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한 푼도 내줄 생각 없다”‥대반격 카드 있나


[파이낸셜투데이=조경희 기자]지난 17일 이건희 회장은 좀처럼 출근길에 이용하지 않던 로비를 통해 출근하면서 대기하던 기자들을 상대로 “한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 “헌법재판소까지 가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이건희 회장에게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자신을 상대로 “故 이병철 회장이 남긴 차명재산을 분배하라”며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 이숙희씨 소송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드디어 소송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분석과 함께 당초 ‘합의점’을 찾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소송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파이낸셜투데이>에서 일련의 삼성家의 상속분쟁에 대해 총정리 해봤다.

상속분쟁에 대해 줄곤 침목을 지켜오던 이건희 회장이 말문을 열면서 삼성그룹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간 삼성은 삼성家의 소송에 대해 ‘형제의 亂’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삼성물산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미행 사실이 알려지면서 삼성에 대해 ‘도덕적’ 논란이 제기되는 등 악재를 견디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그간 백혈병 논란에도 끄떡없던 초일류 기업 삼성이 어떠한 식으로 ‘재벌’이 됐고, 어떻게 부를 쌓아올렸는지, 그리고 어떠한 식으로 이를 유지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이에 대해 삼성은 지난 17일 이건희 회장이 이번 소송과 관련 처음으로 공식적인 언급을 했다. 이건희 회장은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며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가겠다. 선대 회장 때 이미 분배가 다 된 것이고 각자 돈들을 갖고 있고 CJ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너무 크다보니 욕심이 나는 것”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번 소송에 대해 더 이상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건희 회장의 경고인 셈이다. 특히 이맹희씨 소송에서 승소할 경우 삼성가에서의 장자 자리를 두고, 이재용 사장 대신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삼성의 ‘공식’ 후계자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도 제기돼왔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번 소송에 대해 삼성家의 유산 분쟁이 자칫 후계자들 간의 경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해왔다.

이에 이건희 회장이 공식적으로 “한푼도 내줄 수 없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삼성家에 불어 닥칠 후계자 논쟁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건의 서막’, 국세청 보낸 한 통의 문서

이번 상속 분쟁의 단초는 지난해 CJ그룹의 대한통운 인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세청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차명주식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단독상속’ 여부에 대해 삼성그룹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 국세청은 지난 6월 이맹희씨 등의 형제들에게 “故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이 2008년 12월 이건희 회장 명의로 넘어갔는데, 상속인들이 지분을 포기하고 이건희 회장에게 증여한 것이 맞느냐”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 측이 이맹희씨의 큰 아들인 이재현 CJ회장측에 보낸 공문에서 “선대회장께서 삼성그룹 내 회사들의 실명주식과 차명주식을 포함하여 모두 각 상속인들에게 분할해 주셨다”며 “선대회장의 상속재산은 상속 당시에 모든 재산분할이 결정됐다”고 적시했다.

이어 “모든 상속인들은 각자가 분할 받은 재산이외에 다른 상속인의 재산에 대하여는 어떠한 권리나 이의가 있을 수 없으며, 더더욱 특정 상속인이 차명재산을 국세청에 신고한 후 실명 전환하는 시점에서 다른 상속인들이 재산의 상속지분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이 공문을 받은 CJ가 잠잠 하자 이건희 회장측은 ‘차명재산에 대한 공동상속인들의 권리 존부’라는 문서를 다시 보냈다.

이건희 회장 측은 이 문서에서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상속권의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상속권의 침해가 있는 날로부터 10년을 경과하면 소멸하는데 이건희가 삼성생명의 차명주식에 대하여 선대회장의 작고 이후부터 독자적으로 점유, 관리하며 오면서 배당금을 수령했으므로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 도과되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별검사가 2008년 4월 17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차명주식에 관하여 언급하였기 때문에 공동상속인들이 그 때 상속권의 상속권의 침해사실을 알았다고 보아야 하므로 제척기간(3년)이 도과하였다”고 기술했다.

이에 CJ측은 이 공문을 보자마자 내용 확인 여부에 들어갔고, 법무법인 화우로부터 충분히 승소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CJ그룹 측에서는 ‘소송을 접자’는 입장을 취했으나 이맹희씨 측에서 개인 소송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비자금 의혹 관련 특검 수사 때 비자금조성 의혹을 ‘선대회장의 유산’이라는 명분으로 수사망을 빠져 나갔지만 형제간의 분쟁은 피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1조원 규모 소송…지연될수록 금액 더 커져
범 삼성家의 소송 규모는 1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향후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등이 포함되면, 소송 규모도 2조원대로 커지게 된다.

범 삼성家의 소송 규모는 1조원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향후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등이 포함되면, 소송 규모도 2조원대로 커지게 된다.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맹희씨와 차녀 이숙희씨는 소장에서 “선대 회장이 타계 당시 차명주주 명의로 보유하고 있던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발행 주식이 다른 상속인들은 모른 채 이건희 회장에서 포괄적으로 승계됐다. 이는 상속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법적 상속분에 따라 주식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이맹희씨는 1차로 지난 2008년 12월 31일 이건희 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실명전환한삼성생명 주식 3244만8000주 중 자신의 상속 몫인 824만761주에 대해 인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숙희씨도 이건희 회장에 대해 자신의 상속 몫인 삼성생명 주식 223만여 주를 인도하라고 했다. 또한 삼성전자의 보통주와 우선주 각 10주, 그리고 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생명 주식 각 100주와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면서 10년간 받은 배당금 중 1억 원과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으로 지급받은 배당금 가운데 1억 원을 우선 청구했다.

하와이 출국, 누나 이인희씨와 이명희 회장 설득?
이런 가운데 이건희 회장은 지난 3월 8일 오전 10시 비행기로 하와이행에 올랐다. 하와이에는 이병철 창업주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이번 소송전에 참여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삼성측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하와이에 출국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일각에서는이건희 회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이인희씨를 만나 이번 소송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는 한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을 설득하기 위한 방문이라는 것이 재계의 분석이다.

이명희 회장은 이번 삼성가 소송분쟁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명희 회장은 이마트(7.38%)와 신세계백화점(3.7%)을 통해 삼성생명 지분 11.08%를 가진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달 29일 신세계그룹 측에서 “소송전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 사실, 신세계그룹 측에서는 이건희 회장과의 소송에서 얻게 될 실익을 봤을 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굳이 삼성과 적이 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다만 해묵은 ‘감정’이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 삼성이 삼성테스코(홈플러스)를 설립하면서 유통 사업에 진출, 사업군이 겹치며 이마트와 경쟁 구도를 만들었고 결국 업계 2위의 홈플러스를 탄생시킨 전력이 있다. 당시 이명희 회장이 삼성의 진출에 대해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최근에는 ‘저가TV'를 두고 이마트와 삼성전자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재용 vs 이재현, 삼성家 장자는 누구?
이번 삼성가의 소송에 대해 재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이번 소송을 통해 달라지는 변화들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라든지 이건희 회장의 지분율 등에 변화 올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삼성그룹의 3세 후계 구도로 변화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소송에 패하면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에 따른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라면서 “이와 맞물려 3세 승계 작업에도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 장손인 이재현 CJ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사장을 중심으로 한 범삼성가 3세들의 자존심 경쟁과 함께 ‘정통성 논란’이 재현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울러 ‘삼성킬러’로 평가받는 법무법인 화우가 이맹희씨의 편에 섰다는 점에서, 삼성가의 소송단과 견주어볼 때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삼성가의 상속분쟁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소송전이 장기전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데 삼성과 CJ의 피 말리는 전쟁이 될 가능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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