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fps] 세상에 찌들었어도, 용기 있게 “치킨 조키” 외쳐 보자
26일 개봉
《리뷰》
마인크래프트 무비 / 100분 47초 / 14일 언론배급시사회 / CGV 왕십리
흔히 어른 앞에는 ‘찌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하지만 사회에 찌든 어른이라고 과연 처음부터 꿈이 없었을까? 이 점에서 ‘마인크래프트 무비’는 잊었던 꿈과 용기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어른과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중 한 어른은 도피처로 과거의 꿈을 떠올린다. “이게 내가 원했던 일일까?” 스티브잭 블랙 분의 고민은 곧 모든 어른아이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렇게 어릴 적 꿈인 광산에 간 스티브는 채굴 중 신비한 큐브를 발견하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이세계異世界 ‘오버월드’에 도착한다. 모든 것이 네모난 형태로만 구성된 이 세계에서 ‘스티브 월드’를 구축하며 평화를 누리지만, 실수로 지하 세계 ‘네더’와 연결되는 포털을 열면서 위기를 맞는다. 과거 ‘올해의 게이머’였지만 지금은 파산 직전 가게를 운영하는 개릿제이슨 모모아 분은 경매에서 얻은 큐브로 오버월드에 끌려 들어오고, 엄마를 잃고 새로운 동네 처글러스에 적응하던 나탈리에마 마이어스 분와 헨리세바스찬 한센 분, 남매의 이사를 도왔던 중개업자 던다니엘 브룩스 분도 사건에 휘말린다. 20분마다 밤이 찾아오고, 좀비와 스켈레톤이 습격하는 세계. 스티브는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큐브의 일부인 ‘땅의 수정’을 되찾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헨리는 맛감자 발사기를, 개릿은 양동이절곤을 만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싸움을 준비한다.―
시각적 표현은 화려하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특히 원작 게임 특유의 창의성을 적극 활용해 매 장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딱지날개를 펴고 하늘로 솟구치거나, 착륙용 물웅덩이를 만드는 등 게임성을 영화적으로 멋지게 옮겼다. 한편 스티브는 치킨을 만들겠다며 닭에 용암을 붓고는 이를 ‘스티브 용암 치킨’이라 부르는데, ‘게임이 시발점’이라는 암묵적 약속 속에 그 가학성이 도리어 창의적 유머로 승화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고유의 속도감 있는 액션과 대규모 폭발이 보는 쾌감을 더하며, 마지막 전투 부분은 언뜻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혹은 슈퍼히어로물인 ‘어벤져스: 엔드게임’ 중 일부를 생각나게 한다.
스티브가 꿈을 이룬 자라면, 개릿은 바로 그 ‘사회에 찌든’ 자다. 자신을 “루저”, “엉망진창” 그리고 “혼자”라고 자조하며 살아가던 그는 헨리의 가짜 삼촌에서 시작, 조금씩 변화를 거듭한다. 인간 샌드위치 등으로 스티브와 갖가지 유대감을 쌓고, 결국 용기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다는 그의 논리에 감화된다. 이런 교훈적 메시지가 다소 클리셰로 느껴질 수 있는 점이 아쉽다.
현재 영화는 북미에서 역대 비디오 게임 원작 영화 중 역대 최고 오프닝 스코어개봉 후 사흘간 1억 5700만달러에, 지난 10일에는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를 누르고 올해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이례적 인기를 얻고 있다. 10대 열성팬이 영화 상영을 축제처럼 즐기고 있는 것이 이유로, 극 중 스티브가 아기 좀비가 닭을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치킨 조키Chicken Jockey”라 외치는 장면에 환호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대사를 다 함께 외치며 팝콘 등 손에 든 물건을 공중에 던지는 일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치킨 조키는 원작에서 매우 낮은 확률로 등장하는 일명 ‘희귀 몹’. 스티브 역의 블랙이 치킨 조키를 외치는 장면 및 관객이 이에 환호하는 모습까지 모두가 ‘밈Meme’이 된 상황이다. 실제로 어떤 팬은 진짜 닭을 데리고 상영관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일부 극장에서는 경찰까지 출동해 장내 소란을 진정시키는 일도 벌어졌다.
영화 ‘아노라’ 션 베이커 감독의 아카데미어워드 수상 소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차용하자면, 이는 극장 경험이 위협받는 가운데 “집에선 경험할 수 없는 공동체적 경험”에 해당될 수 있다.
당연히 한국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벌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홍보 대행사 흥미진진 측은 “우선 주말에 더빙 시사회를 준비했다”며 “치킨 조키 밈을 어떻게 응용할지 논의 중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 정해진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숙을 최고 덕목으로 여기는 국내 극장 문화 특성상 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혹시 한국에서도 치킨 조키를 외치는 집단 경험이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면, 이것은 게임팬의 공명이 영화팬의 공명으로 전이되는 셈이며, 반달리즘이 아닌 극장 문화의 재탄생으로 기록될 여지가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