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재계 포커스] 지역 농협 빈번한 금융사고…강호동 회장 대응에 쏠리는 눈
횡령사고 발생도 늘고 규모도 대형화 추세 제재 허술 ‘지적’…내부통제 강화안 실효성 의문
빈번하게 등장하는 금융사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지역 농협의 횡령사고다. 금융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지만, 지역 농협을 관리해야 할 당사자인 농협중앙회의 소극적인 태도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충북의 한 지역 농협에서 20대 직원 A씨가 고객 계좌에서 1억원을 빼낸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A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고객 B 씨의 정기예금 통장에서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600만원에 이르기까지 수시로 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다른 지역의 농협 현금 인출기에서 현금을 빼내거나 타인 명의 계좌로 돈을 보내는 수법을 사용했다. 피해자 B 씨는 80대의 청각장애인으로 A 씨에게 속아 비밀번호를 말해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 지역 농협, 일주일에 한 번꼴로 횡령사고 발생
2017년부터 작년 8월까지 지역 농·축협에서 발생한 횡령사고는 283건에, 전체 횡령 규모는 563억원에 달한다. 매년 평균 46건으로 일주일에 한 번꼴로 횡령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횡령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2022년 지역 농협에서 모두 22건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는데 피해 금액이 141억원으로 이전 5년의 평균치 14억원의 1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횡령에 대한 감시망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전의 한 지역 농협에서는 횡령사고가 발생하고 7년 11개월 동안 아무도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평균으로 따져서 지역 농협에서 발생한 횡령사고를 적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년 3개월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횡령사고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제재도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2017년 이후 횡령사고에 대해 모두 6824건의 징계가 이뤄졌지만, 해직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674건에 불과했다. 50%가 넘는 3478건이 견책과 개선요구에 그쳤다.
◆ 상임감사 의무 선임 지역 농협 늘었지만, 효과는 ‘글쎄?’
이에 따라 정부는 지역 농협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농업협동조합법 시행령을 고쳐 의무적으로 상임감사를 둬야 하는 지역 농협의 기준을 기존의 총자산 1조원 이상에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가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져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애초 정부는 동일한 상호금융인 새마을금고의 상임감사 선임 기준인 자산 500억원, 또는 신협의 기준 2000억원 등을 감안해 새로운 기준을 정하려 했다. 그러나 협의 과정에서 농협중앙회가 인건비 증가 등을 이유로 상임감사 선임 자산 기준을 낮추는 데 반대했다.
결과적으로 상임감사를 둬야 하는 지역 농협의 기준은 총자산 1조원 이상에서 8000억원 이상으로 정해졌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상임감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해야 하는 지역 농협은 현재 121개에서 169개로 늘어난다. 이는 전체 지역 농협 1111개의 15%에 불과하다.
또 시행시기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농협중앙회의 요청에 따라 내년 초로 미뤄졌다. 또 비상임감사를 둔 지역 농협은 이들의 임기가 끝나고 상임감사 체제로 전환된다. 금융사고를 예방하겠다는 본래 취지가 반영됐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문제는 또 있다. 지역 농협의 상임감사 자리가 늘어나면 농협중앙회 출신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농협법 시행령을 보면 상임감사는 금융업과 관련된 부문에서 종사한 경력이나 조합 관련 업무에 상근직으로 5년 이상 종사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농협 조직의 특성이나 지역 농협의 빈약한 인재 풀을 감안하면, 농협중앙회 퇴직자가 독차지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잘못된 것 고치는 변화와 개혁이 더 중요
지난달 제25대 농협중앙회장에 취임한 강호동 회장은 취임사에서 농업과 농촌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변화와 혁신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횡령사고와 같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변화와 혁신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와 혁신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당장 들어갈 비용 때문에 금융사고를 예방하는 데 소홀히 한다면 언제 어디서 농협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횡령사고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그리고 상임감사를 둔 지역 농협에서는 금융사고가 20% 이상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