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의 역사부터 다양한 질병에 대한 사용법까지
임상 결과와 환자 관찰을 통한 실증적 연구 성과
의료용 대마에 대한 본격 입문서

대마에 대한 오해, 유서 깊은 공포의 기억

대마에 대한 세계적인 주목과 새로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의료용 대마에 대한 논의조차 조심스럽다. 한국 사회에서 대마초는 여전히 사회적 ‘주홍글씨’의 상징이고 정서적 거부의 대상이다.

대마의 유용성에 주목한 미국, 캐나다, 스웨덴, 독일, 네덜란드, 호주, 핀란드, 이스라엘, 중국 등 여러 나라가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기호용 마리화나의 유통까지 허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마는 어느 순간 새로운 산업으로 세계적 주목을 끌며 급부상했다.

그런데 우리는 4살 아이의 난치병 치료를 위해 대마 오일을 구매한 어머니에게 형사 처벌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의 어머니가 구매한 대마 오일의 주성분은 환각 효과가 없는 카나비디올(CBD)로, 미국·캐나다·독일 등에서는 이미 임상시험을 통해 뇌전증, 자폐증, 치매 등 뇌 질환과 신경 질환에 대한 효능이 입증된 물질이다.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동일 성분의 대마 오일이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금지 약물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어 선수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인데, 대마에 대한 우리의 기준은 국제적인 도핑 규제 기준보다 비합리적으로 엄격하고 고지식하다.

국제법과 국내법의 간극. 국제 올림픽위원회에서 허용한 약물을 사용한 선수에 대해 국내법으로 처벌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유신의 공포 정치에 기초해 있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은 유명 연예인들을 대마초 사건으로 엮어 사회적 공포심을 조장하며 대마를 정치적 통제의 수단으로 삼았다.

수갑 찬 연예인들, 사회적으로 가혹하게 격리당하는 연예인들에 대한 기억은 그대로 대마에 대한 정서적 거부와 부당한 오해로 이어졌다. 연예인들의 대마초 파동은 유서 깊게 정치 권력의 국면 전환용으로 그 이후로도 곧잘 재생산되었고, 2000년대 유명 아이돌 가수로도 이어져 한국사회에서 대마는 금기의 상징으로 확고해졌다.

정치적 규제와 그로 인한 증폭된 공포는 대마에 대한 연구와 논의 자체를 차단했다. 따라서 많은 금지 국가에서 처벌을 각오하고 의료적인 연구를 진행할 때에도 한국사회는 그 어떤 연구도 없었다. 의료진과 연구진, 제약사들은 대마의 유용성과 의료적 효과에 대해 침묵하고 외면했다. 아예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대마는 대체 불가능한 치료제”라며 오랜 금기를 깨고 대마초를 공론화하고 있는 강성석 목사나 안동시장 등 극소수만이 용감하게 의료용 대마 합법화를 부르짖고 다수는 고요한 침묵을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사회에서 대마에 대한 세계적인 완화 정책은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되었다. 일부 절실한 극소수 환자 기족을 제외하고 대마는 아주 중독성이 강한 마약일 뿐이다. 대마의 유용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다.

의료용 대마에 대한 제대로 된 입문서

이 책은 왜 세계 여러 나라가 다른 마약류와 달리 대마 금지 정책을 철회하고 산업화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한국에 소개된 거의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본격 학술서라 해도 무방할 560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책을 읽다 보면 추천사를 쓴 애리조나대학 의학교수 앤드류 웨일의 다음과 같은 고백이 결코 과장된 헌사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수긍할 수 있다.

“수천 년 동안이나 전 세계 문화 속에서 사용돼 온 대마가 아직도 우리 약상자에 없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마치 2018년 한국적 상황에 대한 탄식처럼 느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1968년 하버드 의대에서 대마 연구를 시작하면서 대마의 여러 효능에 눈을 떴던 경험을 바탕으로 앤드류 웨일은 이 책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고무”시키며 “의학적 효과에 대한 강력한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단언한다.

이 책은 그만큼 다양한 실증적인 연구와 증거로 가득하다. 1부는 대마의 역사와 독특하고 복잡한 약리적 시스템을 다루고, 2부에서는 의료용 대마의 사용법을 하나하나 짚고 있다. 3부는 50여 종이 넘는 대마의 다양한 특성과 약학적 효능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마지막 4부에서는 다양한 질병과 그에 따른 효과적 사용법까지 풍부하게 담고 있다.

각 부마다 풍부하고 구체적인 정보들이 가득하지만, 특히 4부에 실린 질병에 따른 대마 사용법은 압권이다. 임상시험 경과와 한계, 적절한 용량과 투여 방법 등을 소개한 다음 역사적 용례도 싣고 있는데, 발작 장애에 대한 역사적 용례로 제시한 다음 사례는 매우 인상적이다.

샬롯은 매주 수백 차례나 발작으로 고통받았지만, CBD 오일을 사용하자 발작은 사라졌다. CNN에서 그녀의 스토리를 전하자 샬롯 같은 아이들을 위한 CBD 오일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스탠리 형제들이 재배하고 있던 고(高) CBD 품종을 얻기 위해 콜로라도로 몰려들었으며, 이 품종에는 ‘샬롯의 거미줄’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다. 영국의 GW 파머수티컬즈는 수 년간 대마 추출을 통해 카나비노이드 의약품을 개발하고 순수 CBD 라인을 육종해 왔다. 이 식물 추출물은 현재 에피디올렉스Epidiolex란 이름으로 시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이제 부모들은 약용 등급 CBD 오일의 초기 시험에 아이들을 참가시켜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522쪽)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의 조언과 연구, 실증적인 증거와 관찰이 거의 부재한 한국적 현실에서 이 같은 기록은 대마에 대한 과장된 미화로 읽히기 십상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와 같은 또 다른 오해와 미화도 적절하게 차단한다는 점이다. 대마의 다양한 효능을 꼼꼼하고 풍부하게 전달하면서도 대마의 부작용과 한계 또한 놓치지 않는 놀라운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마의 복잡성과 모호한 약리 작용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대마는 사용자의 성별이나 투여 방식, 시기 및 용량에 따라 정반대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대마는 최음제와 성욕 억제제의 상반된 효과를 동시에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560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전하는 전문 학술서에 가깝다. 그러나 독특하면서도 참신한 정보로 인해 비전문 일반인도 흥미 있게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놀라운 흡인력까지 가지고 있는 책이다.

2014년 이 책의 초판 출판은 수천 개의 연구를 촉진했고 의료용 대마에 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미국 전역에서 의료용 대마의 합법화와 다양한 후속 연구를 촉발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험상 의료 대마의 반대자들은 병이 걸릴 때까지만 반대자로 남아 있다”는 저자 마이클 배키스의 지적은 그래서 묘한 울림이 있다. 대마에 대한 지독한 오해와 과도한 편견을 수정해 줄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은 이 책을 읽는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대마에 대한 본격적인 의학적 실용 가이드 한 권을 손에 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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