 취소 혹은 연기된 것은 현재 한미 외교가 정상 범주를 벗어났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면 상황이 달랐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한미 간 관세 협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현 정부의 협상 자세이다. 외교란 상대를 설득해 일정한 양보를 끌어내고, 우리도 적절한 수준에서 양보하는 상호 조정의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 수립 시 우리 입장에서만 사안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의 태도는 지나치게 ‘우리 중심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23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농산물 품목인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은 협상 카드로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외교 협상에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까지 현실적으로 ‘방어’가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물론 협상 초기에는 일정 부분 ‘문을 잠그는 전략’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미 FTA에 근거해 상호 관세 부과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제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역시 협상 초기에는 이와 같은 접근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 불가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시한이 촉박한 상황에서, 이런 식의 ‘우리 중심적’ 주장을 하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된 전략이며, 외교의 기본 원칙에서 벗어난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이 결국 미국과의 회담 연쇄 무산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상당 기간 미국과 협상을 이어왔다. 물론 우리는 그럴 여건이 아니었던 점도 분명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돌발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인해 국정 운영이 정상 궤도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조기에 협상에 나서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이 있다고 해서 현 정부의 대응에 대한 비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외교를 포함한 정치는 결과로 평가받는 영역이며, 단지 과정에 대한 이해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현 난맥상의 원인이라는 점은 사실이나, 이를 이유로 현 정부의 외교 행보를 당연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남은 시간을 철저히 계산해 미국과의 협상을 외교적 정석에 따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이재명 대통령의 역할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생 문제를 최우선시하며 현장을 찾는 모습은 긍정적이지만, 현재 가장 시급한 과제는 외교를 직접 진두지휘하는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국가에서도 내정은 총리의 영역이지만, 외교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어느 국가든 외교는 최고 권력자의 책임이자 의무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이재명 대통령이 외교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 25일 “협상 품목에는 농산물도 포함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불과 이틀 만의 입장 변화지만, 현실을 수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늦었지만 긍정적인 시그널이라 할 만하다. 이제라도 미국과 현실적인 타협에 나서야 한다. 협상 마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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