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조원+α 투자·세제 혜택’ K-반도체 전략 발표…‘골든타임’ 놓칠 뻔

정부, 인프라 구축·세제 혜택 등 반도체 지원 전략 발표 삼성전자, 기존 133조원 투자계획에서 38조원 추가 확대 SK하이닉스, 8인치 파운드리 2배 수준 확장…박정호 부회장 “총 230조원 투자” 다소 늦었던 정책 발표, 향후 지속 지원 필요해

2021-05-17     정진성 기자
정부가 13일,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K-반도체 전략’을 지난 13일 공개했다. 이번 전략에는 국내 반도체 인프라 구축, 각종 세제혜택 및 기반시설 지원 등이 포함돼, 업계 전반에서 환영과 공조의 뜻을 밝혔다. 국내 대표 반도체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폭 늘린 투자 계획을 밝히며 화답했다.

협회 등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전략 발표가 다소 늦긴 했으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최근 들어 더 심각해지고 있는 반도체 수급난과 글로벌 시장 경쟁에 있어, 장기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 171조·SK하이닉스 230조원…업계 전반 ‘환영’

정부가 발표한 전략은 크게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K-반도체 벨트’ 조성 ▲반도체 제조 중심지 도약을 위한 인프라 투자 확대 ▲인력·시장·기술 등 반도체 성장기반 확보 ▲국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반도체 위기대응 강화로 나뉜다.

이번 반도체 전략에서 눈에 띄는 것은 향후 10년간 2030년까지 약 ‘510조원+α’에 달하는 기업 누적 투자 계획과 세제 혜택이다.

특히 세제 혜택의 경우 각 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평가다. 정부는 연구개발(R&D)에서는 최대 40~50%, 시설투자에 있어서는 최대 10~20%를 공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올해 하반기부터 2024년까지의 투자분이 적용된다.

이번 전략 발표 이전 R&D 세액 공제는 대기업이 최대 30%, 중소기업은 최대 40%였다. 시설투자의 경우 대기업은 겨우 3%에 불과했다. 이번 발표로 ‘핵심전략기술’의 연구개발, 시설 투자 세액 공제가 대폭 높아진 만큼, 기업들의 투자 위축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삼성전자는 같은 날 기존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발표 당시 수립한 133조원의 투자 계획에 38조원을 추가한, 총 171조원의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첨단파운드리 공정 연구개발과 생산라인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D램 EUV 기술 선도적 적용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융합한 ‘HBM-PIM’ ▲D램의 용량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CXL D램’ 등 미래 메모리 솔루션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한국이 줄곧 선두를 지켜온 메모리 분야에서도 추격이 거세다”며 “수성에 힘쓰기 보다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벌리기 위해 삼성이 선제적 투자에 앞장 서겠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또한 그동안 부족했던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비중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현재 대비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며, 국내 설비증설, M&A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천과 청주공장에 2030년까지 110조원을 투자하며, 이어 2025년부터는 용인 클러스터에 10년간 12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총 230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이 또한 정부의 세액 공제, 규제완화 등 지원 방안 확대에 따른 적극적 투자로 풀이된다.

반도체산업협회는 같은 날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전략을 적극 환영한다”라며, “기업의 신속하고 과감한 투자를 위해 세제·금융 지원, 규제합리화, 인프라 지원 뿐 아니라 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한 인력양성 지원이 추진됨을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사진=삼성전자

◆ 당면한 반도체 수급난…늦었지만 박차 가해야

이번 정책이 연구개발, 시설투자 등 장기적인 발판 마련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현재 당면한 반도체 수급난에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게다가 이번 정책도 미국과 유럽,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서는 늦었다는 지적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은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 한국지엠 등 국내 완성차 기업들도 자동차 생산량을 감산하거나 공장을 멈췄다. 업계에서는 이달과 6월이 차량용 반도체 ‘보릿고개’가 될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의 지속확산으로 차량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으나 조기 백신 보급으로 인한 상황 개선, 개인 소비자의 차량 구매 급증으로 수요가 폭등했다”라며, 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의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번 정부의 ‘K-반도체 전략’과 같은 장기적인 전략이 아닌 당면한 문제를 극복할만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대종 교수는 “입국절차 완화, 차량용 반도체 전액 공제, 중소기업 대출한도 완화 및 저금리 대출 등 정부가 지원할 방법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부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는 이날 차량용 반도체 수요·공급기업 간 연대·협력 협약식을 체결하기도 했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 미래차 핵심 반도체의 연구개발 지원 등을 위한 협력을 약속한 이번 협약은 ▲차량용 반도체 수급대응을 위한 정부, 기업, 기관의 협력기반 마련 ▲미래차 핵심 반도체의 선제적 내재화를 위한 공동 노력 등의 의의를 가진다.

이번 정부의 ‘K-반도체 전략’도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사실 정부의 대책 마련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메모리 반도체 1위 사수, 시스템반도체 투자 확대 등을 지원하는 방안이 지속돼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지원책 발표가 미국과 유럽, 중국 등 타국에 비해 늦은 만큼, 이번 전략 발표를 토대로 향후에도 기업이 체감할 수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번 정부의 발표 이전 이미 미국은 반도체 분야 설비투자에 40% 이상의 세액 공제를 지원했으며, 유럽은 500억유로(한화 약 68조원) 지원 방안을, 중국은 법인세 면제 방침을 각각 발표한 바 있다.

파이낸셜투데이 정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