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혁신 43년]① 재일동포의 꿈에서 초대형 리딩뱅크까지
재일동포의 금융 열망에서 시작된 민간은행의 출발점
신한은행이 창립 43주년을 맞았다. 1982년 국내 최초 민간은행으로 출범한 신한은행은 금융 소외 계층을 향한 실용적 금융에서 시작해 디지털과 글로벌을 아우르는 ‘리딩뱅크’로 발돋움했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는 신한은행의 발자취를 짚어보고 대한민국 금융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신한은행이 1982년 7월 7일 문을 연 지 올해로 43주년을 맞았다. 금융보국(金融報國) 이념 아래 국내 최초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신한은행은,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전략을 앞세워 ‘초대형 리딩뱅크’로 도약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대한민국 금융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신한은행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의 공동체 금융에서 출발한다.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재일동포들은 사업 기회는 있었지만, 금융권의 차별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귀화를 강요받거나 일본인 보증인을 요구받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담보 조건도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 재일동포의 염원이 만든 최초 민간은행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오사카 쓰루하시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던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은 재일동포들과 뜻을 모아 1955년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설립했다. 이 조합은 재일동포들에게 실질적인 금융 지원을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1968년에는 예금고 100억엔(약 944억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이희건 회장은 동포 기업들의 한국 투자 기반을 마련하고자 1974년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를 설립했다. 이어 1977년에는 단기금융회사인 ‘제일투자금융’을 출범시켰다. 당시 외환 자유화 이전이라 해외 자본으로 은행을 세우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제일투자금융은 교민은행의 전초기지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 8월 10일 영업을 시작한 제일투자금융은 재일동포들의 숙원이었던 국내 금융 진출의 초석이 됐다.
정부가 2차 오일쇼크 이후 민간은행 설립에 열린 입장을 보이자, 신한은행의 설립은 급물살을 탔다. 1981년 4월, 마침내 은행 설립 허가를 획득했고, 같은 해 7월 준비법인인 ‘신한금융개발’이 설립됐다. 이희건을 비롯해 필석, 신격호, 김용태 등 국내외 유력 인사 19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며 설립 기반을 다졌다.
1981년 9월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상호를 ‘신한은행’으로 변경하고, 자본금 규모를 500억원으로 확대한 뒤 10월 한국은행으로부터 은행 신설 내인가(사전승인)를 받았다. 이후 재일동포 341명으로부터 출자받은 자본금 250억원을 납입하고, 1982년 6월 본인가를 취득해 같은 해 7월 7일 명동 로얄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며 공식 출범했다.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희건 명예회장은 “신한은행은 재일동포들의 피와 땀, 조국에 대한 애국 충정이 응집된 결과”라며, “국민을 위한 새로운 민간 시중은행으로서 신뢰받는 경영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 소매금융 선도 전략으로 ‘대중의 은행’ 자리매김
신한은행은 출범 초기부터 대형 은행들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주목받았다. 기업금융 위주였던 기존 시중은행과 달리, 신한은행은 ‘소매금융’ 중심의 소비자 밀착형 서비스를 통해 금융 소외 계층을 끌어안으며 성장 기반을 다졌다.
1991년에는 일부 시장 상권 인근 지점을 중심으로 ‘리테일 서비스 카트기’를 운영하며 고객과의 물리적 거리 좁히기에 나섰다. 당시 신한은행 직원들은 금고가 부착된 전용 카트를 끌고 전통시장 골목을 돌며 상인들에게 동전과 소액권을 교환해주고, 계좌 개설과 금융 상담을 제공했다. 동대문, 청량리, 부산 자갈치시장 인근 지점 등이 대표적인 운영 사례다.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자영업자와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한 이 전략은, 신한은행이 ‘대중의 은행’으로 불리게 된 배경이 됐다.
당시 일부에선 “은행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은행이 먼저 고객을 찾아가는 파격적인 행보는 금융업의 고객 인식 변화를 이끌었다. 신한은행은 “현장을 이해하는 금융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금융업의 기존 관행을 과감히 혁신했다.
같은 해 본점에 설치된 ‘신한고객종합서비스센터’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24시간 고객 응대를 제공했고, 1993년 이를 ‘고객만족센터’로 개편해 본격적인 CS(Customer Satisfaction) 경영 체계를 갖췄다. 당시 생소하던 고객만족 개념을 일본 소니 등 선진 기업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신한은행의 ‘리테일 중심 전략’은 고객 접근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91년 8월에는 국내 최초로 PC 기반 온라인 금융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1993년에는 무인점포 ‘365일 바로바로코너’, 1994년에는 텔레뱅킹 서비스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또한 1992년에는 자동이체 우편신청 제도를 마련해, 고객이 은행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주요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였다.
이처럼 금융 소비자의 일상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간 신한은행의 서비스 혁신은 소매금융 기반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대형 은행들이 기업 중심 금융에 집중하던 상황에서, 신한은행은 서민과 자영업자를 고려한 서비스 강화로 차별화된 성장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 성장의 결정적 전환점은 2003년 조흥은행 인수였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대출 부실화로 위기에 처한 조흥은행을 예금보험공사로부터 3조3,701억 원에 인수하며, 신한은행은 자산 164조 원, 지점 수 946개, 직원 수 1만여 명 규모의 초대형 시중은행으로 도약했다. 2006년 금융위원회로부터 합병 인가를 받은 이후, ‘통합 신한은행’으로 새 출범하면서 규모와 안정성을 동시에 갖춘 ‘리딩뱅크’의 기반을 완성했다.
◆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확장…‘미래형 리딩뱅크’ 진화 중
신한은행은 최근 수년간 디지털과 글로벌을 양축으로 삼아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구축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순이익을 기록하며 6년 만에 리딩뱅크 지위를 탈환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안정적인 실적 흐름을 이어가며 업계 선두를 지키고 있다.
2025년 1분기 기준 신한은행의 순이익은 1조1,28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5% 증가했다. 대출자산 확대에 따른 이자이익(2조2,301억 원)은 물론, IB 수수료와 WM 수익 증가에 따른 비이자이익(2,451억 원)도 함께 성장했다. 특히 IB 부문 수수료는 60% 가까이 늘어나며, 수익 구조 다변화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부문에서는 베트남, 일본, 카자흐스탄 등 전략시장 중심으로 해외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20개국 168개 거점을 확보했다. 신한카자흐스탄은행은 지난해 687억 원에서 1,031억 원으로 순이익이 급증했고, 신한베트남은행도 2640억 원의 실적을 올리며 해외법인 중 가장 높은 수익을 거뒀다. 이에 힘입어 글로벌 순이익 비중은 2023년 19.9%까지 확대됐으며, 올해 목표인 20%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섰다.
신한은행은 2018년 통합 금융 앱 ‘신한 쏠(SOL)’을 출시한 데 이어, 2022년엔 속도와 사용성을 개선한 ‘뉴 쏠(New SOL)’을 선보이며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했다. 맞춤형 화면, 그룹 계좌이체, ‘스토리 뱅크’ 등 사용자 중심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그룹 주요 플랫폼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2747만 명에 이른다.
조직 개편 역시 디지털과 글로벌 성장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고객솔루션그룹과 디지털이노베이션그룹, 기관솔루션그룹 등을 새로 구성하거나 개편해 플랫폼 기반의 영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자산관리(WM)와 기업금융 부문에서도 수익 기반을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더 쉽고 편안한, 더 새로운 금융’이라는 비전 아래, 디지털 금융의 선도자이자 아시아 대표 글로벌 뱅크로 도약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투데이 이정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