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보험을 가입하는 목적은 질병이나 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받기 위한 것이므로 시작이 좋아야 한다. 즉, 보험을 가입할 때 묻고 따져서 나에게 필요한 보험을 적정한 보험료로 가입하고 끝까지 유지해야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몇 년 전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험’이라는 TV보험 광고가 세간의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모 보험사의 ‘OK실버보험’이었는데, 유명 연예인 이순재가 광고에 출연하여 ‘이순재보험’ 으로 더 알려져 있다. 만 50세부터 80세까지 병력, 직업 등에 관계 없이 누구나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해서 노령층과 자녀들의 가입 신청이 줄을 이었다. 해당 보험사는 관심 끄는 멘트와 적절한 모델 기용으로 상품 광고에 성공했다.

그러나 보험사의 성공과 달리, 소비자들에게는 당초부터 썩 좋은 상품이 아니었고, 광고 멘트도 부적절하여 소비자 이익에 반한 것이었다.

첫째, 보험사가 별 것 아닌 장제비 보험을 자극적인 멘트로 엄청 좋은 보험인 것처럼 호들갑스 럽게 광고해서 소비자를 현혹하였기 때문이다.

이 보험은 노령층이 가입하는 실버보험으로, 7년 안에 사망하면 소액의 사망보험금(일반사망 1000만원, 재해사망 2000만원)만 지급하는 보험이었다. 입원이나 수술 보장이 없고 기간 중 사망하지 않으면 한 푼도 없다. 더구나 65세 이상자의 주요 사망원인이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이므로 재해사망은 큰 의미가 없다.

둘째, 보험사가 부적절한 광고를 남발해서 소비자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생명보험은 본래부터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상품이므로 내 몸에 맞는 상품인지 묻고 따져서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잘못을 바로 잡아도 모자랄 판에 잘못을 조장했으니 필자는 ‘잘못된 멘트이고 보험 광고에서 절대로 금해야 할 멘트”라고 평가했다.

셋째, 보험사가 건강한 소비자들에게 보험료로 바가지를 씌웠기 때문이다.

고령자, 유병자가 가입하는 실버보험이므로 보험료가 일반보험의 3배 이상 비싼데, 소비자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건강한 사람이 가입할 보험이 아닌데도, 보험사는 애써 모르쇠한 채 건강한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판매했다. 결국 해당 보험사는 돈벌이를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멘트를 의도적으로 사용해서 소비자를 현혹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현재 진행형 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보험사들이 현재, 유병자보험을 간편심사보험이란 명칭으로 포장해서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숨기고 듣기 좋은 명칭으로 포장하였으니 본말이 전도되었다. 처음부터 유병자보험이고 보험료가 몇 배 비싼지 명확히 알리지 않은 채, 오직 3가지만 통과하면 누구나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고 반복, 광고하고 있다. 보험을 잘 모르는 건강한 소비자들만 비싼 보험료로 바가지 쓰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금융감독원이 대책을 내 놨지만 맹탕 대책이고, 내 할 일 다했다는 듯 태평하다.

TV를 틀면 보험상품 광고가 온종일 나오고, 이것도 모자라 “상담만 받아도 사은품 준다”고 소비자를 유혹한다. 사은품에 정신 팔려 전화하는 고객은 자신의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텔레마케팅도 장점만 설명하고 단점은 없다. 사회 초년생이 은행에 적금 들러 가면 이율 높고 적금과 같은 거라며 황당하게 종신보험을 가입시킨다. 무소식이던 대리점 설계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만나보니 좋은 보험 나왔으니 가입하라는 것이다.

고객은 보험을 잘 모르므로 “알아서 해 달라”고 맡겨, 보험 명칭의 뜻을 모르고 보장 내용도 잘 모른 채 묻지마 가입한다. 고객은 자신에게 맞는 상품으로 알지만, 설계사에게 수수료(사업비)가 가장 많은 상품이다. 보험료에 수수료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이런 불완전 판매 사례들이 보험 영업현장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보험 가입은 매우 험난하고 온통 지뢰밭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는 서둘러 고치려 하지 않는다.

가입자는 뒤늦게 “보험을 잘못 가입했으니 낸 돈을 돌려 달라”고 보험사에 하소연하지만, 단박에 거절당한다. ‘해피콜(완전판매 모니터링)’에서 이상 없다고 답변했고, 불완전판매 증거가 없다거나 신청기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체념해서 해지하려니 해지환급금이 없거나 있더라도 소액이라 속이 뒤집히고 열불이 난다. 그러나 보험 가입의 최종 의사 결정은 본인이 했고, 청약서에도 본인이 직접 서명했으니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보험료를 내는 것은 소비자인데, 어찌하여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한 채 손해를 봐야 하고 더러운 꼴을 당해야 하는가? 보험을 가입할 때 묻지도 않았고 따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려면 보험을 가입할 때 반드시 묻고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보험을 가입할 때 묻고 따져야 할 것은 다음 6가지다.

① 생애주기에 맞춰 나에게 꼭 필요한 보험인가

② 가입 목적에 맞는 보험인가

③ 상품 내용을 명확히 알고 가입하는 보험인가

④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인가

⑤ 가성비(價性比)가 좋은 보험인가

⑥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보험인가.

이 6가지를 묻고 따져서 신중하게 가입하면 보험에 가입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보험을 가입해서 최소한 실패하지 않는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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