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금융 컨퍼런스①] 사회적금융의 해외 선진 사례

사진=한국개발연구원(KDI)

[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지난 10일 열린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금융 확충 방안’ 국제 컨퍼런스에서 글로벌 사회적금융 전문가들이 낸 공통적 의견은 ‘신자유주의의 실패’였다. 그들은 1929년 미국발 대공황과 1980년대 저축·대부조합사태,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굵직한 글로벌 경제 균열에는 빚으로 인한 성장이 있다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적금융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 광화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이날 컨퍼런스의 첫 세션은 ‘사회적금융의 해외 선진 사례’를 주제로 진행됐다. 쿠리모토 아키라(Akira Kurimoto) 일본 호세이대학 대학원 교수를 좌장으로 클리포트 로젠탈(Clifford Rosenthal) 미국 CDFI 연합 전 의장과 크리스토발 드보르잔스키(Cristobal Dobrzanski) 밴시티(Vancity) 전 수석이코노미스트가 주제발표를 이어나갔다.

좌장인 아키라 교수는 모두발언에서 “사회적경제를 증진하기 위해선 그 기반이 되는 사회적금융을 확장시켜나가야 한다”면서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금융의 정의와 진행상황, 일본의 사회적금융 실태 등을 소개했다.

◆정부 주도형 사회적금융 시스템 ‘CDFI’

1980년대 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s·지역발전금융기구)를 만들어 운영해온 클리포트 로젠탈 CDFI 전 의장은 사회적금융 분야의 ‘구루’로 불린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그는 미국에서 CDFI가 어떻게 자생하고 성장해왔는지를 설명해나갔다.

로젠탈 전 의장은 CDFI의 최우선적 미션을 ‘소득이 낮은 사람·공동체에 자본을 제공하는 것’이라 소개했다. 그는 “1980년대 흑인과 유색인종, 여성, 저소득층, 일부 소외지역 거주민 등 마이너리티에 대한 금융 차별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CDFI 펀드를 만들었다”며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같은 취지로 만들어진 CDFI는 곧 그라만은행과 사우스쇼어은행에 영감을 받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규모를 키우는데 성공했다. 풀뿌리 단위의 사회적금융 시스템이 국가 주도형 금융 산업이 된 것이다. 사회적금융 관련법이 미국에서 제정된 것도 CDFI와 클린턴 정부 덕이었다.

로젠탈 전 의장은 “정치·사회적 이유로 풀뿌리 단계에서 시작된 기금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1994년 법제화에 성공하고, 이후 20년간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자금지원의 종류나 상품 유형을 다양화하고 비정부기구 펀딩을 통해 사회문제 개선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2008년 대공황 시기도 잘 헤쳐나왔다”고 자평했다.

CDFI는 단지 은행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금줄로 역할을 해왔고, 단시간 수익을 내는 게 아닌 장기간에 걸친 규모화, 수익화와 정부 지원 등을 통해 성장해왔다. 지난 20년간 CDFI 펀드가 대출과 신협, 은행, 밴처캐피탈 등을 통해 빌려준 자금만 1349억달러(한화 약 151조원)에 달한다.

◆민간 주도형 성장 모델 ‘밴시티’

“신자유주의는 실패했다. 빚을 이용한 무한 성장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익과 지구, 사람 세 가지를 ‘정삼각형’처럼 중요시한다. 정부의 법·제도 범위 내에서 건전한 경영을 통해 수익을 이뤄내고, 이를 외부효과로 창출시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간다”

35년간 밴쿠버의 사회적금융단체 밴시티에서 일한 크리스토발 드보르잔스키 전 밴시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사회적금융의 중요성을 밴시티 사례를 들며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금융도 일반 기업에서 중요히사는 재무제표의 건전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이익’과 ‘지구’, ‘사람’이라는 세 가지 핵심 성과가 균형 있게 나타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보르잔스키 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밴시티는 중앙은행과 재무부에서 금융기관에 요구하는 바셀 원칙(자기자본 비율 13% 이상 등 자본건전성 기준)을 준수하면서도 사회적금융 시스템을 잘 유지하고 있다”며 “이상적이고 건전한 커뮤니티에선 사회적 자본을 바탕으로 국내총생산과 일자리가 함께 천천히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성장하고, 금융자산과 함께 자연과의 균형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밴시티의 특징 중 하나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자생해왔다는 것이다. 과거 식민지 시대를 지나온 캐나다는 여성 인권 문제나 일자리 문제, 주거문제, 높은 물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밴시티는 이런 문제들을 지역 차원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해결하나가는 데 힘썼다. 그간 51만명의 조합원들이 캐나다 브리티시 콜림비아 주 58개의 지점을 중심으로 활동해왔고, 이를 통해 총 자산 190억달러(약 21조2000억원)을 쌓아왔다.

밴시티의 대출 구조를 보면 ▲주거제공과 사회적 목적 부동산 34% ▲에너지와 환경 32% ▲예술과 문화유산 21% ▲공동사회와 캐나다 원주민 지원 5% ▲친환경사업과 지역농산물 3% ▲기타 3% 등으로 이뤄져있다.

드보르잔스키 전 이코노미스트는 “밴시티는 신자유주의 실패 과정에서 조합원이 타격을 입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경제가 붕괴할 때 사회적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우리가 나서왔다”며 “순익의 30%를 사회적경제에 재투자하고 비영리, 신생창업, 공공주택 등을 짓고 지금까지 총 2억7300만달러를 배당으로 환원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