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롯데’ ‘뉴롯데’ 당분간 올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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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신 회장이 내걸었던 ‘뉴롯데’ 구상 표류는 물론, 한국 롯데가 일본 롯데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시된다. 또한 일본 롯데홀딩스 대주주인 광윤사의 주식 과반을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분쟁 불씨가 다시 번질 가능성도 커졌다.

23일 롯데에 따르면 일본 롯데의 지주사 격인 롯데홀딩스는 지난 21일 이사회를 열고 신 회장의 거취를 포함한 현안을 논의했다. 이사회에서는 신 회장이 표명한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임 건이 승인됐다. 이사회는 컴플라이언스 위원회의 의견과 회사 경영 방향 등에 대한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신 회장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신 회장은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부회장에서 롯데홀딩스 이사 부회장으로 변경됐다.

롯데그룹 “한일 협력관계 약화”

롯데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일본법 상 이사회 자격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를 무겁게 받아들여 롯데홀딩스의 대표권을 반납하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경우 기소 시 유죄판결이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표이사가 기소될 경우 해임하는 것이 관행이다.

신동빈 회장 법정구속, 뇌물 70억 인정
日 롯데홀딩스 대표 사임, 지배구조 흔들

이어 이 관계자는 “‘원 롯데’를 이끄는 수장의 역할을 해온 신 회장의 사임으로, 지난 50여년간 지속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창출해온 한일 양국 롯데의 협력관계는 불가피하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러나 롯데는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일본 롯데 경영진과의 소통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쓰쿠다 사장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

신 회장의 이사직 사임에 따라 롯데홀딩스는 현재 공동 대표인 쓰쿠다 다카유키 사장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일본 경영진과 주주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만큼 한국 롯데그룹 전체가 일본인에 의해 좌지우지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신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던 쓰쿠다 대표가 2016년 태세를 변환한 점도 이러한 지적을 뒷받침한다.

1943년생으로 올해 75세인 쓰쿠다 대표는 와세다 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미쓰이 스미토모 은행의 전신 스미토모 은행에 입사해 2000년 전무를 역임할 때까지 30여년이 넘게 은행원 생활을 했다. 이후 로열호텔 대표이사 회장을 거쳐 2009년 전문경영인으로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쓰쿠다 대표가 30년 넘게 몸을 담은 스미토모 은행은 일본 롯데의 주거래은행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쓰쿠다 대표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신임을 받아왔다. 하지만 신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촉발되고 이른바 ‘손가락 해임’을 당하면서 신 회장 편으로 붙었다.

(왼쪽부터)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진=뉴시스

‘손가락 해임’은 2015년 7월 27일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과 일본으로 건너가 신 회장과 쓰투다 대표 등 일본롯데홀딩스 이사 6명들을 전원 해임한 사건이다. 이날 신격호 총괄회장은 도쿄에 있는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임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손가락질하며 해임을 지시했다. 이튿날 신 회장이 일본롯데홀딩스 긴급이사회를 열고 신격호 총괄회장을 대표이사에서 전격 해임하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의 반란을 진압했지만, 이후 롯데그룹은 수난을 반복해왔다.

쓰쿠다 대표의 신 회장 편들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신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공세와 검찰 수사, 재판 등으로 위기상황에 몰리자 또 한번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2016년 신 회장이 이사회에서 대표로 재신임될 당시 “우리들이 신동빈 대표를 떠받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으며, 그해 말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한국에서의 기소와 관련 “사죄한다”는 표현을 통해 마치 아랫사람의 잘못인양 자신의 위치를 과시하기도 했다.

등 돌린 쓰쿠다 대표, 신 회장 형제 견제
신동주 “신동빈, 이사에서도 물러나야”

쓰쿠다 대표는 자신이 이끄는 일본 롯데를 통해 신 회장 형제의 입김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실제로 일본 롯데 측은 제과회사 ‘롯데’에 제과류를 판매하는 ‘롯데상사’와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롯데아이스크림’ 2개사를 오는 4월1일부로 흡수·통합하기로 했다. 명분은 경쟁력 강화와 향후 제과분야 상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롯데홀딩스 최대주주 광윤사의 대표로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회사는 호텔롯데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호텔롯데 지분을 91.8% 보유하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를 통해 한국 롯데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상당 부분 소유하고 있다.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율은 1.4%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 회장이 그간 한·일 롯데를 지배하는 ‘원롯데’의 수장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종업원지주회, 관계사, 임원 지주회 등의 지지를 받아 2015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됐기 때문이다.

신동주 ‘무한주총’ 카드로 반격 나서나

‘형제의 난’의 재점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지분 50%+1주로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 지분 28.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를 퇴임한 직후 “이사직에서도 물러나야”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입장문에서 “신동빈씨는 계속해서 이사 부회장 지위에 머무를 것이라고 하는데 유죄판결을 받아 수감되어 있는 상황에서 롯데홀딩스 이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사 지위에 머무르는 일(옥중경영)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만한 일이 아니다”며 “신동주 및 광윤사는 일련의 위법행위로 인해 롯데그룹에 대대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사회적 신뢰를 훼손시킨 신동빈씨에 대해 신속히 이사 지위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롯데홀딩스 경영진은 윤리경영 향상 등을 제창하면서도 중대한 형사 책임을 추궁 당하고 있는 신동빈씨의 경영체제를 만연히 존속시켜온 결과, 대표이사가 실형 유죄 판결을 받아 구속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했다”면서 “이번과 같은 사태는 명확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함에 따라 발생한 것이며, 중대한 위기를 초래한 롯데홀딩스의 각 이사의 책임은 극히 무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업통괄의 근본적 쇄신과 재건을 통해 롯데 경영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신 회장의 부재를 틈타 ‘무한주총’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상법상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의 주주제안권 행사는 주총 때마다 가능하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오는 6월말 예정된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6월 이전에도 임시주총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

6월 주총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은 쓰쿠다 대표뿐 아니라 고바야시 마사모토 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 고초 에이치 일본 롯데물산 대표 등 현 롯데홀딩스 임원들에 대한 해임안과 함께 자신의 이사직 복귀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신 회장이 추진해온 신 회장 중심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인 ‘원롯데’와 롯데의 비전인 ‘뉴롯데’ 실현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해 진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리되지 못한 계열사만 40개

경영권을 물려 받은 신 회장은 그간 롯데의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주력해왔다. 지난해 10월 롯데지주를 출범시킨데 이어 국내 계열사 91개 중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등 51개를 지주회사 체제 아래에 묶었다. 그러나 관광·화학 부문의 호텔롯데와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등 40개 계열사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한 호텔롯데 상장도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력을 낮추기 위해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보복 이후 롯데면세점 등의 실적악화로 호텔롯데 기업가치가 떨어지면서 상장이 미뤄져왔고, 이번 신 회장 구속으로 인해 상장은 더 멀어진 상태다. 일본 롯데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호텔롯데 상장이 필수적이다.

롯데그룹, 비상경영체제 돌입

롯데그룹은 일단 황각규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롯데 측은 “충수 부재로 인한 경영공백 사태를 막고 내부 임직원, 협력사, 외부 고객사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비상경영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의 비상경영위원회는 황 부회장과 민형기 컴플라이언스위원장, 이원준 유통BU장, 이재혁 식품BU장, 허수영 화학BU장, 송용덕 호텔&서비스BU장 등 4개 BU 부회장 등으로 구성됐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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