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택 칼럼] 일본 장기금리 급등, 회복 신호인가 불균형 경고인가
투자자들의 관심이 트럼프 행보, 중국의 대응, 그리고 우리나라 대선에 몰리며 예전보다 일본에 대한 주목도는 줄어든 모습이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과는 결이 다른 통화정책과 이례적인 금리 움직임 등으로 금융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달 20일 기준 일본 초장기 국채인 20년물 금리가 2.54%까지 치솟으며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 부채에 대한 우려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장기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서 벗어난 신호로 보는 긍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 경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본 장기금리의 상승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 변화보다는 수급에 따른 일시적 결과라는 판단이다. 경제 지표들을 살펴보면, 장기 디플레이션 탈출보다는 경기 둔화 국면에 다시 진입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할 때, 긴축 기조를 유지 중인 일본은행의 통화정책도 하반기 이후엔 ‘관망 모드’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금리 급등의 직접 요인: 수급 악화
우선, 초장기물 금리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수급 악화다. 5월 일본 국채 20년물 입찰 결과는 2012년 8월 이후 가장 저조한 수준이었다. 이는 공급 증가와 수요 위축이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7월 선거를 앞둔 일본 정부는 소비세 감면, 현금 지급 등을 추진하며 국채 발행을 늘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일본 보험사들은 올해 일본 국채 비중을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채권을 매도하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
수급 불균형이 더욱 두드러진 것은 일본은행이 전체 국채의 절반가량을 보유하면서도 양적 긴축(QT)을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2024년 8월부터 시작해 내년 3월까지 분기마다 4000억엔(약 3조8201원) 규모의 국채를 축소할 방침이다.
◆경제 지표는 둔화 흐름… 물가 상승은 외생 변수 영향
금리 급등을 단순히 물가 상승 때문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실제 경제 지표들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물가 상승은 엔화 약세와 공급망 변화 등 외생 변수가 주도하고 있으며, 내생적 소비 증가(소득이 늘고, 고용이 안정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져서 자발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것)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올해 들어 일본의 소매 판매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실질 소득이 감소하면서 소비 여력이 약화된 결과다. 일본 정부가 국채 발행을 통해 소비세 감면이나 현금 지원에 나서려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투자와 기업 실적도 반등 신호 미미·불확실성 속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
이러한 흐름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투자나 기업 실적 측면에서 회복 신호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설비투자와 주택투자는 방향성이 엇갈리고 있으며, 기계 수주나 자본재 출하 등 설비투자 선행지표는 오히려 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 실적 또한 완만한 상승보다는 하향 조정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엔저 효과도 약화되면서, 향후 기업 수익성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경기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 등 외부 불확실성 요인까지 더해지며 일본 경제의 전망은 더욱 안갯속이다. 실제로 경제성장률에 대한 시장 컨센서스는 빠르게 하향 조정되고 있다.
경기 모멘텀이 약화되고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일본은행이 유지해 온 정상화 기조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최근의 장기금리 급등은 시장의 민감도를 높인 만큼, 일본은행의 향후 행보는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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