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반 미국 시카고의 범죄를 다룬 연극
옴니버스 형식의 세 작품으로 공연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루시퍼'의 세 배우. 사진=김영권 기자

도덕과 상식이 멸종된 시대, 범죄의 향기가 20세기 초반 미국 시카고를 물들였다. 렉싱턴 호텔의 비좁은 방 661호에서 일어난 세 가지의 사건을 다루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가 지난 11일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첫 무대를 올렸다.

<카포네 트릴로지>는 갱스터 ‘알 카포네’가 시카고를 쥐고 흔들었던 상황을 ‘로키’ ‘루시퍼’ ‘빈디치’ 세 편의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1923년과 1934년, 1943년도에 벌어진 세 가지 사건을 코미디와 서스펜스, 하드보일드의 각기 다른 장르로 그려냈다.

카포네의 도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

죽음이 일상이 된 도시의 밤 시카고에서는 격발하는 총소리와 복수가 끊이질 않는다. 거액에 팔린 쇼걸과 보스를 잃은 마피아, 비리에 앞장서는 부패한 경찰 등 신분을 막론하고 준법정신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코미디 장르의 ‘로키’는 쇼걸 롤라 킨의 이중생활을 담은 공연으로 카포네 보이들의 끝없는 살인과 거짓 위에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서스펜스 장르의 ‘루시퍼’는 그로부터 10년 후 같은 방 661호에 머무는 마피아 조직의 2인자 닉 니티와 그의 아내 말린의 에피소드다. 닉 니티는 단 한 번의 속삭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는데, 이 에피소드의 세 배우는 절정에 이르기까지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시간순으로 가장 마지막인 하드보일드 장르의 ‘빈디치’는 복수를 하기 위해 몇 달째 661호에 머무르는 젊은 경찰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키’의 롤라 킨과 ‘루시퍼’의 닉 사건이 등장해 나머지 두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한층 더 재미있는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인물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특유의 폭력적인 소통 방식에 있다. 각 공연에 10여 년의 시간이 존재하지만 순서에 상관없이 공연을 감상할 수 있고, 하나의 공연만 관람해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공연장 전체를 호텔 방으로 꾸미고, 출입문과 복도까지 하나의 세트로 사용해 관객의 몰입을 돕고 있다. 관객들은 목격자로서 사건이 벌어지는 661호 안에서 실감 나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공연에 등장하는 빨간 풍선의 의미를 추측해보는 것도 연극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다.

힘 있는 줄거리와 재치있는 대사로 공연 중간중간 유쾌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는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는 5월 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20세기 초반 시카고를 물들인 범죄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김태형 연출가는 “생기 넘치는 새로운 배우들이 렉싱턴 호텔 661호의 빨간 풍선과 함께 떠나가 그다음 세계로 나가길 기원한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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