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正論] 성공한 정권 위한 당정 관계의 새로운 모델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정권교체 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내란·김건희·해병 특검 등 3특검의 출범, 지난 주 장관 인선에서 보여준 통합·협치의 의지, 남북관계의 일대 전환 시도,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상징하는 민간인 출신의 장관 지명 등일 것이다. 취임 첫 날 여야 지도부와의 비빔밥 회동, 취임 18일만의 여야 지도부와의 오찬 회동 역시 이재명 대통령의 협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쪽으로 기울던 기류도 중동 사태에 직면하여 불참으로 선회한 것도 국익과 유연한 실용 외교로의 변화로 읽힌다.
각각이 다른 영역의 사안들이지만 공통점은 지난 정권과의 뚜렷한 차별성이다. 불과 20여일만이지만 권력교체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실질적으로 국정에 반영되고 진영 대결의 정치구도가 조금씩이나마 바뀌어 나갈 수 있을 때 ‘실용적 시장정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협치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야당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야당의 존재 이유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비판과 견제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 합리적 이성에 기반한 비판이 자취를 감춘지는 오래됐다.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다. 이는 여야 모두 마찬가지다.
야당의 정치지형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정 지역에 똬리 튼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전망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당권의 향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윤석열·김건희가 관련되어 있는 특검이 진행되면서 진영 대결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정부여당이 야당의 상황에 대해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상황에서 정권교체 후 일어나고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실질적 성과와 관행으로 정착되려면 여권의 변화도 전제되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관계 설정이 그 첫 시발이 될 수 있다. 한국 대통령제의 특징은 여당이 대통령이 속한 행정부와 완전히 밀착된다는 데에 있다. 하나의 용어로 굳어진 ‘수평적 당청(당정, 당대)관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연히 국민이 선택한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정권에 대해 여당은 입법과 정책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서 당정 협의라는 특이한 구조가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이 됐다. 그러나 한편 여당은 의회를 구성한다. 국회는 유일한 입법기구로서 행정 사법과 함께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 대통령제의 권력운용원리다. 물론 이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교조적이고 도식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리는 대통령제를 떠받드는 대전제다.
미국의 경우 공천이 상향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별 의원들이 당을 의식하거나 여당 의원이 대통령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상향식 경선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여야 공히 진영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이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가 종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하게 한다.
정권의 결정과 인사에 대해 동일한 지향을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 주권자가 선출한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의 차원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모든 정책과 인사가 100% 흠결이 없을 수는 없다. 어떠한 결정에도 비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건강한 공론장이 형성될 수 없다. 보편적 차원에서 지적될 수 있는 문제조차 기묘한 논리로 비호하고 감싼다면 여야 모두 오십보 백보가 아니겠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참신하고 혁신적인 변화 시도가 의미있는 국정의 결실로 맺어지고 당당하게 야당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우선 여당부터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윤석열 탄핵 반대 당론을 무효화하지 못하는 퇴행적 야당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주 장관 인사에서 보여줬던 파격과 참신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깎아내리기에 바쁜 야당의 모습은 한국정치 프레임 그 자체다.
그러나 여당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유임된 이후 그가 지난 정권 때 양곡관리법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던 부분에 대해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당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이런 지적을 하지 못한다. 국민의힘은 정권의 여의도 출장소가 아니라 돌격대 그 자체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의중에 따라 대표를 내치고, 당이 사실상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국민의힘은 정권이 망하는 진수(眞髓)를 보여줬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소통·협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한 비판이 작동하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게 궁극적으로 이 대통령과의 진정한 협업이 될 것이며 한국정치의 일대 변화의 이정표를 세우며 이재명 정권이 성공한 정부로 만들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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