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 휩싸인 하이브...성공주역 ‘멀티 레이블’ 금갔다

민희진 독립 시도 의혹에 하이브 감사권 발동 “뉴진스 카피가 문제”...경영권 탈취 선 그어 내홍 속 멀티 레이블 체제 변화 불가피할 듯

2024-04-23     채승혁 기자
사진=하이브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사인 하이브가 내홍에 빠졌다. 뉴진스를 발굴한 자회사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인데, 독립성을 보장하는 ‘멀티 레이블 체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는 점에 있어 향후 조직 개편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가요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지난 22일 오전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 등에 대한 감사에 돌입했다. 본사로부터 독립하려는 정황을 포착한 하이브는 이에 관련된 증거 수집에 나섰으며, 감사 진행과 함께 하이브는 민 대표 사임 서한을 발송하고 어도어 이사진을 상대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도어는 민희진 대표가 2021년 설립한 하이브 산하 레이블이다. 어도어와 민 대표의 영향력 아래 재작년 데뷔한 뉴진스는 히트곡을 연달아 선보이며 K-POP 간판 걸그룹으로 부상했다. 현재 어도어의 지분 80%는 하이브가 갖고 있으며, 나머지 20%는 민 대표와 어도어 이사진이 보유하고 있다. 

20% 지분을 보유한 어도어 측이 어떻게 회사 경영권을 탈취한다는 걸까. 하이브가 의심하고 있는 부분은 민 대표 측이 투자자를 유치하려 계약서 등 대외비를 유출하고,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어도어 이사회가 민 대표 측 인사로 채워진 점을 들어 제3자배정 유상증자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우호적인 외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하이브의 지분을 희석시킨다는 건데, 80%를 보유한 대주주 하이브의 지분을 희석시킬 만한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렇다고 해도 하이브가 신주 발행금지 가처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민 대표는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과 관련해서 항변에 나섰다. 그는 지난 22일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를 시도하려 한 적이 없다. 80% 지분권자인 하이브의 동의 없이는 어도어가 하이브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요청하고 민 대표를 비롯한 이사진 3인에 대한 사임 및 신규 이사진 제안을 완료해둔 상태다. 감사 질의서에 대한 답변 시한은 23일 오후까지다.

2023년 12월 기준 하이브 국내외 레이블. 사진=하이브 IR 자료 캡처

경영권 탈취 의혹과 별개로 하이브와 민희진 대표의 충돌은 실재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사태의 핵심 배경에는 공교롭게도 그간 회사의 성장을 주도해온 '멀티 레이블 체제'가 존재했다.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2021년 취임 후 멀티 레이블 체제 구축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멀티 레이블 고유의 창작 시스템과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덕에 그룹별로 독창적인 히트곡들이 나왔고, 슈퍼 IP(지식재산) 탄생 가능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하이브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하이브는 지난해 엔터사 최초로 연 매출 2조원을 넘겼으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경신했다. 또한 작년 말 기준 회사 자산 규모가 5조원을 돌파함에 따라, 국내 엔터사 최초의 대기업 지정을 목전에 둔 상황이다. 

그러나 정작 핵심 축인 어도어는 멀티 레이블 체제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들고 나섰다. 골자는 지난 3월 데뷔한 여성 5인조 아이돌 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여러 방면에서 모방하고 있다는 것. 아일릿을 탄생시킨 건 하이브 산하의 또 다른 레이블 중 하나인 빌리프랩이다.

민 대표와 어도어 측은 “하이브는 여러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이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멀티 레이블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어도어는 그 레이블 중 하나”라면서 “그런데 어도어 및 그 소속 아티스트인 뉴진스가 이룬 문화적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라는 입장문을 22일 발표했다.

이들은 “방시혁 의장이 아일릿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을 했다.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는 빌리프랩이라는 레이블 혼자 한 일이 아니며 하이브가 관여한 일”이라면서 “뉴진스는 현재 5월 컴백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아류의 등장으로 뉴진스의 이미지가 소모됐고, 이러한 사태를 만들어 낸 장본인은 하이브와 빌리프랩이건만 피해는 어도어 및 뉴진스의 몫”이라고 날을 세웠다.

“멀티 레이블은 독립적으로 원하는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체제이지, 계열 레이블이라는 이유로 한 레이블이 이룩한 문화적 성과를 다른 레이블들이 따라 하는데 면죄부를 주기 위한 체제가 결코 아니”라는 이들은 “하이브와 빌리프랩, 그리고 방시혁 의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나 대책 마련은 하지 않으면서 단지 민희진 대표 개인을 회사에서 쫓아내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놓고 ‘레이블 간의 심화된 내부 경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사례’로 해석하고 있다. 산하 레이블들이 독립적인 행보를 취할 수 있다는 선례가 생겼기 때문에, 하이브가 기존 멀티 레이블 전략에 변화를 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하이브 산하에는 어도어 외에도 빅히트뮤직, 플레디스엔터, 쏘스뮤직 등의 레이블이 자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