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 “신창재 의장, 풋옵션 가격 재산정”…교보 "지배구조 영향 없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매입 가격을 정해 재무적투자자(FI)인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의 주식 24%를 되사야 한다는 국제중재 판정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교보생명 측은 이번 판정이 기업의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일 교보생명은 어피니티에퀴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신창재 교보생명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에 2차로 제기한 중재에서, 중재판정부가 신 의장이 어피니티의 매수청구권(풋옵션) 1주당 공정시장가격(FMV)을 산정할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라는 판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신 의장의 감정평가기관 선임 결정은 풋옵션 가격을 다시 산정하라는 의미다. 이는 앞서 어피니티가 요구했던 41만원이 아닌, 기존보다 대폭 낮아진 수준에서 풋옵션 가격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결정이다.
다만, 신 의장 측은 “이번 판정이 2021년 9월 1차 중재판정부의 판정 내용을 대부분 인정했음에도 평가기관을 선임하라고 결정한 것은 1차 판정을 무시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국제중재는 단 한 번의 판정으로 당사자들 간의 분쟁을 종국적으로 해결하는 단심제로 운영된다.
중재판정이 내려지면 기판력이 발생해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없기에, 2차 중재판정부는 어피니티 청구 내용 대부분을 기각했다. 다만, 신 의장으로 하여금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하도록 결정해 1차 중재판정에 배치되는 판단을 내렸다.
이번 분쟁은 앞서 어피니티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로부터 1주당 24만5000원에 교보생명 지분 24.01%를 사들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어피니티는 2015년 말까지 교보생명이 상장(IPO)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지분을 신 의장에게 팔 수 있는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간 계약을 신 의장과 체결했다.
이후 IPO가 이뤄지지 않자 어피니티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하고 오랫동안 거래 관계를 맺어온 안진회계법인을 감정평가기관으로 선임했다.
이에 신 의장이 “안진회계법인이 산정한 가격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며 이의를 제기하자 어피니티는 2019년 3월 신 회장을 상대로 ICC에 중재를 제기했다.
1차 중재판정부는 2021년 9월 어피니티가 요구한 41만원을 비롯한 어떤 가격에도 신 회장이 풋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고 판정했다. 어피니티가 제시한 가격이 합리적으로 산출된 것이 아닌 만큼 신 의장이 주식을 매수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었다. 1차 중재판정부가 신 의장 손을 들어줬지만, 어피니티는 이에 불복하고 2차 중재를 신청했다.
신 의장과 어피니티의 풋옵션 분쟁 해결의 핵심은 주당가치 산정 절차의 공정성 확보에 있다. 주주간 계약에 따르면, 풋옵션 가격을 사전에 정해놓지 않고 FMV로 한다고 규정하면서 FMV 산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양측이 각각 감정평가기관을 선임해 평가한 FMV의 차이가 10% 이내이면 두 가격의 평균을 행사가격으로 인정한다. 다만, 차이가 10% 이상일 경우 어피니티가 제3의 평가기관 3곳을 제시하고 그중 하나를 신 의장이 택하면 그 평가기관이 제시한 가격이 풋옵션 가격이 된다.
해당 절차에 따르면 신 의장 평가기관 선정 및 가격 제시→ 어피니티의 41만원과 10% 이상 격차→어피니티 제3의 평가기관 3곳 제시→신의장 1곳 선택→제3의 평가기관의 가격제시 형식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시장에선 제3의 평가기관이 산정한 풋옵션 가격이 어피니티의 초기 투자가격인 24만5000원을 초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안진회계법인은 교보생명 주식의 공정시장가치를 1주당 41만원으로 산정했는데, 이는 어피니티 측이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할 당시 교보생명의 IPO 공모 예정가인 18만~21만원(크레디트스위스 산정)과 큰 차이가 있다.
교보생명의 시장가치가 주당 20만원을 넘지 못하는 것도 주요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8월 교보생명이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사주조합과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교보생명 주가는 19만8000원이었다.
이는 풋옵션 분쟁 이후 처음으로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치평가를 받아 산정된 가격이다.
교보생명은 이번 2차 중재판정에도 교보생명의 경영권 및 지배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주요 FI 등이 여전히 신 의장을 신뢰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이번 중재 결과가 교보생명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며 “그간 분쟁 과정에서 일어난 주주 및 기업 가치 훼손을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박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