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

우리나라는 이상한 나라다. 보험사들이 전통적인 유배당보험을 모두 버리고 무배당보험만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엄연한 현실이다. 무배당보험만 판매하는 나라는 아마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유배당보험을 팔지 않는 이유가 자못 궁금하다.

유배당보험은 보험계약자가 낸 보험료를 보험사가 운용해서 이익이 발생되면 이를 계약자에게 돌려 주는 보험이고, 무배당 보험은 이익이 발생하더라도 계약자에게 돌려 주지 않는 보험이다.

이렇게 본다면 계약자에게 이익을 돌려 주는 유배당보험이 무배당보험 보다 나은 듯 하다. 그러나 유배당보험은 배당금을 지급하므로 보험료가 다소 비싸고, 무배당보험은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유배당보험을 판매해 왔다. 보험의 원리에 부합하고, 보험 사업을 장기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보험은 장기계약이므로 보험사가 실제 지급할 보험금 보다 조금 넉넉하게 보험료를 산출해서 부과한다. 즉, 보험료 산출 시 예정기초율(예정사망율, 예정이율, 예정사업비율)을 안정적으로 적용해서 산출한 후 실제 이익이 발생되면 계약자에게 돌려주는데, 이것이 유배당보험이고 배당금인 것이다. 이처럼 보험료는 확정된 금액이 아니라 예정된 금액이므로 ‘선 부과, 후 정산’이 원칙이다.

우리나라에 무배당보험이 처음 출시된 것은 1992년 7월이다. 1990년대 초 외국계 생보사들이 국내에 진출하면서 소비자에게 상품 선택권을 주기 위한 명분으로 무배당보험을 출시했다. 즉, 소비자가 유배당보험과 무배당보험을 비교해서 원하는 상품을 선택, 가입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무배당보험을 출시한 보험사들은 저렴한 보험료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판매하였고, 소비자들 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시장을 잠식하게 되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기존 보험사들도 앞다퉈 무배당보험을 판매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배당‧무배당 보험은 한 동안 병행 판매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유배당보험은 점차 사라지고 무배당보험이 득세하게 되었다. 명맥을 유지하던 유배당 연금저축보험마저 판매 중지되면서 무배당보험 세상이 되었다. 결국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것이다.

이처럼 무배당보험 세상이 된 것은 보험사들이 돈벌이에 유리한 무배당보험을 선호했고, 정부

가 배당과 관련된 보험업법을 개정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보험사들은 영업 현장에서 보험료가 저렴한 무배당보험이 인기를 끌자 유배당보험은 경쟁에서 밀려나 판매 유인이 떨어졌고,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시장금리 하락으로 유배당보험의 이차 역마진이 심화되었다.

더구나 저금리 기조로 자산운용을 통해 추가 이득을 얻기 힘든 상황에서 무리해서 유배당보험을 판매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다음으로, 정부가 2006년 생보사 상장과 관련하여 보험업법을 개정했는데, 유배당보험은 보험료 운용수익의 90%를 계약자에게 주고, 나머지 10%만 보험사가 가져 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은 위험률 관리와 사업비 절감을 통해 이익을 많이 내더라도 대부분 계약자에게 돌려줘야 하므로 굳이 유배당보험을 판매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결국 소비자들은 무배당보험만 가입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보게 되었다.

첫째, 유배당보험이 소멸되어 상품 선택권이 사라졌다.

둘째, 유배당과 무배당보험의 가격(보험료) 비교가 불가능해 졌다.

셋째, 무배당보험은 사후 정산기능이 없으므로 당초부터 덜 내도 될 보험료를 더 내서 보험사 먹여 살리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챙긴다”는 말처럼, ‘돈 버는 보험사와 돈 잃는 소비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넷째, 무배당보험이라도 이익이 발생되면 실적에 따라 차후 보험료를 인하해야 함에도, 보험사들은 이를 외면했고 금감원, 금융위는 애써 묵인하였다. 그 결과 소비자들만 억울하게 호주머니를 털리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익을 돌려 줄 바에야 누가 유배당 상품을 적극 개발하겠느냐”고 반문하며 “무배당 상품이라 이익이 발생해도 돌려 줄 방법조차 없다”고 한다. 보험사의 속내를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이고, 보험사가 양질의 상품 공급이라는 사명을 망각한 채, 돈벌이를 위해 소비자 이익을 계속 희생시키겠다는 의도다. 무배당보험이 보험사에 약(藥)이지만, 소비자에게 독(毒)인 것이 입증된 셈이다.

보험사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수준의 당기순이익을 실현해서 보험사 주주들에게 배당 잔치, 임직원들에게 돈 잔치를 벌이고 있다. 무배당보험에서 발생된 이익을 보험료 인하도 없이 보험사가 독식하는 것은 소비자 이익을 해치는 것이므로 부당하고 불공정하다. 공정위가 면밀하게 들여다 볼 대목이다.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금융위가 외면한 채 금융 개혁한다고 설레발 쳐 왔으니 잘못됐다. 금융위는 소비자를 위하여 유배당보험 판매를 재개시켜야 한다. 보험업법의 유배당보험 이익배분기준을 재검토하고, 무배당보험에서 발생된 이익만큼 보험료를 인하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이런 일 앞장서서 제대로 하라고 소비자(국민)들이 혈세를 내서 월급 주고 있는데,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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