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숙원사업 풀리는데…진전없는 공공의료데이터 개방

2023-07-28     한지한 기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들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 보험업계의 숙원사업이 일부 풀리는 모양새다. 그러나 또 다른 숙원사업인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공공의료데이터 개방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도 공공데이터 전면개방이 포함됐고 최근 개인정보위원회도 ‘가명정보 활용 확대방안’을 발표하는 등 건보공단 공공의료데이터 개방에 진일보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와 보험사의 대내적 이미지로 인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28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개인정보위원회는 가명정보 활용 확대방안을 발표하고, 하반기 중 건강보험 데이터의 민간기업 활용 촉진을 위한 지침 개정 및 데이터 개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평가기준에 ‘가명정보 제공·활용’ 관련 평가항목이 신설된다. 민간기관이 가명처리된 공공데이터를 공개해달라는 민간의 요청에 공공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 골자다.

이같은 영향으로 보험업계에도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에 물꼬가 트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그간 건보공단과 시민단체, 의료계 등이 다양한 이유로 보험업계의 요청을 반대했던 것을 고려하면 별다른 진척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2월부터 한화생명이 신청한 공공의료데이터 자료 제공 요청 심의 결정을 무기한 연기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건보공단은 2021년 9월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KB손해보험·현대해상이 신청한 공공의료데이터 활용 여부에 대해 미승인 결정을 내렸다. 당시 건보공단은 해당 보험사들이 제출한 활용 계획서가 과학적 연구 기준에 미흡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같은 해 12월 한화생명은 건보공단의 권고사항을 반영해 재신청한 바 있다.

보험사의 입장에선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를 새로운 보험상품 개발과 양질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생보사의 경우 종신보험 등 주력상품 판매 침체가 이어지며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미 보험사들은 2020년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됨에 따라 2021년 7월부터 심사평가원(심평원) 공공데이터 활용 승인을 받고 활용 중이다. 그럼에도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은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심해 제한돼 왔다.

시민단체와 의료계는 보험사들이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를 재식별하거나 마케팅 목적으로 활용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민간보험사에 공공의료데이터가 넘어갈 경우 공공보험인 건강보험의 기능 악화를 초래하며, 보험료 할증과 보험가입 거절의 근거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보험업계 입장은 다르다.

우선 건보공단과 심평원 등 공공기관의 시스템 상 데이터 재식별은 불가능한 구조다. 현재 시스템 상 사전 허가 받은 연구자가 별도의 폐쇄망을 통해 분석 후 해당기관의 감독 아래에 과학적 연구에 필요한 최소한의 통계값(익명정보)만 반출할 수 있어 정보의 유출 및 재식별을 통한 2차 활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6항에 따라 데이터 재식별 및 오남용 시 5년 이하의 형벌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및 전체 매출액의 3%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보험은 현재 공공보험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회안전망 역할 수행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고령화와 유병장수로 인해 건강보험의 재정부담 가중이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험사가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할 시 보장사각지대인 고령자와 유병자를 위한 상품 개발과 헬스케어 활성화 등을 통해 공공보험의 기능 악화보단 사회안전망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당뇨 합병증과 고령자 대상 치매장기요양 등에 대한 보장은 현재 진단·수술 등을 주로 보장했다. 이를 공공의료데이터를 활용할 시 검진 등 건강예방 비용까지 보장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보험사가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해 보험료 할증과 보험가입 거절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제약이 따른다.

보험업법 129조에 따르면 보험사는 보험료를 결정하는 보험요율을 산출할 때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또 보험요율이 보험계약자 간에 부당하게 차별적이지 않아야 한다.

보험사가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산출할 경우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보험요율을 산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공공데이터법과 데이터3법의 제·개정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는 건보공단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이 제한되고 있다”며 “한화생명의 자료 제공 요청 심의도 대선 이후에 재개된다는 기대감도 높았으나 현재까지 답보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건보공단의 재정부담이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것을 고려하면 공보험의 보조격인 민간보험의 역할 확대도 필수불가결하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지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