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새 국면…‘국가 경제∙안보 사안’ 됐다

2024-11-19     한경석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앞서 13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진행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유상증자 철회 의사를 밝히고 있다. 사진=한경석 기자

고려아연과 고려아연의 자회사인 켐코(KEMCO)가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앞서 13일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하면서 고려아연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벌이는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고려아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현재의 경영권 분쟁이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 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때, 또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할 때 산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산자부 장관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한 뒤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에 고려아연은 정부 승인 없이 국가핵심기술을 해외에 매각할 수 없다. 최근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된 점을 고려하면, 고려아연의 해외 매각은 사실상 어려워진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국내 대형 전선 기업인 A사는 2019년 보유하고 있는 ‘500kV급 이상 전력 케이블 시스템 설계·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선정되면서 당시 추진하던 해외 매각이 막혀 2년 뒤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또한, 국내 대형 공작기계 회사인 B사도 보유하고 있는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제조 기술’ 때문에 중국과 일본 기업 등에 적극적으로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 국내 기업에 인수된 바 있다.

더욱이 고려아연이 보유한 국가핵심기술인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은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소재 산업뿐만 아니라 전방 산업인 전기차 산업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외 매각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시장 조사 기업 크레딧솔루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구체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국내에서 중국산 전구체 의존도는 무려 97.5%(한국무역협회 기준)에 달한다.

이번 고려아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향후 MBK와 영풍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20조 8275억원(18일 종가 기준)에 달하는 고려아연의 시가총액과 대규모 인수 자금 때문에 MBK와 영풍의 투자금 회수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고려아연 측은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해외 우량 자산을 먼저 구조 조정해 수익화를 도모하고 분할 매각 등을 활용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또한,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으로 만든 다른 중요 기술의 해외 공유와 수출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 회수에 나설 여지도 있다”며 “고려아연의 현금 창출력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배당 정책으로 막대한 현금을 챙겨 고려아연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MBK-영풍 측은 “고려아연의 국가핵심기술 및 첨단전략기술로의 지정은 전구체 기술이 국가 경제 성장의 원천 중 하나로 입증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며 “글로벌 톱 레벨의 기술력이 꽃 피우도록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입장을 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경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