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淨見直球] 국힘의 쿠데타와 ‘꼿꼿 문수’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다들 쿠데타라고 했다. 안철수도 그랬고 홍준표, 한동훈도 그랬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창피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밖에서도 “국민의힘 친윤 지도부가 무리하게 김문수 후보를 끌어내리고 당원도 아닌 한덕수 무소속 예비 후보를 당 대선 후보로 교체하는 것은 정당 민주주의와 상식을 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힘 지도부가 주도한 대선 후보 강제 교체는 지난 10일 전 당원 투표에서 반대가 찬성을 앞서면서 최종 무산됐다. 김 후보를 주저앉히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입당시켜 하루 만에 새 후보로 세우려던 시도가 막판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쿠데타가 진압된 것이다. “쿠데타 시도” “날치기”라는 비판이 당 내외에서 나왔지만 지도부는 후보교체를 강행했었다.
국힘이 대선 후보 강제 교체에 실패하자 김문수는 6·3 대통령 선거에 나설 당 후보로 11일 공식 등록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쿠데타라는 용어에 익숙해져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그 의미를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 뜻이 확장돼 조직내의 권력이나 지배력을 온당치 않은 수단을 동원해 뒤집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로도 쓰인다. 조선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도 바로 쿠데타이자 반정이다.
쿠데타 하면 우선 떠오르는 인물은 박정희다.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이다. 다음으로는 전두환 노태우. 12.12 군사 반란의 주역들이다. 다들 말로가 좋지 않았다. 의롭지 않은 일들을 했는데 끝이 좋을 리 없다.
한때 집권 여당이었던 국힘에서 쿠데타의 유전자가 다시 발현된 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권 재창출을 다짐하며 서로 동지임을 과시했던 당 지도부의 쿠데타를 김문수는 어떻게 바라봤을까. 배신감보다는 허무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김문수도, 권영세-권성동 쌍권 지도부도 서로 배신했다고 악을 썼다. 김문수의 심사는 어땠을까.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저 달이 날 속일 줄---나는 속았네 나는 속았네 무정한 봄바람에 달도 기울고 별도 흐르고 강물도 흘러갔소>
후보직이 날아갔던 김문수를 보면서 생각난 노래, <나는 울었네>의 가사 일부다.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나타나지 않는 연인을 그리며, 이슬에 젖어 달빛에 젖어 밤새도록 울었다는 애절한 노래, 1954년 손인호가 불러 히트시킨 국민가요 애창곡 1, 2위의 노래다. 한국정치를 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편칠 못하다. 누구를 지지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 이럴 수가!” 대체 정치가 무엇인가? 말자들의 직업이아라더니! 결국 정치판은 야바위 판인가?
김문수는 ‘책사’(策士)를 잘 썼다. 일부 국민들은 ‘진상’이라고 싫어하지만 그는 싸움꾼이자 지략가다. 전략적인 용어를 골라 쓸 줄 알고 프로세스를 장악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비서실장을 맡았던 바로 국힘 전 의원 김재원이다. “가증스럽다”는 말을 동원한 그의 재기(才氣)는 섬뜩할 정도다. 쿠데타의 밤에 그는 모든 걸 건(베팅한) 모습이었다. 장삼이사 같은 정치인들이 본받을 만한 ‘어퍼컷’이었다.
김문수는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결국 당의 쿠데타가 제압됐다. 이를테면 당원들의 쿠데타가 이긴 것이다. 그래도 수뇌부보다는 명분을 중시했던 당원들의 역 쿠데타. 이제 “나는 속았다”는 노래는 거둘 시간이 됐다. 심기일전해서 멋있는 선거전을 펼쳐주길 기대한다,
우선 그는 윤석열의 젖을 떼야 한다. 시대착오적이고 유치한 자기과신, 비린내 나는 윤석열의 젖을 떼야 한다. 지금 김문수는 배고프지 않다. 권력에 배 고팠을 때는 고마웠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쇠락해 가던 자신을 노동고용부 장관에 임명해 주었으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법하다. 그러나 의리나 은혜라는 말은 사인(私人)의 단어지 공인(公人)의 것이 아니다.
국힘 쿠데타 과정에 윤석열의 힘이 작용했는지의 여부는 모른다. 윤석열은 후보 바꾸기 쿠데타가 실패한 뒤 김문수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마치자 ‘국민께 드리는 호소’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윤은 “이번 6·3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 체제를 지킬 것인가, 무너뜨릴 것인가 그 생사의 기로에 선 선거”라며 “저는 끝까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김문수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지금 내란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자기 잘못으로 조기 대선이라는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 이래도 되는 건가. 기가 막힌다. 후사를 위해 숟가락 얹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국힘 의원 조경태가 두고 보다 못해 일갈했다. “윤석열은 그 입을 다물라”고 경고했다. 그는 페이스북 글에서 윤석열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라며 “윤을 빨리 출당시키든지 정리해야 한다”고 썼다. 국힘 내부에서는 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윤석열의 출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늘처럼 윤 전 대통령이 결코 선거에 도움 안 되는 공개 메시지를 계속 내면서 당에 관여하려는 상황에서는 출당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철수, 이준석도 윤석열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다들 조경태 같은 옳은 말씀을 내놨다. 김문수가 깊이 새겨들을 충언들이다. 이제 김문수가 대응할 시간이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 “공은 네 코트에 있다”(The ball is in your court)는 말이 상기된다.
지리멸렬한 국힘과는 달리 민주당은 그 기세가 거침없다. 지지도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재명은 유세 첫날 “바로 투입될 유능한 선장, 대한민국의 살림을 책임질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후보는 광화문 출정식에서 “지난 대선 패배 그 이후가 더욱 아팠다. 죄스러움과 괴로움의 무게만큼 더 깊이 성찰했다”면서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더 지독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그는 진영과 이념을 초월한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는 각오도 피력했다.
“저는 민주당 후보인 동시에 내란종식과 위기극복, 국민행복을 갈망하는 모든 국민의 후보로 이번 선거에 임하겠습니다”
김문수는 “꽂히면 빽(Back)이 없다”는 사람이다. 기개 있게 싸우길 바란다. 김 후보는 첫날 유세에서 “풍요롭게 하는 것이 진보지 가난하게 하는 것이 진보인가. 가짜 진보를 확 찢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부산의 뜨거운 열기가 대한민국을 독재 국가로 만들려고 하는 거짓말쟁이 정치인들을 모두 다 활활 태워버릴 것”이라는 극언도 했다. 사람됨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격한 말본새다. 유세의 품위를 좀 높일 필요가 있다.
잇따른 막말과 ‘윤석열 옹호’가 이어지면서 국민의힘 내에서 대선 최대 골칫거리가 ‘김문수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동훈이 상황 정리를 잘했다. 김문수가 우선적으로 참고해야 할 말인 즉, 윤석열 부부와 절연하고 후보 경선 중 한덕수와 단일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는 것이다. 한동훈은 “김문수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 대선은 불법 계엄을 한 윤석열 부부를 위한 대리전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 고집한다는 김문수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고 볼 일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물론 김문수는 승부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당선되면 좋은 일이지만 낙선해도 수치스러운 건 아니다. 지더라도 명분 있고 정의롭게 싸운다면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꼿꼿 문수’라는 레전드로. 12.3 윤석열의 쿠데타로 시발된 대통령 선거는 2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후보 7인의 건투를 빈다. 윤석열이 끼친 그간의 국가적 손실은 나중에 꼭 계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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