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대형사고’ 제주항공…모기업 애경그룹 타격 불가피
제주항공, 엔데믹 시대 맞아 현금창출력 향상 석유화학 업황 악화에도 제주항공 실적 뒷받침 ‘제주항공 참사’에 신뢰도·실적 악화 우려 커져
제주항공이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시대를 맞아 탄탄한 실적을 보여오던 중 큰 악재를 맞이했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하면서 제주항공의 이미지 추락과 실적 악화를 피하기 어려워지면서다. 이번 악재로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애경그룹도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30일 소방청에 따르면 전날 무안국제공항에서 탑승자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착륙 중 활주로 외벽에 충돌한 뒤 화재가 발생해 179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번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항공 안전을 총괄하는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기체 제작사인 보잉 등과 함께 블랙박스 등을 토대로 조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다만 사고기를 운영한 제주항공이 사고의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항공 참사 유족 대표단도 이날 무안공항 2층 대합실에서 장례 절차에 대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제주항공과 모기업인 애경그룹에서 부담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겠다”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박한신 유족 대표는 “제주항공 측에 확약서를 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우리의 보험과 마찬가지”라며 “여기에서 이동하는 순간부터 비용이 발생한다. (비용을) 애경그룹이 내야 한다. (애경 측이 부담하겠다는 내용을) 확약서에 명시하기 위해 문구를 3번 정도 수정했다”고 밝혔다.
제주항공도 이날 브리핑을 통해 “필요한 장례 절차에서 유가족들이 원하는 방식과 절차를 존중할 것”이라며 “재보험사와 구체적인 보험금 지급방식 등을 준비하겠다.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고 유족들이 요청하는 시점에 보험 처리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주항공 참사는 모회사인 애경그룹 입장에서도 뼈아프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과 제주특별자치도 합작으로 설립된 항공사다. AK홀딩스(애경그룹 지주사)는 제주항공 지분 50.37%를 보유한 1대 주주다.
애경그룹은 그간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제주항공을 육성해왔다. 2005년 출범한 제주항공은 꾸준하게 성장해오던 중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제주항공은 2019년 연매출 1조3840억원을 기록했으나 2020년에는 연매출 3770억원으로 267.1% 급감했다.
2021년에도 연매출이 2731억원으로 감소했다. AK홀딩스는 경영난에 빠진 제주항공을 구해내기 위해 수차례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6148억원을 투자했다.
모기업의 자금수혈으로 되살아난 제주항공은 화물사업을 키우면서 2022년에는 연매출 7025억원으로 반등했다. 지난해에는 연매출 1조7240억원, 영업이익 1698억원을 기록하면서 팬데믹 직전인 2019년 기록을 갈아치웠다.
호실적은 제주항공이 팬데믹으로 억눌려있던 여행 수요를 겨냥해 선제적으로 단거리 노선 재운항과 신규 취항을 추진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제주항공의 실적 회복은 석유화학 업황 악화로 고민이 컸던 애경그룹에 호재로 돌아왔다. 그간 애경그룹의 실적을 책임져왔던 화학부문인 애경케미칼의 지난해 매출은 1조7937억원으로 전년 대비 17.58% 감소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52.58% 급감한 451억원이다.
생활용품 부문인 애경산업도 중국의 소비침체로 실적을 끌어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백화점 부문 AK플라자가 올해 들어서 1~3분기 내내 분기별 순손실을 냈고 지난해에도 269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이가운데 제주항공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애경케미칼(451억원)과 애경산업(619억원)의 합산을 넘어서며 애경그룹의 든든한 현금 창출원 역할을 해왔다. 또 제주항공은 올해 3분기 누적으로도 매출액 1조4273억원, 영업이익 1051억원을 기록하며 무난하게 지난해 실적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실적 호조에 힘입은 제주항공은 그간 쌓아둔 결손금을 털어내는 작업에 나섰다. 제주항공은 올해 6월말 기준 자본잉여금(자본준비금)은 6336억원, 결손금은 3722억원 수준이다. 이익잉여금으로 배당하기 위해 결손금 해소가 필요하다. 이에 지난 18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자본잉여금으로 결손금을 해소하는 의안을 결의했다.
결손금을 털어내고 배당을 통해 그룹에 자금을 수혈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제주항공 참사로 배당대신 결손금이 더 쌓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주항공은 사고기의 항공보험에 가입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사고 항공기는 모두 10억3651만달러(1조5257억원)의 항공보험에 가입돼 있으며 배상책임 담보의 보상한도는 10억달러(약 1조4720억원), 항공기 자체 손상 보상한도는 3651만달러(약 537억원)다.
금융당국은 사고 여객기가 가입된 항공보험의 간사 회사인 삼성화재를 중심으로 5개 보험사가 사망자 유족, 부상자 등에게 적절하고 신속한 피해보상을 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과 이번 사고의 유가족의 희생자 장례 지원과 함께 보험금 지급을 적극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로 애경그룹 전반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애경산업 생필품 제품에 대한 불매 움직임이 포착됐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정책 당국이 정확한 (제주항공 참사)사고 원인을 규명하려면 최소 6개월, 현실적으로 1년 가까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불안정한 국내 정세 및 경기와 맞물려 이번 참사로 인해 항공 여객 수요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항공업종 투자 판단에서 단기 이익 전망이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신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