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셀프상폐' 줄줄이 고배…“공시규제·가격결정 개선 필요”

이달 2차 공개매수 재도전한 신성통상·한솔PNS 한솔홀딩스, 2차도 실패…1·2차 공개매수가 동일 신성통상, 2차 공개매수가 1차보다 78%↑

2025-06-09     최정화 기자
사진=신성통상, 한솔그룹, 텔코웨어 CI

금융당국의 상장 유지 기준 강화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등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되면서 자발적으로 상장을 폐지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상장 폐지를 전제로 진행하는 공개매수에서 연이어 실패하고 있다. 자진상장폐지 영향으로 공개매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해당 시장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9~2024년 9월까지 총 51건의 공개매수와 131건의 주식의 포괄적 교환 중 2022년 이후 발생한 공개매수와 주식의 포괄적 교환 건수는 각각 20건(39.2%), 33건(25.2%)에 달한다. 

지난해엔 ▲쌍용씨앤이(7월) ▲커넥트웨이브(9월) ▲티엘아이(11월) ▲제이시스메디칼(11월) ▲비즈니스온(11월) ▲락앤락(12월) 등 6개사가 자발적 상장폐지됐다. 이중 코스피(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기업은 쌍용씨앤이와 락앤락 두 곳이다.

올해는 이날 기준 자발적 상장폐지에 성공한 기업은 전무한 상황이다. 지난해에도 하반기에 상장폐지 절차가 마무리된 만큼 올해에도 상장폐지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하반기에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자발적 상장폐지 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이날 기준 ▲신성통상 ▲한솔PNS ▲텔코웨어 등 3개사다. 3개사는 모두 코스피에 상장한 기업들이며, 지난달이나 이달부터 상장폐지 절차에 착수했다. 

이중 신성통상과 한솔PNS는 각각 지난해 6월과 올해 3월 1차 공개매수를 진행했으나 실패한 후 이달 재도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 2일 공개매수를 완료한 한솔PNS의 최대주주인 한솔홀딩스(조동길 한솔그룹 회장)는 이번에도 상장폐지에 실패했다. 2차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은 86만4851주로 예정수량인 325만290주의 26.6%에 그쳤다. 1·2차 공개매수가는 동일한 1주당 1900원이었다. 2차 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신 한솔PNS가 3차 공개매수를 다시 시도할지는 미지수다.   

신성통상도 작년 불발된 상장폐지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 1년 만에 공개매수에 재도전한다. 섬유·의류 업종인 신성통상은 의류브랜드 ‘탑텐’과 ‘지오지아’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인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공개매수자로 두 회사 모두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일가가 소유한 회사다. 

신성통상은 이달 9일부터 내달 9일까지 주당 4100원에 주식 2317만8102주(지분율 16.1%)를 공개매수한다. 신성통상이 목표한 지분인 16.1%를 전량 매수하면 염 회장 측 지분은 100%가 돼 상장폐지 요건인 지분율 95%를 넘게 된다. 이날 오후 3시 17분 기준 신성통상 주가는 3925원으로 전일 장마감 대비 30% 상승했다. 

신성통상은 지난해엔 공개매수가 2300원을 제시해 5.9% 응모 지분에 그쳐 상장폐지에 실패한 바 있다. 다만, 신성통상이 이번 공개매수에선 한솔홀딩스와 달리 작년보다 78.3% 높은 공개매수가를 제시한 만큼 상장폐지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신 소프트웨어 기업인 텔코웨어는 처음으로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 중이다. 텔코웨어의 최대 주주인 금한태 대표이사는 지난달 자발적 상장폐지를 위해 보통주 233만2438주를 공개 매수한다고 밝혔다. 

금 대표는 통신 소프트웨어 업종의 성장 둔화와 주가 저평가 등을 상장폐지 이유로 들었다. 여기에 일부 소액 주주들의 상장폐지와 공개매수 요청이 상장폐지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공개매수가는 주당 1만3000원이며 공개매수 기간은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0일까지다. 이날 오후 3시 17분 기준 텔코웨어 주가는 1만2850원으로 전일 장마감 대비 0.7% 하락했다.

신성통상과 한솔PNS, 텔코웨어의 공개매수는 모두 NH투자증권이 주관하고 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개매수에 성공하려면 주가가 하향 추세일  때보다 상향 추세일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 공시규제와 가격결정 관련 제도 개선 필요

자발적 상장폐지 기업들의 공개매수가 연이어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낮은 매수가와 주주 보호 장치 부족, 소액주주들의 반발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상장폐지 공개매수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만큼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제도 개선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M&A를 활용한 자발적 상장폐지 시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의 경우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공시규제와 가격결정 관련 제도를 개선할 것을 제안했다. 

먼저 공시 강화를 통해 경영진 혹은 최대주주와 소수주주 사이에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장폐지의 목적과 대체적인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이유와 상장폐지의 이점과 폐해, 주주에 대한 이익과 불이익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도록 규정해야 한다”며 “공개매수의 대상회사 이사회가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표명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독일에서는 공개매수 대상회사의 이사회가 의견서를 작성해 공시하도록 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시장법 제138조에서 발행인의 공개매수에 대한 의견표명을 규정하고 있으나 자율에 맡기고 있는 점을 짚은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지난 15년간 이사회 의견서가 제출된 국내 공개매수는 1건에 불과하다”며 “이에 대해 최근 개정된 합병 관련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참고해 상장폐지를 전제로 한 공개매수시 이사회 의견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그 내용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최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