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지난해 9월 경주 지진과 올해 포항 지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이 확인되었다.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진보험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도 말만 요란할 뿐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지진으로 생명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면 생명보험, 상해보험 등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건물 붕괴, 자동차 파손 등 물적 피해는 보상 받기 어렵다. 지진은 천재지변이므로 약관상 보장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다만, 손해보험 중 화재보험, 재산종합보험에 지진특약을 부가하거나 풍수해보험을 가입하면 지진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입률이 미미하여 실효성이 거의 없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택 지진보험의 세대가입률은 3.2%로, 지진을 안고 사는 일본(30.5%)에 비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 중 경북지역과 부산지역의 가입률이 각각 21.6%, 20.3%를 차지했으며 서울은 8%로 거의 무방비상태다. 2015년 기준 화재보험 47만4262건 중 지진특약에 가입된 계약은 2893건으로 가입률이 0.6%에 불과하다. 풍수해보험은 2014년 기준 계약건수가 1만2036건, 보험료 115억6000만원에 그쳤다. 사정이 이러하니 포항 지진 피해자도 지진보험으로 물적 피해를 보상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나간 일이지만, 정부는 경주 지진은 물론 이번 포항 지진에서도 풍수해보험 등 지진 관련 보험의 보상여부에 대하여 전혀 알린 적이 없다. 다만, 경주 지진 이후 금융감독원이 올해 초 보험 유관기관 및 손보업계와 함께 ‘지진보험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하여 국내 첫 지진 전용 보험을 개발하기로 했지만, 보험사들이 지진보험 판매에 회의적인 입장이 많아서 당분간 개발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번 포항 지진으로 일부 언론사가 금감원에 질의해서 ‘지진보험 출시’가 곧 가시화 될 것처럼 에둘러 보도했지만, 보험감리실 관계자의 사견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 지진 발생 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손보사의 지진특약이 지진 대비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과 함께 왜 지진보험을 팔지 않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다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진보험은 본래부터 민영 보험사들이 인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진은 발생빈도는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피해가 막대하여 ‘재앙(catastrophe)’이기 때문이다. 민영 보험사들이 지진보험을 무작정 인수할 경우 자칫 파산하게 되므로 지진보험 판매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애초부터 영리를 추구하는 민영 보험사들에게 나를 위해 손해 보면서 장사하라는 것이므로 무리한 요구이고 잘못이다. 이런 주장은 민영 보험사가 아니라 정부에게 해야 한다. 재난 대비 주무부처는 명백하게 행정안전부(재난관리실 재난보험과)이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미국 등은 정부가 나서서 지진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손보사가 모집한 지진 보험 전부를 일본 지진재보험회사가 인수하고, 이중 약 70% 내외를 일본 정부가 재보험으로 인수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지진보험회사(CEA)를 직접 운영하며, 각 지역의 지진 위험 정도, 주택의 건축연도나 층수 등에 따라 보험료율을 달리한다. 대만, 뉴질랜드, 터키, 멕시코, 아이슬란드 등은 의무보험 형태로 지진보험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소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부터라도 지진보험을 국가에서 인수, 운영해야 한다. 행안부는 서둘러 다음 2가지를 확실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첫째, 행안부는 풍수해보험 가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풍수해보험은 행정안전부가 관장하고 민영 보험사가 운영하는 정책보험으로 지진을 비롯해 태풍, 호우, 홍수, 강풍 등으로 입은 손해(주택의 파손 및 침수, 비닐하우스·온실의 골조 피해 등)를 보상한다. 보험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 보험료의 절반 이상(55~86%)을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한다. 개인은 5개 보험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삼성화 재, KB손해보험, NH농협손해보험)에 직접 가입하거나 읍·면‧동사무소(주민센터)를 통해서 가입 할 수 있다. 지자체를 통해 가입하는 단체계약은 주민이 부담하는 보험료 10%가 할인된다.

문제는 행안부의 홍보 부족과 국민들의 지진 대비 인식 부족, 보험사들의 판매 기피 등으로 풍수해보험이 외면 받고 있으므로 이를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해서 가입률을 크게 높여야 한다.

둘째, 국가가 나서야 한다.

행안부가 주도하여 지진 전용보험을 도입, 운영해야 한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실효성 있는 지진보험을 준비하라는 얘기다. 지진은 보험사가 단독으로 위험을 인수하기 어려우므로 보험사에게 떠 넘길 일이 아니고 금융위‧금감원에게 넘길 일도 아니다. 지진위험 인수를 현재와 같이 보험사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행안부는 풍수해보험으로 내가 할 일 다했다고 태연히 있을 때가 아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으로 생각을 바꿔 지진보험을 준비해야 한다. 차제에 의무보험으로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행여 보험을 잘 모르면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의 지원을 받아서 추진하면 된다. 국민들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해야 하고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 이런 일을 앞장서서 살피고 챙기라고 국민들이 혈세를 내서 월급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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