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깜짝 실적’에도 불안한 이유 [김기성의 재계 포커스]
재고 감소+범용 D램의 공급 감소에 따른 반도체 가격 상승 ‘초격차’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
삼성전자가 2분기에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환호하고 있다. 주가는 단숨에 9만원에 육박하면서 종가 기준으로 2021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장밋빛 예상을 쏟아내면서 ‘10만 전자’, ‘12만 전자’를 외치고 있다. 작년 초부터 줄기차게 제기돼 온 삼성전자에 대한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 된 듯하다. 과연 그럴까?
◆ 메모리 사이클 호황 진입에 따른 이익 증대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매출 74조, 영업이익 10조4000억원의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최악의 실적을 냈던 작년 2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23.21%, 영업이익은 1452.24%나 증가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증권사의 전망치 평균 8조3000억원보다 2조원이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볼 부분이 있다. 매출은 시장 전망치 73조7000억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영업이익이 전망치를 크게 상회했다는 얘기는 매출 증대가 아니라 비용 절감에 따른 ‘깜짝 실적’으로 볼 수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작년 2분기 이후 메모리 반도체 감산에 들어간 점을 감안하면 재고 감소에 따른 업황 개선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더구나 메모리 업체들이 HBM 생산에 집중하면서 범용 D램이 공급이 줄어든 것도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올렸고, 그 결과 삼성전자의 실적이 좋아진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마디로 삼성전자에 제기됐던 문제들이 해결돼 실적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상 이제 좋아질 시기가 왔고, 여기에 AI 열풍까지 더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올라간 것이 실적 호전의 바탕이 된 것이다.
또 과거 메모리 반도체가 호황기로 접어들 때면 삼성전자는 실적 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이크론도 시장 기대치를 크게 웃도는 실적을 발표했고, HBM 반도체를 주도하고 있는 SK하이닉스도 삼성전자에 못지않은 ‘깜짝 실적’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실적 발표를 계기로 더 이상 ‘초격차’의 삼성전자가 아님을 확실히 입증한 셈이다.
◆ 하반기에도 실적 호조 이어지겠지만 ‘초격차’ 회복이 관건
하반기에도 삼성전자의 실적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우세하다. 엔비디아에 대한 HBM 반도체 납품 건도 3분기에는 품질 검증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실력을 믿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공급선을 다변화해야 하는 엔비디아의 입장이 크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다. 삼성전자가 2024년에 경쟁사보다 설사 좋은 실적을 낸다 해도 이는 기술 격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생산량 차이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영업이익을 낸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어쩌면 이번 호황기가 상대적 우위를 누리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술적 우위가 축소되거나 혹 역전된 상황에서 다시 메모리 반도체의 불황 사이클이 온다면? 그리고 다음번 호황이 올 때쯤에는 삼성전자의 위상은 어떻게 돼 있을까?
더구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밝힌 것처럼 반도체 사이클의 호황과 불황 주기가 짧아지고 진폭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호황도 길지 않을 수 있다. 이 말은 삼성전자가 예전의 초격차를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 오판과 안주(安住)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이 절실
최근 나이키의 추락은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0년부터 무려 40년 넘게 독주해 오던 나이키가 흔들리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홈페이지와 직영매장만을 통해 판매하는 전략이 소비자에게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신제품 개발은 소홀히 한 채 한정판 출시에 집중하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업종을 불문하고 1등의 몰락은 오판과 안주(安住)하고자 하는 나태함에서 시작된다. 삼성전자에 대입해 본다면 HBM 반도체를 소홀히 했던 게 오판이고, 경쟁사에 뒤떨어졌음을 인지하고도 1년 넘게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안주한 데 따른 결과일 것이다. 오판과 안주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혁신이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혁신 정신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