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규제 없어 6년새 1368% 증가… 시장 냉각기 ‘깡통전세’ 우려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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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투데이=이일호 기자] 전세자금대출의 규모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은 그간 정부의 특별한 규제 없이 규모를 키워왔고, 지난 몇 년간 전세가액을 높이며 갭투자를 불러일으킨 주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문제는 최근 부동산시장이 냉각기에 접어들면서 ‘깡통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깡통전세가 현실화될 경우, 특히 갭투자 매물에 전세를 낸 임차인들의 피해가 커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전세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국민·우리·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해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34조485억원으로 전년(23조6636억원)보다 10조3849억원(43.9%) 늘었다.

2008년경부터 활성화된 전세자금대출은 최근 들어 그 규모가 크게 늘었다. 규제가 심한 주택담보대출에 비해 전세대출은 정부가 ‘서민의 주거안정 지원’이라는 목적으로 별다른 규제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철저히 실거주자 위주인 전세대출을 안전한 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전세 수요자들은 대출을 받아 손쉽게 돈을 빌려 전셋집을 구했다. 낮은 금리를 바탕으로 일부 수요자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빌렸다. 시중은행들은 적게는 수천만원부터 많게는 5~6억원에 달하는 액수를 쉽게 내줬다. 전세대출의 이용기간은 기본 2년이지만 총 4번 연장이 가능하다. 한 번의 대출로 총 10년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전세금이 오를 때마다 추가 대출을 받아 메우다보니 전세대출 시장 규모는 천정부지로 커졌다. 2010년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2조3196억원이었지만 6년 만에 34조원대로 1368%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이 55%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상승폭이 급격하다.

투기성 짙은 갭투자가 유행을 타기 시작한 시점도 전세대출시장이 커지며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이 급등한 시점과 일치한다. 2008년 30%선이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이후 급증해 2015년 1월 처음으로 70%을 뛰어넘었다. 갭투자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도 2014년 즈음부터다. 여기에 정부는 ‘주택매매 활성화를 통한 부동산경기 부양’을 내걸고 각종 규제를 해제하면서 갭투자 시장에 기름을 끼얹었다.

전세가액의 증가는 갭투자자에게 최적의 환경이다. 전세가액이 70%일 경우 집값의 20~30%에 해당하는 돈만 대출받고 나머지는 전세를 껴 집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 활황기에 갭투자자는 주택을 보유한 것 만으로 1~2년 새 많은 돈을 불로소득으로 거둘 수 있었다. 성북구·노원구·구로구 등 서울 내 몇몇 자치구는 ‘갭투자의 성지’라 불리며 수십 채의 집을 소유한 사람을 양산해냈다.

◆정부 부동산 규제, 깡통전세 피해 불러일으킬라

정권이 바뀐 이후 이 같은 상황에 변화가 오고 있다. 정부가 ‘6.19 부동산 대책’과 ‘8.2부동산 대책’, ‘10.24가계부채 종합대책’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부동산 시장이 냉각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나빠질 경우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 임차인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깡통전세는 주택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낮아 주택 소유자가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를 뜻한다. 최근 들어 이 같은 가능성이 현실화 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KB부동산 주간시계열에 따르면, 지난 10월 30일 현재 서울시 25개 자치구 부동산 매매가는 전주 대비 0.04~0.35% 상승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2.63~5.91%)과 비교할 경우 둔화 경향이 뚜렷하다.

거래량도 급감해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이 발표한 지난 10월 아파트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총 3817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만2878건과 비교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용인이나 화성 평택, 양주, 김포, 파주 등 경기도권의 몇몇 공급과잉 지역에는 미분양 사태가 발생고 마이너스 프리미엄 분양권(돈을 받지 않고 주면서 넘기는 분양권)도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상승세를 이끌던 갭투자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현재 서울 아파트 전세가액은 70.9%로 근 2년 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전세가액이 낮아질 경우 목돈마련의 부담이 커져 갭투자 유인이 줄어든다.

여기에 지난 10월 내놓은 가계부채 종합대책은 신DTI 규제로 유동성 여유가 적은 갭투자자의 자금줄을 차단했다. 내년 4월에는 다주택자가 주택을 팔아 차익을 거둘 경우 중과세를 매기는 규제도 시행된다. 다음 주 발표될 ‘주거복지로드맵’에는 전월세상한제와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 등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포함될 것이란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상황이 갭투자자에게 점점 안 좋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만약 다주택자가 시장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고 일시에 주택을 내놓을 경우 부동산 시장에 패닉이 올 수 있다. 전세가액이 80~90%에 달하는 일부 주택의 경우 전세가가 주택 시세를 뛰어넘는 깡통전세 현상도 생길 수도 있다. 주택보유자 뿐만 아니라 임차인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 같은 우려가 커지자 전세보험 가입도 늘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은 지난 8월 기준 5조6278억원으로 8개월 만에 이미 지난해 가입 규모(5조1716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직 전세보증금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차인 수도 상당해 부동산 경기 하락기에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전세금 반환보증 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세금이 세입자들의 실질적인 전 재산임에도 특별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향후 부동산 경기가 둔화될 경우 갭투자 매물에 입주한 전세 임차인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괜찮겠지만,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보험가입을 거절당한 임차인은 깡통전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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