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청탁없이 박 전대통령이 알아서 지시하고 아래가 따랐다는 건 '비상식'

김용오 편집국장

[파이낸셜투데이=김용오 편집국장] 그동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을 지켜보면서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궁금증이 있었다. 삼성측의 주장대로라면, 삼성이 아무런 청탁도 하지 않았는데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스스로 알아서 삼성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지시하고, 이에 따라 청와대와 국민연금의 주요 인사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였다는 것인가?

결국 궁금증이 풀렸다. 11월 14일 서울고등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 개입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문 전 장관이 “박 전 대통령의 ‘이 사건 합병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행사 문제를 잘 챙겨보라’는 지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당시 청와대 공무원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합병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같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개별 현안에 대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던 이 부회장의 1심 판결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간의 청탁 고리 존재를 판단할 중요한 근거가 제시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일관되게 주장한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명시적이고 개별적인 청탁은 없었다’는 말은 이제 설득력을 잃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합병이라는 현안과 관련해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간의 청탁 고리를 보여줄 핵심적인 판단기준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불거진 이 부회장 재판의 본질은 이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까지 훼손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개입에 기대어 무리하게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한 것이냐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기소된 5개 범죄혐의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국외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상 범죄수익은닉, ▲국회 위증죄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 법정 최저형을 선고했다. 법조계는 이같은 최저형 선고는 2심에서 이 부회장을 집행유예로 풀어주기 위한 사전정지 작업(?)이라는 관측을 내놓았고,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은 전대미문의 국정농단과 정경유착으로 기록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이다. 이 부회장과 연루자 전원에게 그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함은 당연한 상식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는 재벌총수가 뇌물 등의 정경유착, 불법적인 기업경영의 방식 등의 중범죄를 저질러도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고 거의 대부분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고, 최종심에서 그 형량이 감면되거나 특별 사면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특히, 삼성에게는 더욱 관대했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우리 사회는 ‘삼성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썼다.

늦었지만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가 문형표 전 장관 등에 대한 판결을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결탁해온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유착이 국민 경제에 실질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게 국민 눈높이 ‘상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한 ‘적폐청산’에 진력하고 있다. 국민 70% 이상이 적폐청산을 요구한다. ‘적폐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국민 절대다수 목소리다. 그중 ‘정경유착’은 적폐 중 적폐다. 과거와 철저하게 단절하기 위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관련된 인물들에게 합당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전국민은 이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다. 재판부의 ‘상식적’ 판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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