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박상아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도 8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다. 일자리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정부를 구현하겠다는 공약 이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문 정부는 보다 질 좋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40시간 노동, 칼퇴근법, 최저시급 인상 등의 굵직한 정책들을 강하게 추진하며 노동자 중심의 근로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는 문 정부의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바로 최저시급 인상이다. 지난해 시간당 6470원이었던 최저시급이 무술년 새해 첫날부터 7530원으로 16.4% 인상됐다. 이는 OECD 회원국의 지난해 인상률과 비교했을 때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낯빛은 그리 밝지 않다. 최저시급이 크게 늘어났지만 실제로 받는 월급은 그대로거나 줄어들게 생겼다는 것이다. 

원리는 단순하다. 돈을 주는 주체인 고용주들은 최저시급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상여금을 절반으로 깎거나, 상여금을 기존월급에 포함시키는 방식의 꼼수를 부리는 업체들이 상당수 발견되고 있다. 일부업주들의 이 같은 편법이 애초 최저시급 인상의 목적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각종 물가가 동반 상승한다면 최저시급을 올려도 그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각종 소비재 가격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포작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햄버거와 치킨가격 인상이 뜨거운 감자다. 몇몇 치킨 업체들은 전부터 물가상승을 이유로 치킨 가격을 올리려고 시도했지만 정부가 제재로 살짝 물러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올해 최저시급인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치킨업계는 다시 한 번 가격인상 카드를 꺼내드는 모양새다.  

물론 이들의 입장도 이해의 여지가 조금 남아있기는 하다. '인건비 상승-본인들의 몫 감소-가격 인상'까지,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다.

이 사고의 흐름에서 간과되고 있는 점은 한국 노동자들의 현 상황이다. 그동안 한국 노동자들은 OECD 기준 2번째로 높은 노동시간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최하위권이라 할 수 있는 임금을 받고 있었다. 최저시간 일한다는 독일과 비교했을 때 4.2개월 더 일하면서도 임금은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즉 애초부터 한국사회에서는 노동에 대한 보상이 터무니없이 적었다는 얘기다. 

핵심은 본인들의 몫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파이의 일부분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여러 소비재의 가격을 상승시키려는 움직임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1970년대 이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는 한국 사회가 인건비에 아직까지 박한 이유는 노동에 대한 의식이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시간제 근로자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연금, 휴직, 병가 등에 있어 정규직과 차별받지 않는다. 독일 노동자는 연장과 야간 근로에 대한 대체휴일을 보장받는다. 돈이 아닌 시간으로서, 또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할 최소한 환경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삶과 노동의 가치관이 깊게 베여있는 결과다. 최저시급을 인상하자 인건비를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며 온갖 편법을 저지르는 한국사회와는 격이 다르다. 

일각에서는 유럽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높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여러 노동 환경 개선 시도와 최저시급 인상이 가능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2016년 기준 한국 GDP는 2만7000달러를 넘어 섰고, 이는 당시 1만달러 수준이었던 유럽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들의 주장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돈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을 위한 돈’이 되어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인생론이란 책에서 한 말이다. 고용주에게 돈이라는 이득을 가져다주는 서비스와 값어치가 있는 물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노동이고 이 노동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즉 사람이 주(主), 생산물은 부(副)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산물을 상위가치로 두고 그것을 주재하는 사람이 하위가치로 전락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노동 환경에서 일어나는 모든 어불성설은 바로 이점에 기인한다.

故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해 노동계의 현실을 고발하려고 애썼다. 이로부터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노동자가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는지 물어보고 싶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우선시 되는 세상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익숙해진 것이 아닌지 되돌아 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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