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의 ‘뉴삼성’ 또 늦어지나?

등기이사 복귀 또 미뤄져 경쟁력 회복 위해서는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경영 필요 세계는 오너들이 전면에 나서서 AI 경쟁 中

2024-02-23     한종해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등기이사에 복귀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검찰의 항소에 따른 사법리스크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이번 결정이 혹시나 삼성전자의 장기적 경쟁력에 타격을 입히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수십 년 반도체 1등을 유지하던 삼성전자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경영진의 오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삼성이 곧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그 예측은 기대에 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는 책임 있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에서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기대했지만 다시 미뤄진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 이사회, 주총 안건에 이재용 등기이사 상정 않기로

삼성전자는 20일 이사회를 열어 정기주총을 다음달 20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또 정기주총에 올릴 안건을 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재무제표 승인과 사외이사 선임 등이다. 그러나 이 안건 중에는 이재용 회장을 등기이사로 복귀시키는 내용은 빠져있다.

이 회장은 지난 5일 ‘불법 승계 의혹’ 1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털고 등기이사로 복귀해 삼성전자를 이끌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 8일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을 받게 되자 다시 사법 리스크를 거론하며 등기이사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고 그것이 현실화 한 것이다.

등기이사 복귀 여부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등기이사는 이사회에 참석해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한다. 이 회장은 현재도 주요 경영 관리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너로서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과제로 거론되는 대형 M&A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은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안은 전문 경영인이나 사외 이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너의 의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당연히 오너가 이사회에서 자신의 의중을 설명하고 사업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등기이사가 아니라면 자신의 뜻을 이사회에 간접적으로 전달해야하기 때문에 신속하고 적극적인 결정이 어렵고 또 오너의 의중대로 이사회가 결론을 내리더라도 책임 소재가 모호해져 책임경영의 취지도 퇴색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신속하고 책임지는 의사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전자를 둘러싼 산업 환경이 안정돼 있다면 그다지 사활적인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반도체 시장은 AI를 중심으로 급변하면서 자칫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는 엄중한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HBM 반도체 문제만 보더라도 경영진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AI 시장이 열리기 시작할 때 삼성전자의 경영진은 오판을 내렸다. 그 결과 작년 중반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질렀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때만 하더라도 시장은 삼성전자가 연말까지 따라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기대마저도 접는 분위기다. 상성전자가 경쟁력을 회복했다는 근거를 어디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오판에서 시작된 경쟁력 저하를 만회할만한 후속 의사결정이 없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수십 년 누려온 반도체 1등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쌓아놓은 돈도 막강한 기술 경쟁력도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 세계 테크 기업, AI시대 경쟁에 오너 경영으로 대응

지금 AI시장을 둘러싼 세계 기업들의 경쟁은 오너가 전면에 나서서 이끌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메타의 마크 저커버거,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모두 오너 경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비해 오너 중심의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이다.

누구는 지금의 기술변화를 두고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후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1등이라고 하더라도 흐름을 놓치면 어제든 2등으로 추락할 수 있고, 영원히 도태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재용 회장이 등기이사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 아쉽고 아쉬울 따름이다. 사법 리스크도 감안해야 하고 삼성전자만이 아닌 전체 삼성 그룹을 아울러야 한다는 점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국내 유일의 초일류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쟁력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 경영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다.

이 회장의 할아버지인 삼성의 창업회장 고 이병철 회장은 조롱 속에서도 도쿄선언을 통해 반도체 진출을 알렸고 아버지인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신경영의 시대를 열었다.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이 태동하기 위해서는 ‘정치는 4류, 관료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일갈했던 이 건희 회장의 결기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