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칼럼] 탄핵과 극우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피청구인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된다.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선고문 마지막 부분과 주문(主文)의 내용이다.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와 거의 같다. ‘박근혜’와 ‘윤석열’이 다를 뿐이고, “대통령 파면에 이르는 국가적 손실을”이라는 문장만 첨가됐을 뿐이다.
그만큼 두 전직 대통령의 헌법 파괴행위를 심각하고 중대하게 봄으로써 헌법 파괴 행위의 전범(典範)으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백척의 간두에 섰던 한국민주주의가 복원력을 보여줬다. 12·3 비상계엄의 악몽은 사라졌지만 123일의 긴 기간 동안 한국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회복력 못지않게 광범하게 퍼져있는 극단적 우익이 건재함을 목도했다.
야심한 시각에 무장한 정예병력을 국회에 침투시키면서 윤석열은 야당과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려고 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계엄은 야당에 대한 경고용, 호소용이라는 반이성적 언사를 쏟아냈고, 윤 전 대통령 측은 이를 계엄령이 아닌 ‘계몽령’으로 둔갑시키는 전대미문의 궤변으로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현혹시켰다. 이후 이 논리는 탄핵 반대 세력의 확고한 이론적 무기로 확립됐다. 급기야 집권당이라는 국민의힘 중진과 지도부도 ‘계몽령’을 공당의 강령인 양 공식적으로 채택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해방 공간과 분단 현실에서 맹위를 떨쳤던 극우세력이 시민사회에도 광범하게 퍼져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좁게는 자신들의 정치이익에 포획된 정치꾼들과 왜곡된 종교지도자, 한국사 강사 등의 선동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이러한 선동이 생명력을 지탱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헌재의 선고에 명시되어 있듯이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으로 계엄을 막아낼 수 있었다. 결국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행동으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윤석열을 파면시킬 수 있었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목도했다.
헌재는 포고령 발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광범하게 침해하였으며,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의 기본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시하면서, 그 자체로 “헌법 질서 파괴, 민주 공화정의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였다”고 했다. 나아가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을 위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국회에 군경을 투입한 것은 국회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방해”한 것이고 이 역시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선고문에서 밝혔다.
탄핵 심판 선고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부정되고, 국민주권과 법치국가 원리가 파괴되는 원리는 극우라는 독버섯으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탄핵 국면이 이어지면서 부정선거 음모론의 배후에 북한과 중국이 있었다는 허무맹랑한 사설(邪說)이 반탄 세력에게 교리로 신봉되다시피 했던 현상이 윤석열의 파면과 탄핵국면의 종료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파면 하루 전날은 제주 4·3 항쟁일이었다. 4·3은 아직도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공산주의자들과 공비들의 폭동과 반란이라는 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반헌법적 발상과 반민주주의적인 퇴행이 지지를 받고 탄핵이 기각되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신조의 원인이 단순하게 야당의 이재명 대표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환원된다면 이번 사태의 이면에 깔린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간과하는 것이다.
사법적·정치적 단죄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의 이념적 지형은 언제라도 정치적 사건에 의해 극단적 대결 구도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박근혜의 탄핵 때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상황을 현실로 목격했다.
국민의 민주주의 복원력이 빛을 발한 결과 파국의 위기는 넘겼지만, 극우와 보수가 엉켜있고 혼재되어 있는 반정치적 이념 지형을 해소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든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탄핵 반대자들의 몰역사적이며 반자유주의적 행태는 인권과 기본권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지난(至難)한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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