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淨見直球] 한덕수의 ‘라스트 댄스’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2025-04-17     news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배구 선수 김연경의 피날레가 아름다웠다. 스포츠 기자(sports writer)들은 그를 ‘배구의 여제(女帝)’라 칭송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김연경은 지난 8일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 5차전에서 소속팀 흥국생명의 통합우승을 확정했다. 챔프전 MVP로도 뽑혔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김연경은 16년 만에 V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그의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오른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대결은 영화보다 더 극적인 승부였다고 한다. 최종 전적 3승 2패. 김연경은 30대 후반 은퇴를 앞둔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기량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배구의 여제’라는 칭송에 걸맞은 완벽한 ‘라스트 댄스’였다. 모든 것을 코트에 쏟아내고 마침내 주인공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말 그대로 ‘박수 칠 때’ 떠났다.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존경이 담긴 예우, 아름다운 은퇴였다. '라스트 댄스'를 화려하게 마친 배구 여제 김연경에 대한 팬들의 축하와 응원의 물결이 뜨겁다. 보고 듣는 것 만으로도 행복감이 생긴다.

김연경의 ‘아름다운’ 댄스와는 달리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온 ‘거친’ 춤이 정치판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대통령권한대행 한덕수의 도발이다.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한덕수는 18일 임기가 종료되는 헌법재판관 문형배·이미선의 후임으로 법제처장 이완규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함상훈을 지명했다. 이 인사 발표는 기습적이었다. 국무위원들도 놀랐다고 한다.

한덕수가 지명한 두 자리는 원래 ‘대통령 임명 몫’이어서 ‘월권’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완규는 윤석열의 최측근으로 이번 내란에 가담했다는 의혹 때문에 공수처에 고발된 인물이다.

한 달 조금 더 지나면 국민들이 새 대통령을 뽑는다. 그때 가서 새 대통령이 임명하면 될 일을 국민이 뽑지 않은 ‘대통령권한대행’이 서두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곧 물러날 ‘권한대행’이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을 지금 임명하려는 것은 차기 대통령의 임명권을 빼앗는 것이자, ‘알박기’를 하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대미통상 외교나 목전에 닥친 대선(大選) 관리에 전념해야 할 시기에, 해서는 안 될 엉뚱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한덕수는 마은혁 등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았다. 작년 12월26일 그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대통령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해야 한다”고 헌재 재판관 임명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얘긴가.

지난 2017년 박근혜 탄핵심판 당시 황교안도 감히 안 했던 일을 한덕수가 한 것이다. 대통령 이명박이 임명한 헌재소장 박한철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지만, 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은 법 이전의 소위 ‘상도의’(商道義)를 지켰다.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고 차기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넘겼었다. 황교안도 가졌던 염치가 한덕수에게는 없다는 얘기.

보수의 논객이라는 사람들조차 한덕수의 행보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경제신문의 주필을 역임했던 정규재는 한덕수가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을 두고 “무능하지만 기회주의적인, 노회한 직업 관료 인생에 대미를 장식하는 화룡점정”이라고 비판했다.

한덕수의 대통령 몫 재판관 지명은 헌법학계 주류 견해와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연세대 법전원 교수 이종수는 2021년 논문에서 “총리는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지 않았고, 그에게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대행자라 하더라도 대통령과 동일한 권한행사는 결코 마땅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대통령이 탄핵소추 됐다면 헌법상 대통령 보좌기구인 총리의 정치적 책임도 무겁다며 “소극적 내지 현상유지적인 권한행사가 마땅하다”고 했다. 이번 일이 있기 전에 내놓은 견해다.

그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한덕수의 대통령 몫 헌재 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직을 참칭(僭稱)하는 것’이라며 “특히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권한대행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60일 간의 선거관리인데, 이 상황에서 더 적극적인 일을 하면 60일 뒤 들어오는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인 방해 행위”라고 평가했다. 또 “국내 어느 헌법 교과서도 권한대행이 새 대통령의 일을 가로채는 식의 참칭은 가능하다고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헌법재판소는 16일 한덕수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의 효력을 일단 정지시켰다.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 김정환이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일치로 인용했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가 재판관을 지명해 임명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한덕수가 재판관 임명을 강행할 우려가 있는 만큼 그에 따른 사법적 혼란을 막기위해 후보자 지명 효력을 우선 정지시킬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에 따라 한덕수가 이완규와 함상훈을 헌재 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행위의 효력은 일시 정지된다. 정지 기한은 김정환이 낸 헌법소원의 본안 선고 시까지다.

한덕수가 끝까지 지명자 임명을 강행하려 한 이유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헌재 판결이 있기 전 헌법재판소에 “권한대행의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지명은 적법하고, 따라서 헌재는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각하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집부릴 필요가 없는 일인데 고집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상하다. 이 눈치 저 눈치를 살피는 이전의 그의 모습과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설마이겠지만, 한덕수의 이번 돌출행동이 윤석열과 그 잔당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면 그는 정말 바보이자 함량미달이라는 분석들이 나온다. 또 역사의식이나 시대정신, 정의감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사람에게 우리 국민들이 50년 동안이나 국록을 주어왔다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마디로 “국민이 너무 비참하다”는 허탈감이다.

한덕수의 이번 도발은 아이러니하게도 한(韓)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국민의힘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민 일반 입장에서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응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짐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될 것이라는 세간의 분석이 그것이다.

모를 일이기는 하지만 더이상 공직이나 후사를 도모할 일이 없을텐데, 한덕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신사로만 알았던 그가 공직의 마지막, 인생의 마지막을 불명예로 장식하는 이유가 뭔가? 무슨 다른 노탐이라도 있다는 얘긴가?

‘삐딱한 보수정론’ 조갑제는 한덕수를 두고 일찍이 “영혼 없는 공무원, 식민지 관료형 공무원의 표상”이라고 평가했던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다. 한덕수의 머리에서는 기능은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영혼(Esprit)을 느낄 수는 없는 것 같다.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는 행위다. 한덕수에게는 이 나라 원로로서 최고 공직자로서 역사에 업적을 남길 충분한 시간도 있었고 기회도 주어졌었다. 그러나 윤석열의 계엄 이후 그가 보인 일련의 모습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기대했던 사람들의 실망이 컸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중에는 “‘땐스’한다”는 말이 있다. 상대가 못마땅하거나 진상짓을 할 때 쓰는 말이다. 경음(硬音)을 써 강조한, 좋은 표현 같지만 사실은 욕이고 경멸(輕蔑)이다. 김연경의 ‘마지막 댄스’는 미국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의 꿈의 무도회(The Senior Prom)에서의 그것처럼 아름다운 것이었다. ‘졸업’이란 뭔가.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 있고 빛나는 꿈이 있으며 미래를 향한 도약을 다짐하는 축복의 피날레다. 이 축복의 자리에 어글리 댄스가 자리잡을 곳은 없다.

한덕수의 ‘라스트 댄스’는 한 달 남짓이면 끝이 난다. 난데없는 돌발행동으로 그가 우리 정치권을, 사법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된 입장에서 하는 당부다. 권한대행의 ‘라스트 댄스’는 우아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아도 좋다. 다만 “‘땐스’한다”는 말만은 듣지 않기를 바라마지않는다. 그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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