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 상법 개정 추진에 ‘우려’...“규제보단 산업 활성화 필요”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우리나라 기업경쟁력 낮아...기업 환경 악화되고 있어” 민주당, 12월 4일 경영계·소액투자자 함께 토론회 개최
경제계가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에 우려 입장을 전달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한민국 주식시장 TF(태스크포스)가 2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박일준 대한상공회의 상근부회장은 “민주당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말씀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최근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다”면서도 “규제보다는 적극적인 산업 활성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박 부회장은 “지난 10년간 규제가 강화되면서 우리나라 법제도 국가경쟁력이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 기준에 따르면, 67개국 중에서 14위 정도다”라며 “기업 환경이 그만큼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배구조 이슈는 2020년에 상법 개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어느정도 관련된 규제가 많이 도입됐다”면서 “이번에 4년 만에 다시 상법 개정 부분이 논의 되면서 솔직히 경제계에서는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간담회는 민주당 주식시장 TF가 경제계의 의견을 수렴하고자 마련한 자리로, 경제계에서는 박 부회장과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박성환 한국무역협회 본부장, 강형덕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 김준만 코스닥협회 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재계에서도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하종범 LG 사장 등이 참석했다.
최근 경제계는 민주당의 상법 개정 추진에 대해 경영권이 외국 투기자본에 넘어갈 것이라는 등의 여러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민주당 자본시장 활성화 TF에 따르면, 이날도 경제계는 자본시장 문제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상법 개정 등 방법론적 측면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도입할 경우 형사상 고소 고발이 이어질 것이라는 등의 우려를 전달했다.
다만 이 같은 경제계의 상법 개정 우려에 대해 TF 단장인 오기형 민주당 의원은 “어떤 제도가 절대적으로 옳고 그르다는 건 아니다”라며 “기본적으로 이 사회가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된다는 데서 민주당은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를 들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우리 제도의 보완 방안은 ‘이사회의 책임이 없느냐’는 문제였다”며 “여러 학계 교수들이나 전문가들 얘기는 충실의무 강화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계속 그런 일관된 말씀을 했다”고 설명했다.
오 의원은 특히 두산밥캣과 두산에너빌리티 합병, 고려아연 등의 사례를 들며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다. 반복되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해답을 줘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받고 있다”면서 “민주당은 상법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해법이 맞는지는 논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를 풀어야 된다는 것에 함께 고민을 해달라”고 말했다.
◆소액투자자들, 상법 개정 기대감...정부여당 입장 ‘주목’
경제계에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개정안이 한국 주식시장에 30년 만에 찾아온 ‘대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날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다”면서 “민주당 원안대로 통과된다면 2년 내 코스피 지수가 2배 정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주행동 플랫폼인 ‘액트’의 윤태준 연구소장도 지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상법 개정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국내 자본시장에서 유상증자는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가 가장 두드러지는 상황이기에 주주충실 의무를 확대 도입해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상법 개정 추진 핵심키는 정부·여당에 달려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대략 한달 전부터 정부여당의 구체적인 안을 요구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정부여당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앞서 상법 개정을 주장하다가 최근 상법 개정이 아닌 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바꿨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이사회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원장은 지난 6월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세미나에서 “다수 시장 참여자가 국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로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를 지적해 왔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와 주주의 이익보호’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선회해 전날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주주 보호 원칙을 두는 게 상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라면서 “경제 상황이 엄중하고 이해관계자 합의 도출이 어려운 만큼, 논쟁하기보다 맞춤형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상법 개정과 관련해 내달 4일 경영계와 소액투자자들을 한 자리에 초청해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지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