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문화·예술, 그리고 사람을 품다…‘가구톡세상’의 작지만 큰 울림 [마이케나스]
가구인에서 지역 사회 문화·예술 서포터로 공동체와 함께 만드는 작은 울림의 축제 배움과 나눔으로 이어 가는 인문학 여정 진심이 머무는 메세나, 그 따뜻한 실천
기업이 문화·예술에 자원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국가 경쟁력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활동의 총칭인 메세나Mecenat. 그 어원은 로마 제국의 정치인이자 후원자였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이케나스Gaius Cilnius Maecenas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이 마이케나스에 빗대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인 상생과 후원을 직접 취재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싱그러운 달 5월, 서쪽 하늘에 노을이 스멀스멀 간질거릴 무렵이면 고요했던 송포들녘은 노랫가락으로 물들어 간다. 한낮의 분주함을 벗어던진 황혼 무렵, 여기저기서 모여든 이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일산신도시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논농사, 밭농사로 한적한 농촌이었던 이 일대의 모습은 이제 도시에 더 가깝다. 그 한켠, 번지수 1477-3에 자리한 대형 명품 종합 가구몰 ‘가구톡세상’의 주차장은 매년 5월 세 번째 금요일 저녁이면 특별한 무대가 만들어진다.
‘저녁노을음악회’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2023년 처음 시작돼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축제가 꽃처럼 피어나는 계절이지만, 이 음악회는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다. 일단 주최가 여럿이다. ‘가구톡세상’을 비롯해 ‘귀가쫑긋’ ‘우함사’ ‘화정회’ ‘구산동 주민’ ‘경인가구협동조합’ 등 지역의 인문학 모임과 동호회가 함께하는 진정한 ‘지역 공동체 축제’이다.
무대에 오르는 출연진들의 면면도 재미나다. 인문학 모임 회원의 잔잔한 포크송부터 우리 가락 가야금 선율에 이어 현란한 라틴 밸리댄스, 기타 동아리의 감미로운 합주, 동네 주민의 진심 가득한 열창, 전통의 숨결이 살아 있는 경기민요, 감성 촉촉 발라드 가수의 무대, 열정 드럼과 색소폰 연주까지 다채롭게 펼쳐진다. 2시간가량 이어지는 음악회는 노을의 붉은 물결과 함께 시작해 별빛의 반짝임 속에 마무리된다.
무대 아래에는 200여명의 관객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 정녕 이 음악회의 진정한 매력은 출연자와 관객의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올해의 출연자가 내년의 관객이 되고, 지금의 관객이 다음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열린 무대이다. 비록 아마추어들의 서툰 실수가 있을지라도 모두가 따스한 미소와 박수로 함께 웃어넘긴다. 깔깔깔 공감의 꽃이 피어난다.
◆문화예술의 열정을 품은 가구인
이 유쾌한 음악회를 기획하고 실질적으로 이끄는 이는 바로 송도현 가구톡세상 대표다. 가구 업계에 발을 들인 지 어느새 40년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현재 명품 종합 가구몰 ‘가구톡세상’ 일산직영점을 비롯해 전국에 17개 가맹점을 둔 이 업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다. 가구 생산·도매업자와 소매업자를 연결하는 B2B 플랫폼 ‘올펀’의 대표이자, 이탈리아 전통 침대 매트리스 ‘알뜨레노띠’를 국내 독점으로 수입해 전국에 공급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왜 음악회를 시작했을까? 준비 과정의 땀과 적지 않은 비용을 감안하면, 혹시 가구 홍보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송 대표는 이에 대해 “그건 전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애초부터 그런 목적이 아니어서 사업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따져 보지도 않았다”고 허허 웃는다.
진짜 이유는 더 순수하고 정겹다. “내 천성이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공부하고, 노는 걸 좋아한다. 그러던 중에 내가 속해 있는 인문학 모임의 회원들이 우리 매장을 방문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 수 있나 고심하다 이 음악회를 기획했다”고 설명한다.
그럼 음악회를 통해 얻은 만족감은? “120% 만족”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는 “일단 모두가 적극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멍석 체질’이 아니라 사람들 많은 무대 위에 나서는 것을 왠지 쑥스러워한다. 그래서 첫해는 출연자 채우기도 좀 어려웠지만, 한두해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선발을 해야 할 정도가 됐다. 고마운 일이다. 출연자도 관람자도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한다”고 뿌듯해한다.
언뜻 봐도 행사에 들어가는 노고와 비용이 적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무대 설치, 음향, 조명, 객석 준비는 물론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 행사를 “나의 작은 노고가 모두의 기쁨으로 바뀌는 자리”라고 말한다. 돈보다 값진 보람이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이유는 차고 넘친다.
◆15년의 인문학 사랑, ‘귀가쫑긋’
송 대표의 문화·예술 사랑은 음악회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귀가쫑긋’이라는 인문학 모임과 함께 하고 있다. 이 모임은 “인문학 공부를 해 보자”는 작은 씨앗에서 출발했다. 벌써 15년 전이다. 처음엔 몇몇 지인들과 시작한 모임이 급속도로 성장해 한때는 회원수가 100명 가까이 늘어나기도 했다.
‘귀가쫑긋’은 말 그대로 ‘귀를 쫑긋 세워 상대방의 말을 잘 듣자’는 의미로, 송 대표가 직접 명명했다. 매달 첫주 수요일 저녁 7시에는 인문학 강사를 초청해 정기 강연을 갖는데, 열성적인 회원들의 참여로 늦은 시간임에도 열기가 뜨겁다. 강의가 끝나면 인근 호프집에서 치맥이 이어진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그 시간이야말로 인문학의 꽃밭이다.
정기 강연 외에도 소모임으로 서양철학반, 동양철학반, 책읽기반, 시공부반, 영어공부반, 미술공부반, 기타 동아리 등 다양한 학습 공동체가 활발히 운영 중이다. 또 매월 한차례씩은 회원들의 정기 모임으로 지역의 명소를 찾아가거나 명인을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그 의미를 더한다. 송 대표가 초대 회장을 맡은 이후 몇몇 회장이 거쳐 갔는데, 올해부터 그는 다시 회장 자리를 떠맡았다. 코로나19로 대면 모임이 어려워지고 온라인 강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회원수가 줄고 모임이 침체되자, 회원들이 ‘다시 귀쫑’을 외치며 그를 회장에 추대한 것이다. 그가 6대 회장으로 돌아온 이후 모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금은 회원수도 늘어나고 열기도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매달 한 차례씩의 강연이 이어져 이제 150회를 넘어 200회를 향해 달리고 있으니, 지역 사회 시민들의 자발적인 인문학 모임으로서는 실로 대단한 기록이다.
◆문화·예술 후원의 손길
송 대표의 움직임은 때로는 잔잔하고도 묵직하면서 은근히 질기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은 일산의 대표적 지역 서점인 한양문고에서 ‘한 달에 한 번 진짜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의를 열었다. 매달 첫째 월요일 저녁, 오지여행가 한비야, 시인 함민복 등 유명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해 시민들에게 인문학 강의를 듣는 자리를 만들었다. 여기에 필요한 강사료 등 비용을 송 대표가 기꺼이 지원했다.
그의 문화·예술 후원은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다. 지인이 책을 출간하면 출판기념회를 열어 주고, 그 책을 수십권에서 백여권까지 자비로 구매한다. 그 책을 주변 사람들과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선물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보인다. 책은 한사람의 땀이기도 하고, 눈물이기도 하며, 때로는 인생 그 자체라는 그의 믿음이 이러한 행동의 밑바탕이 된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과도 꾸준히 교류하며 미술 분야 지원 활동도 펼친다. 자신의 대형 가구 매장 곳곳에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하는데, 이는 매장의 디스플레이 효과도 얻으면서, 화가들에게는 전시 공간을 제공하고 작품 판매의 기회가 되는 상생의 모델을 구축했다.
이 밖에도 송 대표는 독서 모임을 통해 책 읽기를 소홀히 하지 않고, 여러해 전부터는 서당을 다니며 한문을 익히는 등 ‘학이시습지學而時習知’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강화도 사랑, 그리고 소박한 꿈
꽤 오래전부터 송 대표가 특별히 관심을 쏟는 분야는 바로 강화도다. 강화도의 지리와 역사에 심취해 지역 주민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강화도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왜 하필 강화도일까? 그는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 그리고 근세사 등 우리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전쟁을 피해 궁궐이 피란을 가기도 하고, 외세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곳이다. 갑자기 동네에서 뛰놀던 청년이 왕이 되기도 하고, 권좌에서 쫓겨난 임금이 역적 죄인이 돼 귀양살이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 자체가 한반도의 역사”라며 깊은 애정을 보인다.
이제 그의 미래 계획은 무엇일까? “지금 하고 있는 가구 사업이 내가 목표로 하는 궤도에 오르면 강화도에 가서 문화해설사를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얘기를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고 대화하고자 하는 순수한 바람이다.
◆배움과 나눔의 꽃이 피어나는 삶
송도현 대표의 삶은 끊임없는 배움과 나눔의 아름다운 순환을 보여준다. 그의 여정은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며 주변에 그늘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어 여러 생명에게 자양분을 나누어 주는 과정과도 같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공부하고 대화하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그 좋아함이 열정으로, 그 열정은 인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그 사랑은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문화·예술의 향연으로 꽃피웠다. 송 대표가 뿌린 작은 씨앗들은 이제 지역 사회 곳곳에서 향기로운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대형 가구업을 이끄는 바쁜 경영인이지만, 그에게 문화·예술은 삶의 활력소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인문학 등 다양한 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 가고, 음악회를 통해 지인들과 함께 예술의 기쁨을 나눈다. 문화·예술을 통해 공동체 회복의 향기를 나눈다.
문화·예술을 향한 열정은 규모로 결정되지 않는다. 송 대표는 대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진심과 열정으로 지역과 문화·예술을 잇는 메세나의 길을 열어 가고 있다. 잔잔하지만 깊은 그의 실천은, 문화의 온기가 머무는 또 하나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조용히 일깨워 준다.
“배움은 나눌 때 더 풍요로워지고, 나눔은 또 다른 배움으로 돌아온다”라는 송 대표의 철학은 이제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노을 음악회가 별빛 아래서 끝나듯, 그의 문화·예술 사랑은 밤하늘의 별처럼 오래도록 빛날 것이다. 그의 음악회가 그의 여러 모임이, 그리고 그의 따뜻한 마음이, 더 밝게 더 멀리 비치길 기대해 본다.
파이낸셜투데이 임광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