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재계 포커스] 카카오의 ‘제주도 주주총회’ 유감
일반 주주 불참 속 속전속결로 마무리 제주도가 문제가 아닌, 주총을 대하는 자세 아쉬워 카카오 “상법과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개최”
각종 의혹과 사법 리스크에 휩싸여 있는 카카오의 김범수 창업주는 지난해 12월 혁신을 위해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8일 열린 주주총회를 보면 어디에도 혁신의 의지는 없어 보인다.
정신아 대표 내정자를 정식 선임해 ‘뉴 카카오’의 출범을 알리는 주총이었지만, 일반 주주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정작 정 신임대표도 없었다. ‘소통’ ‘투명’과는 거리가 먼 주주총회였던 셈이다.
◆ ‘인적 드문 주총’ ‘질문 없는 주총’ ‘속전속결 주총’
카카오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한 2014년 이후 본사 소재지가 제주도로 바뀌면서 주주총회를 제주에서 개최하고 있다. 개인 투자가들은 주주들이 못 오게 하려고 제주도에서 주주총회를 여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표출해 왔지만 올해도 바뀐 게 없었다. 상법과 정관에 따르고 있다는 게 카카오의 설명이다.
이번 주총도 늘 그랬듯 올해도 소액 주주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주총에 참여한 인원이 40명 정도이고 이 가운데 10명 이상이 취재진이었다고 한다. 당연히 주총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뼈 아픈 질문도 없었다. 간혹 반발도 있었지만, 그것은 ‘크루유니언’이라 이름의 노조 조합원들 몫이었다. 8개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9시에 시작한 주총은 50분 만에 끝났다.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정 신임대표를 비롯해 새로 선임된 3명의 사내이사와 2명의 사외이사마저도 주총 자리에 없었다. 혁신을 설명하고 주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는 얘기다.
이날로 임기가 끝나는 홍은택 대표이사가 주총 의장으로 참석해 간혹 나오는 질문에 답했지만, 앞으로의 혁신에 대해 답할 입장은 아니었다. 스톡옵션 먹튀 논란을 일으킨 일부 인사가 또다시 경영진에 선임된 것과 관련한 질문이 나왔을 때 “당사자가 아니라 답변드릴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이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카카오의 제주도 주총을 보면서 생각나는 게 미국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총회다.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주 동부에 있는 오마하에서 매년 주총이 열린다. 인구 50만 명 수준의 지방 도시에서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총이 열리면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주주가 참석한다. CEO인 워런 버핏이라는 투자의 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버크셔 헤서웨이가 주총을 위해 쏟는 준비를 보면 주주를 대하는 진심을 읽을 수가 있다.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총은 매년 5월 첫 번째 주에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메인 행사는 두 번째 날인 토요일에 열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자선 마라톤 대회와 버크셔 헤서웨이가 투자한 회사의 제품을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쇼핑 데이 행사가 진행된다.
주주를 모으기 위한 오락, 여흥만 있는 게 아니다.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되는 주총행사에서는 먼저 회사 경영과 관련된 영상을 상영한 뒤, 주주들의 질문을 받는 Q&A세션이 진행된다. 보통 6시간 정도 진행되는 Q&A 세션에서는 버핏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기업가치와 사업 방향을 진솔하게 제시해 주주들의 동의를 구한다.
◆ 주주와의 소통을 혁신의 핵심가치로 여겨야
주중 평일에, 그것도 상장사들이 주총을 집중적으로 여는 날(슈퍼 주총데이)을 골라 주총을 여는 카카오. 그것도 제주도에서 오전 9시에 주총을 여는 카카오와 주주총회를 축제로 승화시킨 버크셔 헤서웨이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총을 보면 제주도라는 지리적 단점은 결코 주주와의 소통에서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만약 카카오가 주주와의 소통을 혁신의 핵심가치로 여겼다면 제주도는 오히려 좋은 주주총회 장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카카오라면 버크셔 헤서웨이의 마라톤 대회나 쇼핑 데이와 같은 행사도 충분히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김범수 창업자의 ‘브라더’로 불리는 인사들이 챙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스톡옵션 이익의 일부만 투자해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아 대표를 포함해 신임 경영진이 모두 등장해서, 네 시간이든 다섯 시간이든 주주들의 질문을 받아 답하고, 혁신을 설명하고 실행 계획을 털어놓았다면 카카오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나 리스크도 크게 덜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카카오는 주주들이 주총에 참여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의심받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무슨 거창한 혁신안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주주에게 설명할 수 없는 혁신안으로 결코 혁신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