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淨見直球] 어떤 확증편향(確證偏向)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얼마전 본란 칼럼에서 필자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다고 썼다. 요즈음 널리 회자되고 있는 ‘확증편향’이란 것도 그런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확증편향 때문에 범죄가 이루어 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신적 장애 때문에 일어난 일인 만큼 죄인은 감옥이 아니라 우선 정신병동에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윤석열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를 관람했다. 지난달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이후 첫 공개 행보로, 대선을 불과 10여 일 앞둔 시점에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영화를 관람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심사가 복잡하다.
영화는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탄핵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 응원해 온 한국사 강사 전한길과 방송인 출신 PD 이영돈이 기획·제작한 것이다. 관람자들은 사전투표를 중심으로 한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전했다. 또 “이번 6·3 대선에서도 부정선거가 확실히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고 한다.
윤석열의 이번 영화 관람은 나름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12·3 사태 당시 尹 자신이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선거 부정’으로 설명한 바 있어, 해당 영화를 통해 이 주장에 다시 불을 붙이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2일 ‘부정선거 의혹 영화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의혹 대부분은 이미 설명했거나 법원 판결로 해소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투개표는 ‘실물 투표’와 ‘공개 수작업 개표’ 방식으로 진행되며, 정보시스템과 기계장치 등은 이를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모든 선거 과정에는 정당 후보자의 참관인 또는 정당추천 선관위원이 참여하며 공정성과 보안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가 적용되고 있다. 부정이 개입될 소지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이 영화의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사전에 따르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존 신념이나 가설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비판적 사고를 방해하고,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 위험은 두 말이 필요없다. 강에 뛰어드는 쥐들의 행렬이 그렇다.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우리는 일찍이 대표적인 확증편향을 경험했다. 지만원이라는 사람의 5.18 북한군 개입설이 그것이다. 말도 안되는 이 주장으로 그는 대법원에서 징역2년의 유죄를 확정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튜브에선 지만원씨를 찬양하는 댓글이 많았다는 점이다. 감옥에 가 있는 지만원을 응원하는 것들이었다. 북한이 그런 위험한(risky) 일을 벌일 만큼 어리석지도 않을 것인데도, 지만원이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북한 특수군으로 왜곡한 혐의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는데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소위 확증편향이었다. “지만원 박사님 즉각 석방하라” “지만원 박사님 말씀이 맞아요. 속히 지 박사님 풀어주세요” “애국자 지만원 박사 말씀이 팩트입니다” 등등.
전 국민의힘 대표 한동훈은 22일 윤석열이 부정선거를 주제로 한 영화를 관람하고, 김건희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는 등 선거를 앞두고 대형 악재가 연달아 터진 것을 겨냥해 “두 분은 (국민의 힘) 발목 잡지 말고 민주당으로 가라”고 쏘아붙였다.
韓은 이날 충북 청주 유세에서 “왜 우리가 밀리고 있나”라며 “계엄의 바다를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부정선거의 늪을 제대로 건너지 못하고, 윤석열 부부와 제대로 절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국민들은 우리를 뽑아주면 친윤 세상이 계속되고, 윤석열·김건희 세상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우리를 뽑겠나”라고 반문했다.
시중 매체들의 지적도 단호하다. “윤석열은 2022년 대선의 승자다. 취임 이후 2022년 지방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자신을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선출한 대선, 자신의 책임하에 실시해 승리한 지방선거가 모두 부정선거였다는 것인가. 2024년 총선 참패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 온갖 실책과 김건희의 명품 백 수수 사건 등에 대한 심판 성격이 컸다. 그런데도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부정선거 운운하고 있다. 대체 어떤 정신세계인지 황당하다. 스스로 대선, 지방선거, 총선 때 매번 사전투표까지 해놓고, 이제 와 사전투표 조작을 주장하는 영화를 보며 음모론에 매달리고 있으니 이런 자기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 내에서도 “윤석열을 다시 구속하는 것만이 답이다” “민주당 1호 선거운동원이냐”는 등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확증편향은 여러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다. 정신장애의 일종인 이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다양한 시각을 수용하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중요한데 쉽지 않은 일이다.
국민의힘 친한계 인사인 김근식이 윤석열의 행보를 분석했다. 결론은 그가 “자기만의 동굴에 그냥 갇혀 있다”는 것. 김근식은 MBC 인터뷰에서 “비상계엄 강행 이후 헌재에서의 억지 변론이라든지, 재판정에서의 태도라든지, 구속 취소된 이후의 대외활동”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이런 주장을 내놨다.
“윤석열은 본인의 행동이나 말이 어떤 의미이고 국민들이 어떻게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정당한 동굴 속에 있다” “부정선거에 대한 확신이 있고 민주당의 ‘패악질’을 계엄을 통해서라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 내에서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하는 사람들은 다 배신자라 하는 등 자기의 행동과 말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논리 구조에 빠져있다” 윤석열이 가끔 보여주는 어퍼컷을 생각나게 하는 분석이다.
김근식은 또 당 대선후보 김문수가 윤석열의 행보에 대해 “영화 보는 것까지 제가 말하기는 적합하지 않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일부 불신받는 점이 있고 다툼이 있다”고 하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김 후보가 그런 애매한 입장이기 때문에 지지율이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전 재산을 바치고 종국엔 가정파탄까지 이르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한다. 가스라이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비극을 맞이하는 경우다. 잘못된 ‘신념’의 포로가 돼 다른 생각을 못한다. 요즈음에도 무슨 무슨 종교단체가 한껏 힘을 자랑하고 있다. 혹세무민에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일반의 무지를 먹고 산다. 나치식 대중 선동 기술도 동원한다. 한 번 하면 거짓말이지만 두 번, 세 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가르침이 경전(經典)이 된 지 오래다.
이미 윤석열의 머릿속에선 부정선거가 진실이 됐다. 비상계엄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도 그를 지지한다고? 윤 어개인(Yoon Again)이라고? 기가 막힌다. 둘, 셋을 보지 못하고 하나만 보는 협견(狹見)이다. 윤석열의 부정선거론은 이재명을 더 큰 표차로 이길 수 있었다는 뜻인지, 자신이 질 것을 거꾸로 이겼다는 뜻인지 그 자체가 애매하고 불분명하다. 무슨 이의제기나 소송이라도 있었나? 어이 없는 이 억지를 어찌하랴? 치료가 필요하다. 혹시 尹이 옳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된 건가? 정말 부정선거가 있었던 것인가? 그 부정선거는 또 누가, 어느 집단이 도모했다는 것인가? ‘신의 작품’이냐고 물으면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에 일반 국민들이 세뇌될 판이다.
신(紳) 얘기 잘 꺼냈다. 지금은 AI가 신을 대신하는 시대라고 한다. 과하게 표현해서 모든 혼란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인공지능(AI) 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진영으로 나뉠 일도, 서로 싸울 ‘건(件)’도 안되는 문제를 놓고 이러니 어쩌겠는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 날 수 있는 AI에 결론 도출을 의탁하는 게 그나마 지혜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컴퓨터에 대한 과신이 아니다. 불신의 늪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저들은 귀를 닫은 지 오래다. 6.3 대선도 부정선거가 될테니 투표를 하지 말자고 한다. 다 같이 투표를 하지 말까?
아집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사고, 어찌할 수 없는 무지몽매를 보면서 생각해 본 궁여지책(窮餘之策)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원까지 했다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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