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재계 포커스] ‘초격차’ 삼성전자는 어쩌다 AI랠리서 소외됐나

GAA 기술, HBM 반도체 개발 등에도 실적은 의문 삼성전자의 ‘세계 최초 기술’에 시장 무덤덤 AI 랠리에서 유일하게 소외되면서 주가 하락

2024-03-11     news
 사진=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3년, 삼성전자가 64K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을 때, 언론은 동네 철공소에서 F-16 전투기를 만들었다고 환호했다. 그 이후 삼성전자가 D램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였다는 발표는 국민적 자부심과 연결됐다. ‘세계 최초’ ‘기술의 삼성’ ‘초격차’라는 삼성의 자부심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가 최고의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해도 양산까지 좀 더 지켜보자거나, 수율을 확보하는 검증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 5세대 HBM 개발 소식에도 주가는 제자리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업계 최초로 12단 적층 HBM3E (5세대 HBM)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경쟁사에 뒤처졌던 HBM 분야에서도 마침내 따라잡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주가 흐름을 보면 발표 전일인 2월 26일 7만3천 원에서 나흘 연속 오름세를 보이며 7만4900원까지 올랐지만 딱 그것뿐이었다. 이후 다시 내림세로 돌아서 지난 금요일 주가는 7만3300원에 그쳤다. 발표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특히 외국인 투자가의 매매 동향을 보면 지난주 마지막 3거래일(3월 6일부터 8일까지) 동안 무려 9천만 주 이상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을 개발을 발표하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한 고객사에 보내 검증에 들어갔고 상반기 안에 양산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투자가들 사이에서는 과연 경쟁사에 뺏긴 시장을 만회할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 분위기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차세대 트랜지스터 구조인 GAA(Gate-All-Around) 신기술을 적용한 3나노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TSMC를 추월해 2030년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할 게임체인저라고 설명했다.

◆ 3나노 GAA 개발 발표 이후 파운드리 점유율 오히려 하락

그러나 파운드리 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2021년 TSMC 53%, 삼성전자 18%에서, 2023년에는 TSMC 59%, 삼성전자 11%를 기록해 격차는 더욱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올해에는 TSMC는 62%로 늘어나고 삼성전자는 10%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3나노’, ‘GAA’ 기술 모두 파운드리 시장 확대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자신감이 시장을 실망시킨 사례는 또 있다. 작년 한창 HBM 기술이 화제의 중심에 서고, 하이닉스가 앞서간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삼성전자의 태도는 오만함 그 자체였다. 비록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내부 행사였지만 경계현 사장은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이라고 말했다. 업계 1위라고 표현했지만, 이때는 이미 SK하이닉스와 격차가 벌어진 시점이었다.

이후 HBM 격차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자 삼성전자는 연말까지는 따라잡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허언이 되고 말았다.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 경쟁력을 회복했다는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침내 지난 1월 경계현 사장은 “경쟁사에 기술력에서 따라잡혔다.” “우리가 2등”이라고 실토했다. 이 과정을 보면 기술력 차이를 대하는 삼성전자의 태도가 안일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물론 D램 반도체는 범용제품인 데 비해 파운드리나 HBM은 수요처가 정해져 있는 특수성 때문에 기술 개발과 실제 적용 시점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삼성전자의 발표가 성급했거나 실제 수요처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자만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측하기에 충분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삼성전자의 소액주주는 600만명에 육박한다. 국민주라고 불리는 데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 삼성전자 주가가 올해 들어서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최고가는 첫날인 1월 2일 기록한 7만9600원이다. 이후 7.91%가 하락했다. 이에 비해 AI와 관련한 국내외 반도체 주식은 랠리라는 표현을 쓸 만큼 많이 올랐다. 국내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는 20.7%가 올랐고, AI 대장주라는 미국의 앤비디아는 81.7%, 파운드리 경쟁사인 TSMC는 44.1%가 상승했다. 소위 AI 랠리에서 삼성전자만 소외된 것이다.

◆ 파운드리·HBM·패키징 가운데 하나만 잘했어도…

그런데 삼성전자는 AI 반도체와 관련해 파운드리와 HBM 반도체는 물론이고 패키징과 관련해서도 첨단 2.5D 패키징 기술인 큐브 패키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HBM, 파운드리, 패키징, 이 3분야 가운데 한 가지만이라도 잘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업계 시각은 그다지 비관적이지 않다. 초기 의사결정은 늦었지만,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 AI와 관련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새로운 수요처가 등장한다면 삼성전자도 뒤늦게나마 실적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새로운 기술을 발표하면 온 국민이 환호하고 자부심을 가지던 그런 시절은 다시 오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