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한전 사장, 시름 깊어지는 내막

 

 

[파이낸셜투데이 성현 기자] 김중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KEPCO) 사장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풀어내야 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최근 전 직원 참석한 월례조회 자리에서 “변하지 않으면 벼랑 끝에 서게 된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한전은 현재 수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해외 공사에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내부적으로도 조기종영한 종편 드라마에 수억원을 쏟는 가하면 자회사에 배당금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해 논란을 산 바 있다. 설상가상, 김쌍수 전 사장 시절부터 끊이지 않았던 직원들의 각종 비위사건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어 김 사장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벼랑 끝에 서게 된다” 김중겸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KEPCO) 사장이 지난 2일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직원 1,000여명을 모아놓고 한 말이다.

김 사장은 또 “우리가 스스로 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면서 “변화하지 않으면 외부에 의해 변화를 강요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전의 기업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지속 성장하는 것이 경영자의 윤리 인 만큼 올해를 흑자전환 원년의 해를 만들기 위해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조회는 사내 방송을 통해 전국 2만여 한전 직원에 생중계 된 것으로 알려졌다.

 

8조원대 적자, 해외수주 연이어 발목 잡아

 

김 사장의 말대로 한전은 매년 누적적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전은 ▲2008년 당기순손실 2조9,525억원 ▲2009년 777억원 ▲2010년 1조4,782억원 ▲2011년 3조5,141억원 등 4년 연속 적자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합치면 무려 8조225억원이다.

김 사장이 ‘흑자원년’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 한전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90%에 머물고 있는 원가 보상률 탓이 크다. 원가의 49%를 차지하는 연료비(석유 등)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판매 가격은 거의 변함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 2005년 kWh당 75.9원 이었던 전기 원가는 2010년 96.3원까지 올랐다. 반면 한전이 판매하는 전기요금의 원가보상률은 2005년 98%에서 2010년엔 90.2%로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결국 100원어치를 팔면 9.8원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산업계 일각에선 적자기업 한전이 수많은 흑자 대기업을 지원하는 꼴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예컨대 2010년 원가 부족액 4조4000억 원 중 약 35%(1조5000억 원)를 산업용 전기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즉, 기업들이 값싼 전기로 공장을 가동하는 탓에 한전의 적자 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원가 이하의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인해 한전의 적자를 계속 키우고 있고 이로 인해 부채가 커지면서 한전의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4년 간 한전의 부채는 연 평균 6조1000억 원 증가했다. 2008년 25조9000억 원이던 부채가 지난해엔 50조3000억 원까지 불었다. 부채 비율로 따지면 63%에서 113%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한전의 부채증가는 곧바로 해외 사업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국제 입찰은 통상 사전 적격심사를 통해 이뤄지는데, 입찰자의 재무능력과 기술력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결국 한전은 재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각종 입찰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 석탄화력발전 프로젝트(예상 공사비 12억 달러)와 이집트 다이루트 복합화력발전 입찰 탈락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한전은 지난해 4월 발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투찰 가격이 변수일 뿐 발전소 건설·운영 경험이 풍부하다는 자체 판단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전은 본 입찰에 참여조차 못해보고 적격심사(PQ)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이유는 역시 재무상태였다. PQ란 재무제표와 신용등급 등을 서류로 심사해 부적격자를 솎아내는 것이다. 다이루트 복합화력발전도 지난해 6월 재무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는데 특히 2010년 첫 도전에서 발길을 돌린 이후 전열을 재정비해 두드린 2차 시도였다는 점이 김 사장의 마음을 쓰리게 하고 있다.

전기 요금을 올려 재무 구조를 개선시키는 방법이 있지만 현재로선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8월과 12월 전기 요금을 전격 인상, ‘기습 인상’이란 비판에 직면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민 경제 안정화를 꾀하고자 물가 안정을 최우선적으로 챙기는 상황도 부담이다.

그렇다면 한전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일까. 한전 관계자는 “판매가가 원가보다 13% 가량 낮으니 재무 구조가 악화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판매가 현실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답했다. 원론적인 얘기만 늘어놓고 있다.

이와 관련, 한전 전직 임원은 “한전의 문제는 주인 없는 회사다 보니 적당히 시간만 떼우고 자리만 지키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면서 “사실 한전이 민영화되기는 했지만 공기업이다. 이렇다 보니 내부 비리도 많고 안일주이가 팽배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부 개혁과 불필요한 경비만 줄여도 지금의 적자의 폭을 조금씩 줄여 나갈 수 있다”면서 “전기요금 인상만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걸핏하면 뻥뜯기?’ 자회사는 한전의 봉

이 때문이었을까. 한전은 자회사들에게 수익 대부분을 배당금으로 내라고 요구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달 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등 주요 자회사에 지난해 순이익의 70%를 배당금으로 요구했다. 그간 관행이 순이익의 20~30%였으니 2~3년치를 한꺼번에 요구한 것이다.

이 사안은 이미 한전 이사회에서 의결돼 각 자회사의 주주총회 승인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한전이 대부분 자회사 지분의 7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이기에 통과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되면 한전은 배당금만으로 약 7,500억원을 챙기게 된다.

이런 상황은 자회사 직원들의 거센 반발을 야기 시켰다. 자회사 노동조합들은 지난달 19일 공동으로 성명서를 내고 “한전은 경영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자회사들의 성장과 미래를 말살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또 “자회사들의 중장기 부실을 초래하는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한전과 자회사 관계뿐 아니라 국민경제에 크나큰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총력투쟁’을 천명했다.
이렇듯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 높은 배당비율을 고수한 한전이다.

자회사 조기종영 ‘한반도’ 3억대 광고비 지불 논란

이런 상황인데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곳에 거액을 투자해 비난을 사고 있다.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한전과 6개 발전 자회사들은 조선일보의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 개국을 맞아 준비한 드라마 ‘한반도’에 한전 1억원, 6개 발전 자회사가 4000만원씩 총 3억4000만원의 협찬금을 제공했다.

문제는 홍보의 실효성이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월 6일 방송된 한반도의 첫 방송은 1.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후 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부진을 면치 못한 ‘한반도’는 종전계획(24부작)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 3일 조기종영(16회 종료)하기까지 했다. 앞서 밝힌 대로 8조 원대 채무를 떠안은 한전이 자회사들까지 끌어들여가며 조기종영한 드라마에 수억원을 건네준 꼴이다.

따라서 시청률이 저조해 조기 종영한 드라마에 협찬금을 지원한 것이 과연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에게 홍보효과를 주었는지 여부는 미지수이다.

특히 이번 드라마 협찬 과정에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의 압박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권 의원은 지난해 한전과 발전사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반도에 대한 지원을 한 번 검토해봐라”는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과 발전회사들을 감사하는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인 권 의원이었다. 권 의원은 지난 1월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제작 발표회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전과 6개 발전회사들이 어쩔 수 없이 해당 드라마에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권 의원이 투자를 강요하거나 권유한 적은 없다”면서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협찬 요청을 받고 검토한 결과 해당 드라마가 에너지를 소재로 한 드라마이기 때문에 홍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투자를 결정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사방에서 ‘빵빵’ 터지는 각종 사고

김 사장이 풀어야할 과제 중에는 내부 단속도 포함돼 있다. 한전은 전 사장인 김쌍수 사장 재임시절부터 갖은 직원 비위사건으로 수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직원 70여명이 불법 하도급을 묵인·알선해주고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경영난을 해소할 ‘구원투수’로 지난해 9월 한전 사령탑에 오른 김 사장이지만 이는 개선시켜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김 사장 취임 이후에도 직원 비위 사건은 계속됐다.

감사원은 고리원전과 한전KPS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여 터빈밸브작동기 구매요청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한수원 직원 4명을 적발했다고 지난달 9일 밝혔다. 감사원에 따르면 한수원은 원자로에서 터빈으로 공급되는 증기의 양을 조절하고 차단하는 발전소의 핵심설비인 터빈밸브작동기를 협력업체 H사와 수의계약으로 구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조사결과, 2008년 터빈밸브작동기의 정당한 가격은 대당 4억3,393만원이었지만 한수원은 이 보다 훨씬 비싼 대당 6억2,425만원에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에 적발된 직원들은 당시 고리원전에서 터빈밸브작동기 구매시방서를 작성하거나 기술검토와 구매요청업무를 맡으면서 제외해야하는 시험장치비와 프로그램개발비를 포함시켜 적정가보다 높은 구매예정가를 정해 한수원 본사 자재처에 통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한수원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H사로부터 터빈밸브작동기 35대를 구매하면서 적정가인 149억8,000만원보다 55억9,000여만원이나 비싼 205억7,000여만원을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회사 재산을 몰래 훔치고 특정 업체가 부당한 이득을 취하게 한 혐의로 이 직원을 고발하고 해당 기관장에게 이 직원을 해임하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 관계자는 앞서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해당 직원들은 모두 지난해 징계절차를 거쳐 해임됐다”고 말했다. 이어 부품 관리 소홀로 인해 안전문제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터빈밸브작동기는 비안전등급에 해당하는 부품으로 원자로 안전과 깊은 관련이 없다”고 답했다.

 

 

고리원전 1호기 가동중단 은폐 논란은 한전을 얘기하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따르면 한수원이 운영하는 고리원전 1호기는 지난 2월 9일 오후 8시34분 핵연료 교체와 점검 등 이유로 가동을 중단하고 발전기 보호계전기 시험을 진행하던 중 외부전원이 끊겼다. 원전 관계자들의 긴급 조치로 12분 만에 복구됐지만 관련부서에서 이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아 한 달이 지나서야 외부로 알려졌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국민적인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었고 고리원전 1호기가 14년간 추가 운영된 노후 시설이었기 때문에 당시 전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이후 사태는 정권 책임론이 등장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지난달 16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전이 인류에게 알린 마지막 경고였는데 이 경고에도 불구하고 고리 원전이 12분간 완전히 정전되는 사고가 났다”며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고였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과 지난달 15일, 고리1발전소장과 팀장급 인사 2명이 보직 해임되는 선에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검찰이 수사 중인만큼 그 윗선까지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다.

한전 관계자는 “자회사이긴 하지만 엄연히 법인이 다른 별개의 회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전의 이 같은 적자와 조직 해이는 결국 김 사장이 반드시 잡아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죽어가던 현대건설을 되살린 김 사장이 이번에는 한전을 살릴 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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