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취준생 울리는 보험설계사 모집 광고가 또 다시 말썽이다. 취준생들의 억울한 피해 사례가 최근에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이 구인구직 사이트, 취업 카페 등을 통해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졸업예정자, 취업준비생)들을 대상으로 ‘보험설계사 모집’임을 숨긴 채 ‘금융전문가’, ‘인턴 모집’, ‘정규직 전환’ 등을 내세우며 광고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청년들이 처음부터 보험설계사 모집 광고임을 명확히 알고 응모한다면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규직원 모집 광고로 착각하여 취업에 나섰다가 뒤늦게 낭패를 보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이다. 이미 피해를 입은 청년들은 “명색이 대기업인데 이런 사기를 치다니 실망이 크다. 처음부터 보험설계사를 뽑는다고 했으면 가지 않았을 것인데, 차비에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다”며 뒤늦게 억울함을 토로한다.

보험사의 정규직원은 본사가 직접 모집하지만, 보험설계사는 보험사 정규직원이 아니므로 보험사 영업지점들이 자체적으로 수시 모집을 한다. 문제는 영업지점들이 보험설계사를 도입 (리쿠르팅)하는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과장된 문구를 사용해서 사회 경험이 부족한 취준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보험 영업의 성패는 주로 설계사 숫자에 달려 있고, 각 설계사의 인맥에 의존하므로 보험사들은 새롭고 젊은 설계사를 도입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동안 중년 여성 중심의 설계사들이 보험 모집을 담당해 왔는데, 갈수록 고령화가 진행되고 중장년층 고객들은 이미 다수의 보험을 가입해서 포화상태이므로 젊은층 공략을 위해 젊은 설계사의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않다. 생보사들의 신입 보험설계사 3명 중 2명 가까이는 1년 안에 그만 둔다. 국내 35개 보험사의 지난해 보험설계사의 13차월 정착률은 평균 39.8%(생보업계 35.2%, 손보업계 47.8%)에 불과하다. 신입 설계사로 일하더라도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준다.

황당한 것은 보험사들 스스로 ‘보험설계사’라는 법적 용어를 버리고 ‘재무설계사’, ‘FC(Financial Consultant)’, ‘FP(Financial Planner)’ 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설계사’라는 용어가 구식이고 부정적 이미지를 주므로 듣기 좋고 세련된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그대로인데 얼굴에 흰색으로 분칠하듯 이름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보험설계사 모집 광고에 ‘인턴 특채’, ‘금융전문가 모집’이라는 문구를 제멋대로 사용하고, 매년 취업시즌이 되면 대학교 교정에 현수막을 걸기도 한다. 이것도 모자라 “입사 후 일정 요건 달성 시 정규직 전환”이라고 사탕발림해서 취준생을 현혹하기도 한다. 보험설계사 모집 시 보험설계사라는 문구를 넣으면 응모를 기피하므로 정규직 사원인 것처럼 포장해서 유인하는 것이다.

당초부터 보험설계사 모집인데, 보험사 지점장은 “처음은 인턴이지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사내 시험과 업무 실적에 따라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고 현혹한다. 물론 달성하기 어렵고, 설령 달성하더라도 보험 영업사원일 뿐이다. 정규직 전환은 하늘의 별 따기이므로 체념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점장이 취준생을 도입하려고 감언이설로 꾸며낸 자작극일 뿐이다. 행여 약속대로 달성되지 않으면 “수습기간 중 전문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채용이 불가하다”고 핑계 대며 책임을 회피 한다. 그 피해는 모두 취준생의 몫이다.

결국 광고 문구는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취준생을 유인하는 미끼이고,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취업사기를 당하는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면밀히 들여다 볼 대목이다.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사람으로 보험협회에 등록된 자이므로,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금융에 정통한 자가 아니고 공인된 금융전문가도 아니다. 따라서 보험설계사 광고에 금융전문가라는 문구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원하는 것은 보험사 정규직원이지, 보험설계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보험사가 취준생들에게 정규직원 모집인양 현혹하는 것은 당초부터 부당한 것이다. 취준생들은 보험사 정규직원 모집으로 착각한다. 이런 사기적 광고는 보험사가 돈벌이를 위해 취준생들을 기만하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케 하는 것이므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우선, 보험사가 고쳐야 한다. 영업지점들이 보험설계사 모집 광고 시 사전에 본사 준법감시인 승인을 득하게 하고 ‘보험설계사 모집’이란 문구를 크고 명확하게 의무적으로 표시케 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전문가, 인턴, 정규직 전환’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점검, 조치해야 한다.

그다음, 금융감독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보험설계사 모집 광고에 ‘보험설계사(영업직) 모집 광고’임을 명확히 표시하도록 지시하고, 위반 시 엄하게 처벌해서 ‘걸리면 끝장임’을 확실하게 보여 줘야 한다. 보험사들의 기만적이고 저질스런 꼼수 광고로 인하여 선량한 청년들이 더 이상 피해 보지 않도록 금감원이 서둘러 조치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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