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헬기 추락사고 진두지휘, 솔선수범 보여줘”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은 21일 페루에서 순직한 삼성물산 직원 3명에 대한 영결식에서 “지구 반대편 이역만리의 눈보라치는 바위산에서 순직한 고인들은 바로 우리의 꿈이자 미래”라며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정 부회장은 사고가 발생하자 페루당국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는 한편, 직원들의 사망이 확인되자 지구반대편으로 날아가 고인들의 시신을 직접 인도하는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특히 삼성물산의 직원들을 하나로 규합해 단결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정 부회장은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모습까지 함께하면서 세간에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는 지난 8일 발생한 페루 헬기 사고의 전말과 후속조치를 통해 삼성물산이 보여준 단결력을 살펴봤다. 페루에서 운명을 달리한 대한민국 산업역군에 대해 본지는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1일 오전 7시 삼성서울병원 발인장에서는 지난 8일 페루 헬기사고로 숨진 순직직원에 대한 합동연결식이 진행됐다. 유족들과 삼성물산 임직원이 참석한 이날 영결식에는 장의위원장인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의 영결사로 시작돼 직원들의 고인들에 대한 추도사, 종교의식, 유가족과 임직원의 헌화로 40여분간 이어졌다.

정 부회장은 추도사에서 “선구자적 사명감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유명을 달리한 사랑하는 동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고 합니다”라며 “만리타국의 오지를 마다하지 않고 내가 먼저 가야한다던 그 뜨거운 열정과 용기를 기리며 삼가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합동영결식을 마친 후 삼성물산 사옥에서 삼성물산 임직원과 고인들의 고별의식이 진행됐다. 운구차량은 전 임직원이 도열한 삼성물산 사옥을 한 바퀴 돈 후 장지로 이동했다.


마지막 출근길 전 직원 함께

지난 6일 지구 반대편 페루 이남바리강 인근에서 수력박전용 댐 건설을 위해 헬기를 타고 현지시찰을 나섰던 한국 측 공동개발그룹의 삼성물산, 한국수력원자력(K-Water), 한국종합기술, 서영엔지니어링 직원 8명 등 승객 14명이 탑승한 헬기가 17시 25분쯤 마지막 교신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됐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페루지점 및 현지에 체류 중인 자사 직원 등과 연락을 취해 사고현장을 파악하는 등 발 빠르게 현장 상황을 주시하며 페루 현지 파트너사인 ACRES사를 통해 전문 민간 산악구조대를 급파 하는 등 구조작업에 총력을 펼쳤다.

사고 나흘만인 10일 페루 경찰과 군 당국은 실종헬기를 수도 리마에서 남동쪽 720㎞ 남부 잉카유적지인 쿠스코에서 60㎞ 떨어진 마마로산 산 해발 4950m 지점에서 사고 헬기를 발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탑승객 14명 전원 사망했다.

이 헬기에 탑승한 사람은 삼성물산 김효준 부장(48), 우상대 과장(39), 유동배 차장(46), Erik Kupper(에릭 쿠퍼) 과장(네델란드인·34)과 K-Water 김병달 팀장(50) 한국종합기술 전효정 상무(48), 이형석 부장(43) 서영엔지니어링 임해욱전무(56), 최영환 전무(49) 등이다.

이번 사고 헬기는 일명‘시코르스키’로 불리는 ‘S-58ET’ 기종으로 1975년 제작되 37년이나 운행한 노후헬기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정 부회장, 지체 없이 페루로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은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페루 당국의 발표를 보고 받고 직접 페루 현지로 사고수습을 위해 10일 오후 3시 긴급 출국했다.

정 부회장은 이날 출국에 앞서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땀 흘리던 우리 동료가 희생돼 너무 충격이 크고 안타깝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회사는 유족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사태 수습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또한 사고 직후 설치했던 상황실을 사고대책 수습반으로 전환시키고 전무급인 경영지원실장이 총괄 지휘했다.

이번 사고로 사망한 故 김효준 부장은 지난 1999년 12월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전설의 농구스타 故김현준씨의 친동생으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현준씨는 1980년대 정확한 슛으로 전자슈터라는 명성을 얻으며 한국 농구사의 한 획을 그었던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비운의 형제, 슬픔 극에 달해

김현준 씨가 농구 인생을 삼성에 바쳤던 것처럼 동생 김효준 부장도 1990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뒤 줄곧 사회간접자본(SOC) 민자사업의 영업 총괄을 맡아온 삼성맨이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사고 발생 12일 만에 18일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내로 돌아온 시신은 강남구 일원동의 삼성의료원에 마련됐으며 김효준 부장과 유동배 차장,우상대 과장,에릭쿠퍼 과장의 합동빈소에는 조문객이 끊이질 않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만사를 제쳐두고 페루로 달려가 직원들의 시신을 인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사실 회사 직원이 순직을 해도 회사의 대표가 외국으로 달려가 시신을 직접 인도하는 경우가 그리 만치 않다”며 “이번 사고가 삼성물산의 조직력과 끈끈함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네덜란드 출신 에릭쿠퍼 과장의 시신은 유가족의 뜻에 따라 페루에서 네덜란드로 옮겨져 22일 현지에서 장례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삼성물산은 임직원 4명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파견해 장례와 조문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이건희 삼성 회장은 페루에서 헬기 사고로 숨진 삼성물산 직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방문해 해외 출장 직원들에 대한 안전대책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 회장은 14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 등과 함께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1층에 마련된 분향소를 방문했다. 분향을 마친 이 회장은 최지성 실장에게 "해외 출장 직원들의 안전대책을 강화하고 유해운구 등 장례절차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특히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배려하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이번 조문에 대해 재계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함께 일하던 동료를 잃어 침통한 분위기다. 삼성물산의 전 임직원은 고인이 되신 분들에 대해 최대한의 예의를 보여드렸다”며 “그 분들이 힘써서 개척한 해외시장 개척은 계속 진행될 것이며 이것이 해외시장 개척에 힘쓰신 그들에 대한 최소한 예의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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