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재계포커스] KT&G, ‘주주이익 훼손’ 앞세워 방경만 선임 총력
최대주주 기업은행, 반대의사 밝히며 일반 주주 규합 나서 ISS, 선출절차·경영능력 이유로 반대 권고 KT&G, 홈페이지 팝업창 동원해 적극 반박
KT&G가 방경만 사장 후보의 선임 위해 반대의견에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자신들이 추천한 방 후보가 사장에 선임되지 않으면 경영 공백이 우려된다면서 주주이익도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말을 풀어보면 방 후보를 선임하지 않으면 주가가 떨어질 거라는 얘기와 다름없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추천한 방 후보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CEO 공백이 가져올 기업 가치 훼손과 부적절한 인사가 CEO로 선임됐을 때 야기될 기업 가치 훼손을 비교한다면 쉽게 뱉을 말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 등, 경영능력·선출절차·외유성 출장 의혹 이유로 방 후보 반대
KT&G의 주식 7.11%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IBK기업은행(기업은행)은 지난 12일 일반 주주들도 방 후보 선임에 반대해 달라고 제안했다. 방 후보의 부사장 재임 기간에 KT&G의 영업익이 20% 이상 줄어든 점을 지적했다. 경영능력을 의심한 것이다. 또 사외이사 외유성 출장 등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14일에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방 후보 선임에 반대할 것을 주주들에게 권고했다. ISS는 보고서를 통해 KT&G가 공정하고 투명한 CEO 선출 절차를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비현실적이며 이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또 회사의 경영 악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임원을 사장 후보로 임명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지적했다.
KT&G의 주주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 비율이 44%에 달하고 이들의 의사결정에 ISS의 권고가 큰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KT&G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실제로 2018년 백복인 사장 연임 문제가 나왔을 때도 기업은행은 공식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ISS가 찬성을 권고하면서 백 사장이 연임에 성공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KT&G, 기업은행·ISS 주장에 적극적으로 비판
이에 대해 KT&G는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나섰다. 홈페이지에 ‘IBK 공개자료에 대한 KT&G 입장문’이라는 팝업창을 열어놓고 기업은행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방 후보의 경영능력과 관련해서는 부사장 부임 이후 부동산 부문에서 일시적 수익 감소가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영업익이 부임 기간 동안 3.3%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또 외유성 해외 출장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회사 내규에 정해진 기준에 따라 출장 여비 등 규정을 철저히 준수한다고 주장했다.
방 후보 선임에 반대하는 권고안을 낸 ISS에 대해서는 더욱 발끈했다. ISS가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와 공모했을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신뢰성이 결여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FCP 주장에 일방적으로 동조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기업은행이 추천한 손동환 사외이사 후보 선임에 찬성을 권고한 것은 ISS의 가이드라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사회는 CEO 공백에도 대비해야 할 책무가 있어
KT&G의 반박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방 후보가 부결될 경우 경영공백이 우려된다면서 이는 기업 가치 훼손 및 주주이익 훼손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KT&G는 이사회가 추천한 CEO 후보를 주주들은 무조건 찬성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사회는 항상 옳으니 주주는 따라오라는 얘기와 무엇이 다른가?
물론 나름 공정하고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후보를 추천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사회의 역할은 딱 거기에 멈춰야 한다.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를 선임하지 않으면 기업가치, 주주이익이 훼손될 것이라는 주장은 주주에 대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이사회는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CEO 공백에 대해서도 항상 대비해야 하는 것이 임무이기 때문이다.
또 만약 적합하지 않은 후보가 CEO에 선임돼 3년 동안 회사에 끼칠 해악을 생각하면 잠시 동안의 CEO 공백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외유성 해외 출장, 불법 정치 자금 등에 대해서는 의혹 풀어야
따라서 방 후보가 CEO로 선임될지 여부는 주주들에게 맡겨두는 것이 맞다. 그런데 누가 선임되더라도 꼭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KT&G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대해 제기된 문제들을 따져봐야 한다. KT&G는 문제 될 것 없다고 주장하지만 ISS도 보고서에서 KT&G는 그동안 외부에서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해 과거의 결정을 방어하는 데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의 외유성 해외출장만 해도 사규를 준수했다고 하지만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1인당 연평균 출장비용이 680만원이라고 해명했지만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지출됐는지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소유분산기업의 사례에서 보면 해외 현지법인이 동원돼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의심을 풀어줘야 할 것이다. 이것 말고도 2017년에는 KT&G가 직원들을 동원해 다수의 국회의원에게 ‘쪼개기 후원’ 방식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해명돼야 할 부분이다.
소유분산기업,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 강화 방안 마련돼야
비단 KT&G뿐 아니라 주인 없는 소위 ‘소유분산기업’들의 CEO선임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믿음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일단 CEO로 선임되면 사외이사에게 각종 혜택을 부여해 사외이사의 본연의 임무인 경영진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오죽했으면 사외이사들이 CEO를 방어하고 ‘셀프 연임’ 또는 ‘후계자 선임’을 돕는다는 비난이 나왔겠는가?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주주를 감시, 견제해야 한다는 IMF 권고에 따라 1998년 도입됐다. 벌써 26년이 지났지만 정착은커녕 수많은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일반 민간 기업은 그렇다 치더라도 적어도 소유분산기업에 대해서는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