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동안 8번 실패한 제4 이동통신사 [김기성의 재계 포커스]
스테이지엑스의 과욕이 빚은 참사가 근본 원인 시장 상황 무시한 정부의 주파수 정책도 문제 제4이통 집착 버리고 FULL MVNO 육성 등에 나서야.
제4 이동통신사(이하 제4이통) 출범이 또 좌초됐다. 2010년부터 시작해 7번의 실패를 맛봤던 제4이통 선정작업은 8번째 실패라는 오점을 더하고 말았다.
정부는 제4이통 후보로 선정된 스테이지엑스가 애초 약속한 사항을 지키지 못한 것을 문제 삼아 주파수를 주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주파수 할당 대상법인 선정 취소를 위한 청문 절차가 남아있지만 제4이통은 사실상 무산됐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주파수 경매에서 지나치게 큰 금액을 제시한 스테이지엑스의 과욕이 빚은 참사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동통신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과기정통부의 정책적 실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스테이지엑스는 당초 주파수 할당 신청을 할 때 2050억원의 자본금을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또 스테이지파이브와 신한투자증권과 야놀자, 더존비즈온 등 6개의 기업이 지분 5% 이상의 주요 주주로 참여해 자금조달 계획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서약서를 공증을 받아 제출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스테이지엑스가 제출한 법인 등기부 등본이 기재된 자본금은 1억원에 불과했다. 또 6개의 주요 주주 가운데 스테이지파이브를 제외한 나머지 5개 기업은 자본금 납입 약속을 한 푼도 지키지 않았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당사자들이 입장을 밝히지 않아 추론해 볼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과다한 주파수 낙찰 비용이 원인이 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1월 시작된 주파수 경매에서 최저 할당금액은 742억원이었다. 경매가 과열되더라도 1500억원을 넘어서면 사업성이 없다는 게 전반적 분위기였다. 그런데 스테이지엑스는 무려 4301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를 써 내 낙찰을 받았다.
이로써 스테이지엑스는 주파수 할당 대상법인으로 선정돼 제4이통이 될 지위를 획득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주요 주주를 포함해 주주로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던 기업들이 사업 진행을 위해 실제로 자본금을 납입해야 하는데 제동이 걸린 것이다. 아마도 4301억원에 달하는 주파수 할당 대가가 참여를 주저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 4301억원, 스테이직엑스의 단독 결정인가? 주요 주주의 변심인가?
그럼에도 의문이 남는 부분이 있다. 1월 25일에 시작돼 1월 31일까지 이어진 주파수 경매에서 입찰자는 휴대전화를 한 대씩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다. 즉 입찰 금액을 결정할 때 주요 주주와 협의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는 얘기다. 더구나 마지막 낙찰가는 밀봉 입찰로 정해졌다. 당연히 주요 주주들과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상식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 스테이지엑스는 4301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적어냈고, 이후 자본 참여를 약속했던 주요주주들은 모두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누구의 잘못일까? 스테이지엑스가 주요 주주와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내린 과욕이었을까, 아니면 주요 주주들이 처음에는 4301억원에 동의했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뀐 걸까? 이는 단순한 호기심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정부가 주관하는 경매에서 책임지지 못할 금액을 제시해, 다른 상대방을 경쟁에서 배제하고 정부의 정책 집행을 방해한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사업성 없는 주파수에 경매 고집한 정부의 패착도 원인
스테이지엑스의 과욕에 앞서 지적돼야 할 부분이 정부의 정책적 판단 착오일 것이다. 당초 정부가 28GHz를 대상으로 제4이통 선정작업을 시작했을 때 어느 누구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기존 이통 3사가 사업성이 없다며 반납한 주파수를 가지고 제4이통에 뛰어들어 봤자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따라서 처음부터 대기업의 참여는 기대할 수 없었고 스테이지엑스와 마이모바일, 세종텔레콤 3사가 경매에 참여했다. 이들의 사업계획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소한의 비용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로 생존 기반을 마련하고 그 이후 중·저대역 주파수를 추가로 할당받아 본격적인 제4이통 사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낙찰 금액이 ‘최소한의 비용’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4301억원으로 결정되면서 제4이통의 무산은 낙찰과 동시에 예정된 것이었다. ‘사업성 없는 주파수 + 주파수 경매 입찰’이라는 구도는 처음부터 실패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제4이통 출범의 전제조건은 ‘사업성’
정부는 이번 8번째 무산에도 불구하고 제4이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실패를 계기로 여러 개선방안이 모색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4이통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저대역 주파수 할당과 같은 확실한 유인책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또 사업성의 미끼를 던져 주더라도 국내 대기업이 선뜻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금물이다. 수조 원의 자금이 들어가야 하고 기존 이통 3사와 척을 지면서까지 투자에 나설 대기업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은 왜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졌는가 하는 부분이다. 3개 회사로는 경쟁이 안 되고, 4번째 회사가 등장해야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는 논리도 무리가 있다.
공기업에서 출발해 주인 없는 회사, 소위 소유분산 기업인 KT가 경쟁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KT는 1년 6개월째 휴대폰 가입자가 줄어들고 있다. KT의 경쟁 본능을 살릴 방안이 있다면 굳이 제4이통이 필요할지 의문이다.
알뜰폰(MVNO)에 대한 정책적 접근도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80개가 넘는 중소 알뜰폰 업체가 난립해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쥐꼬리인 반면 대포폰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내년 2분기부터는 정부가 중재해 주던 회선 사용에 대한 도매 대가도 개별 알뜰폰 업체가 이통 3사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처럼 시장 조건은 악화하고 있지만, 알뜰폰 가입자는 900만을 넘어 전체 휴대폰 회선의 16%까지 점유율을 높인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을 이동통신 시장의 메기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Full MVNO의 육성이다. 교환설비 등 코어망을 갖추고 고객 관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Full MVNO가 등장해 흩어져 있는 알뜰폰 사업자와 연계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알뜰폰 사업자의 이통 3사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어서 통신비 절감의 묘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 제4이통에 대한 환상은 접어야 할 때가 됐다. 14년 동안 8번의 실패를 겪었다면 이제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기존 3사의 황금분할을 깨든가 아니면 알뜰폰을 뭉치게 하든가, 어는 것이 됐건 경쟁을 되살리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일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