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등 악재 ‘나 몰라라?’

[파이낸셜투데이=황병준 기자] 지난 2일 박용만 회장이 두산그룹을 이끌어갈 수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116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두산은 변함없이 성장해 왔다”며 “따듯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자신의 경영관을 내비쳤다.

하지만 두산그룹은 최근 공정위로부터 하도급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 받고, 두산엔진의 생산 중단 사실을 은폐하는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나서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척결하는데 반해 두산은 동현엔지니어링을 합병하면서 그동안 제기되어 왔던 일감몰아주기를 ‘물 타기’로 감추려는 꼼수를 피워 지탄을 받고 있다. 그 이면을 <파이낸셜투데이>가 들춰봤다.

지난달 30일 두산 이사회는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용퇴결정으로 그 동안 두산 대표이사(CEO)로서 실무를 진두지휘했던 박용만 신임회장을 차기 수장으로 결정했다. 이로서 박 회장은 2009년 취임 후 그룹을 맡아오던 박용현 전 회장에 이어 차기 회장으로 선임됐다.

박 회장은 이달 2일 취임식을 갖고 “폭발적 성장을 이어가려면 구성원들이 통일된 가치와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며 “사람의 중심이 되는 미래를 더욱 역동적으로 추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따뜻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탁월한 수준의 제품과 기술 확보 및 지속적 성장을 위한 전 조직이 매진해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두산그룹의 총수 자리에 오른 박용만 회장이 풀어야할 숙제 또한 산적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도급대급 소급적용 두산 ‘1억200만원’ 과징금

최근 두산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대급을 1~6% 인하하고 단가를 소급적용해 대금을 감면한 두산에 시정명령과 함께 1억200만원의 과장금 부과 받았다. 문제가 된 업체는 ‘동명모트롤’로 굴삭기의 부품인 유압기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2008년 7월 두산에 인수됐으며, 2년 뒤 2010년 7월 두산으로 흡수 합병됐다.

동명모트롤은 지난 2008년 초 협력업체에 대하여 내부 목표단가인하율보다 높은 수준인 10%까지 단가 인하를 요구한 후 수급사업자별로 1~6%까지 단가인하폭을 조정(22개 수급사업자, 325개 품목, 피해금액 3억3000만원)했다.

특히 2008년 1월16일부터 4월15일까지 납품된 물량 중 단가합의 이전에 납품이 완료된 물량에 대해서도 2008년 5월 인하된 단가를 일방적으로 2008년 1월16일까지 소급적용해 그 차액을 동월 하도급대금에서 공제했다.

공정위는 “두산이 인수전 회사의 불법행위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시정했음에도 불구, 매년 관행적으로 되풀이되는 무조건적인 하도급대금 인하행위의 심각성을 고려해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일감 몰아주기 관행 차단에 칼을 빼어든 정부는 이에 대한 모범거래 기준을 제정했다.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고 경쟁 입찰을 확대, 독립 중소기업에 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등을 골자로 한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의 거래상대방 선정에 대한 모법기준’을 제정, 대기업에 권고했다.

하지만 이번 모범기준 제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모범 기준에 불과해 대기업이 실제로 이를 지킬지는 미지수다. 두산그룹은 지금까지 일감몰아주기를 관행처럼 지속 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동현엔지니어링이다.


동현엔지니어링 지분 100% ‘두산家 비밀 금고?’

동현엔지니어링은 두산 총수일가가 지분을 100% 가지고 있어 두산그룹계열사가 일감을 대부분 몰아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지탄을 받고 있다.
두산그룹일가는 이러한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지난해 5월 동현엔지니어링의 일감몰아주기를 ‘물 타기’하는 차원에서 디에프엠에스(DFMS‧구 두산모터스)에 합병시켰다.

제계의 한 관계자는 “이 합병조치는 동현엔지니어링의 계열사 지분 의존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이 기업의 인수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시너지 효가가 없다는 것이다.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꾸준히 받아왔던 동현엔지니어링은 합병당시에도 이러한 논란은 계속됐었다.

자동차 딜러사업을 주로 하는 두산모터스와 건물관리를 주업으로 하는 동현엔지니어링의 합병이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보다는 동현엔지니어링에 대한 두산 총수 일가의 지분을 낮추기 위한 합병 작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현엔지니어링은 1986년 10월 설립된 건물관리업체로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등 창업주 3세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건물관리 업체다.

기존 동현엔지니어링이 관리 중인 사업장은 두산타워, 두산빌딩, 연강재단, 교원비전센터, 교원드림센터, 잠실야구장, 두산인재기술원, 춘천콘도미니엄, 춘천컨트리클럽 등이다. 대부분 두산그룹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동현엔지니어링은 이들 사업장과 경비, 청소, 주차장 관리, 각종 설비의 운전, 보수 및 제반시설 유지 등을 주 계약으로 하는 관리 하도급 계약을 체결해 왔다. 이로 인해 2009년 매출 266억원 가운데 74%인 197억원을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두산그룹의 계열사 중에 동현엔지니어링과 거래를 한 곳은 (주)두산(23억원), 두산인프라코어(61억원), 두산타워(52억원), 두산건설(21억원), 두산큐벡스(6억원), 오리콤(6억원), 두산베어스(5억원), 두산DST(4억원), 두산메카텍(4억원), 두산캐피탈(3억원), 두산엔진(2억원), 두산중공업(2억원) 등 무려 20개사에 이른다.

결국 그룹 계열사의 거의 대부분이 동현엔지니어링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외부회계에서도 나타난다.

삼일회계법인은 “회사의 총 매출액 대비 특수관계자에 대한 매출액 비율은 당기(2008년)와 전기 각각 82%와 84%였다”며 “이처럼 회사의 영업은 동 회사들과 영업관계에 중요하게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동현엔지니어링은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지분 37.19%(3만7189주)로 최대 주주였다. 이어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현 전 두산그룹회장이 각각(2만4794주)를 가지고 있었으며, 박용만 두산그룹회장이 13.22%(1만3223주)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동현엔지니어링이 두산의 모든 계열사와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업무 효율화를 위한 방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정위가 발표한 2009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살펴보면 두산그룹의 계열사는 26개 기업으로 이중 20개 기업이 동현엔지니어링과 거래했다.   

두산임원 왜 동현엔지니어링 이사로 등재?

동현엔지니어링과 두산그룹의 수상한 관계는 이뿐만이 아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자료에 따르면 2010년 4월 동현엔지니어링의 이사에는 이오규(전 두산인프라코아 대표이사‧당시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또한 정민철(당시 두산 전무)감사도 임원등기에 올랐다. 두산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당시 합병전인 회사의 임원으로 등재해 있다는 것이 비정상적이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 관계자는 <파이낸셜투데이>와 통화에서 “이오규 사장이 2009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등기이사로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법률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09년 11월 자살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도 이들 형제들과 같이 동현엔지니어링 지분(19.87%‧1만9868주)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형제의 난’이 발생하고 난 후 2008년 6월 두산가 형제들에게 모두 매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의 오너 형제들은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동현엔지니어링의 실적을 높여 짭짤한 부수입까지 챙겨갔다는 것이다. 동현엔지니어링은 지난 2008년 중간배당 50억, 연차배당 15억원 등 총 65억원을 주주들에게 지급했다. 배당성향이 무려 354%의 초고배당으로 이 돈은 모두 두산家로 흘러들어갔다.

동현엔지니어링 외에도 내부비중이 높았던 기업은 또 있었다. 바로 1996년 설립된 2008년 법인 해산된 ‘세계물류’다. 이 회사는 사업부진으로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산그룹과의 내부거래 해소 차원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계물류 또한 동현엔지니어링과 마찬가지로 매출의 절반 이상을 내부거래에서 채워갔다. 이 회사의 계열사 의존도는 ▲2005년 59%(총매출 457억원-계열사271억원) ▲2006년 61%(425억원-258억원) ▲2007년 64%(414억원-265억원) ▲2008년 50%(301억원-150억원)로 나타났다.

지분 또한 박용곤 명예회장 29.8%(2만9800주), 박용오 전 회장 19.87%(1만9868주), 박용성 회장 19.87%(1만9868주), 박용현 회장 19.87%(1만9868주), 박용만 회장 10.59%(1만596주) 등 100%를 두산 오너일가가 소유였다.

두산엔진 생산 중단 4개월 동안 ‘쉬쉬’‥공시규정 위반(?)

또 다른 악재가 발생했다. 최근 두산엔진이 엔진 생산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사실이 4개월 가까이가 지나서야 밝혀졌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공시규정을 위반했다며 지적했다. 선박용 엔진 전문업체로 연매출 2조원대의 대기업인 두산엔진은 지난 해 11월, 제 4공장 생산을 중단하고 계열사인 두산메가텍이 임대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공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에 의하면 최근 사업연도 생산액의 10% 이상을 생산하는 공장이 활동을 멈췄을 때는 당일, 거래소에 신고하고 공시해야하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이는 생산 중단이 투자자들의 주요 투자 지표라고 할 수 있는 매출과 이익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두산 엔진의 제 4공장 연간 생산 능력은 300만 마력으로 추정하며, 전체 생산 규모 1400만 마력을 감안할 때 전체 생산액의 10%를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두산측은 한국거래소에 보낸 소명자료를 통해 제4공장의 생산액은 10%미만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생산 중단과 관련한 의혹이 커지자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두산엔진이 지난 11월, 선박용 엔진을 생산하는 창원 4공장 가동을 당분간 중단하고, 이를 화공 플랜트 기기를 제조하는 계열사인 두산메가텍에 2년 기한으로 임대했다"는 내용을 밝혔다.

생산중단 이후 4개월이 지난 후의 일이다. 두산엔진의 공시규정위반 의혹을 두고 한국거래소측은 두산엔진의 사업보고서와 소명자료를 토대로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의 한 관계자는 “두산 그룹의 이른바 눈 가리고 아웅하기식의 태도가 이런 화를 불렀다”며 “그룹 총수 자리를 놓고 형제들 간의 피 말리는 전쟁과 지분 쪼개기로 문제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 회장이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일련 악재들에 어떤 대응 할지 재계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의 중심이 되는 미래를 역동적으로 열어나가겠다는 박 회장의 다짐처럼 최근의 악재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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