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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03. 김우중과 대우그룹
세계를 넓고 돈 숨길 곳은 많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대우재단빌딩, 이 빌딩 8층에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에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외에도 대우로지스틱스,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입주해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서전이다. 나는 어릴 적 이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웠다. 1989년 출간된 이 책은 아직까지도 젊은이들을 위한 지침서로 꼽힌다. 새로운 길을 향해 용기 있게 개척해 나갈 것을 권한 김 전 회장. 하지만 그의 삶은 기업의 몰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대우는 무너졌고 김 전 회장은 살아남았다. 그의 말처럼 세계는 넓었다. 돈 숨길 곳도 많았다.

세간이 많으면 ‘큰 집(大宇)’도 무너진다

1967년 3월 섬유수출업체인 한성실업 무역부장 시절, 31세의 청년 김우중은 자본금 500만원을 가지고 서울 충무로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트리코트 수출업체인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훗날 대우그룹의 시초다.

대우실업은 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셔츠와 내의류 원단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인도네시아, 미국 등지로 빠르게 시장을 넓혔다. 설립 1년만인 1968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였다.

1970년대 들어서서 대우는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아래 급속히 사세를 확장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는 ‘킴기스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칭기스칸이 동유럽, 중동, 송나라, 고려 등 기병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휩쓸었던 것처럼 김우중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 등 가리는 곳 없이 발을 뻗었다.

1973년 영진토건(대우개발), 1974년 대우전자, 1976년 한국기계를 인수했고 1978년에는 옥포조선소(대우조선),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를 각각 넘겨받았다. 1983년에는 대우전자와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묶어 대우전자로 키웠으며 같은 해 동양증권과 삼보증권을 사들여 대우증권을 설립했다. 이후 대우실업이 ㈜대우로 바뀌면서 그룹회장제가 도입, 그룹 외형이 갖춰졌다.

1990년대 들어 김 전 회장은 해외시장에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1993년 세계경영의 경영이념을 선포함과 동시에 루마니아, 폴란드,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과 구소련 지역에 진출하는 등 확대경영 전략을 폈다.

1998년 말 대우는 계열사 41개, 국내 종업원 10만5000명, 해외사업장 외국인 종업원 21만9000명, 해외법인 396개사의 공룡재벌로 성장했고 자산기준으로 삼성, LG를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로 올라섰다.

쌍용 삼키려다 배 터졌다

그러나 ‘외화내빈’이요 ‘속 빈 강정’이었다. 110여달러에 달하는 대우그룹의 해외투자는 ‘부메랑’이 돼서 날아왔고 이를 떠받치기에는 내부구조가 취약했다. 이럼에도 김 전 회장은 세계경영을 포기하지 않았고 국·내외 사업장들의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차입금을 계속 늘려갔다. 1999년에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했다. 대우그룹 몰락의 화근이다. 외환위기 이후 모든 기업들이 몸을 웅크리던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의 선택은 그룹을 유동성 위기로 몰고 갔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대우재단빌딩, 이 빌딩 8층에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에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외에도 대우로지스틱스,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입주해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1998년 12월8일 대우그룹은 41개 계열사를 10개사로 감축하는 구조조정 세부계획을 발표하고 1999년 1월21일 수영만 부지 매각 등의 재무구조 개선 계획, 4월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매각, 김 전 회장 보유주식 매각대금 3000억원 출연 등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잇따라 발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룹의 운명을 좌우할 GM과의 협상,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 간 협상이 모두 실패하면서 대우는 벼랑 끝에 몰렸다.

결국 6월말 대우 사장단 전원의 사표제출에 이어 7월19일 대우그룹은 10조1000억원에 이르는 김 회장의 전재산 담보라는 극약처방을 제시했다. 이어 채권단이 대우에 신규자금 4조원 지원을 결의, 김 전 회장은 퇴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1999년 8월26일 이미 25곳으로 줄어든 전체 계열사 가운데 ㈜대우, 대우통신, 대우중공업,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판매, 대우전자, 대우전자부품, 쌍용자동차, 대우캐피탈, 경남기업, 오리온 전기, 다이너스클럽 코리아 등 12개 계열사가 채권단 관리 하에 워크아웃을 맞이하게 됐고 대우증권 등 나머지 13개 계열사는 독자적 회생의 운명에 처하게 됐다.

대우차는 미국에, 쌍용차는 인도에

2000년 11월 최종 부도처리 돼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GM이 인수, 2002년 10월17일 ‘GM대우차’로 새롭게 태어났지만 GM대우는 내수 시장에서 고전을 계속하다 2011년 1월 쉐보레 브랜드로의 흡수 통합을 선언, 한국GM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2000년 4월, 대우 계열에서 정식으로 분리된 쌍용자동차는 2005년 상하이자동차 그룹에 인수됐다가 판매 부진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2009년 법정관리체제에 들어간 쌍용자동차는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해고 사태로 노사, 노조간 갈등 등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고 2010년 말 인도의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됐다.

㈜대우는 대우존속법인과 대우인터내셔널, 대우건설 등 3개사로 재탄생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2010년 포스코에 인수, 드물게 ‘대우’로고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2006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된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자금난 이후 2010년 한국산업은행으로 인수됐다. 경남기업은 충남지역 건설사인 대우건설에 인수됐다가 2004년 대아건설을 합병했다.

대우종합기계는 2005년 두산 계열로 편입, 두산인프라코어로 재탄생했으며 대우조선공업은 대우조선해양으로 사명을 변경, 2012년 국내 조선업계 수주 실적 1위에 올랐지만 현재까지도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대우중공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현대정공, 한진중공업과 함께 통합법인 한국철도차량을 설립했다. 이후 한국철도차량의 지분이 2001년 현대자동차에 전량 매각되면서 지금의 현대로템이 설립됐다.

대우전자는 지속적으로 규모를 줄이다가 2002년 말 주력사업부문이 대우모터공업으로 양도됐고 이 회사는 2003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했다. 채권단이 경영정상화를 위해 2005년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 가격과 매각 조건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줄줄이 무산되다가 2013년 2월, 8년 만에 동부그룹 품에 안겼다.

대우그룹 해체 전 채권단에 인수된 대우증권은 대주주가 한국산업은행으로 변경됐다가 2009년 한국산업은행 민영화에 따라 새롭게 출범한 KDB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다이너스카드클럽 코리아는 2001년 8월 현대자동차에 매각되어 현대카드로 탈바꿈했으며 대우캐피탈은 아주그룹으로 편입되어 아주캐피탈로 사명을 변경했다.

41조원대의 분식회계와 이를 통한 10조원대의 불법 대출과 재산 은닉 혐의를 받던 김 전 회장은 외국을 1999년 10월18일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준공식 참석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춘 뒤 해외에서 낭인 생활을 했다. 독일과 베트남, 프랑스 등지에서 지내던 김 전 회장은 2000년 이후 대우차 노조가 체포결사대를 조직하고 수배에 나서자 모로코와 수단 등지로 계속 숨어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3월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오른 김 전 회장은 2002년 한국 여권의 유효기간이 만료됐지만 1987년 가족들과 함께 취득한 프랑스 국적을 이용, 세계 각지를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5년8개월간의 해외 잠행 생활을 마치고 2005년 귀국한 김 전 회장은 바로 철창 신세를 졌다. 이후 심장질환 등 건강 악화로 한 달여 만에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징역 8년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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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 마지막 특별사면으로 사면 복원됐던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구명 로비의혹 수사 과정에서 추징을 피하기 위해 1000억원대 재산을 숨긴 혐의로 2008년 9월 불구속 기소돼 징역1년6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김 전 회장의 부실 경영으로 인한 대우그룹 해체는 국가 경제를 흔들었다. 정부는 대우그룹을 살리려고 약 3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41조원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30조원의 혈세 대부분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런데도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은 그대로 남아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빈털터리’지만 김 전 회장과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업계에서 김 전 회장의 재기론이 끊임없이 나도는 이유다.

김 전 회장은 2008년 사면 이후 2009년 2월 고 김수환 추기경 빈소를 찾은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대우그룹 창립 42주년 기념행사에 모습을 참석하더니 같은 해 10월 열린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창립총회에서는 육성이 담긴 영상편지는 대우 전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2010년과 2011년, 대우그룹 창립 기념행사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 김 전 회장은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면서 매일 골프를 즐기는 등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에 위치한 대우재단빌딩, 이 빌딩 8층에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에는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외에도 대우로지스틱스,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입주해 있다. 사진=한종해 기자

현재 김 전 회장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실질적인 운영과 자금을 지원하는 해외 청년 취업프로그램 ‘YBM(Global Young Businessman for Vietnam)’을 이끌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직계 가족들은 기업의 대주주이거나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다. 김 전 회장의 부인인 정희자씨는 아트선재센터의 관장을 맡고 있으며 차남인 선엽씨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아도니스CC의 대주주를 맡고 있다. 2005년 아도니스CC 대표이사에 취임한 선엽씨는 2010년 이경재 이사를 대표이사로 올린 뒤 등기 임원에서 빠졌다. 삼남 선용씨는 베트남 하노이의 반트리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장남 선재씨는 1990년 미국유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관장으로 있는 아트선재센터. 사진=한종해 기자

김 전 회장의 외동딸 선정씨는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을 지냈고, 지금은 수석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로 활동했고, 2012년에는 광주비엔날레 공동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특히 선정씨는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의 안사람으로서 이수화학 지분 3.8%와 이수페타시스 지분 6.5%를 보유하고 있다. 선정씨의 주식보유액 가치는 216억원에 이른다.

매년 빠짐없이 창립 기념식을 열고 있는 옛 ‘대우맨’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우렁차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관장으로 있는 아트선재센터. 사진=한종해 기자

대표적 인물이 장병주 전 ㈜대우 무역부문 사장이다. 대우그룹 사태의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을 받다 지난 2007년 12월 사면 복권된 장 전 사장은 지난 2011년 대우세계경영연구회 회장을 맡아 세계경영의 재평가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1976년 대우그룹에 입사한 뒤 지난 30여 년 동안 ‘대우외길’을 걸어왔던 이성 전 대우일렉트로닉스 사장은 대우일렉이 동부에 인수된 후 약 1년간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았으며, 선임됐으며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중심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1980년 대우그룹 입사 후 대우밥만 먹은 정통 대우맨이다.

진실 밝혀달라는 그의 진심

김 전 회장은 2014년 8월26일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김 전 회장은 다음날 열린 제45회 대우포럼에서 “잘못된 사실은 바로 잡아야 한다. 과연 대우 해체가 합당했는지 명확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추징금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질타를 받았다.

전두환 추징법’이 2013년 7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공무원이 불법 취득한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늘리고 추징 대상을 제3자로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전두환 대통령은 ‘만세’를 불렀고 범위를 일반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김우중 추징법’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법은 국회를 통화하지 못했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김 전 회장의 가족들의 ‘개인 금고’는 지켜지게 됐다.

 

<대우그룹은?>

▲1967년 대우실업 설립
▲1970년대 영진토건, 대우전자, 한국기계, 옥포조선소, 새한자동차 인수
▲1980년대 대우전자, 대우증권 설립, 그룹회장제 도입
▲1993년 세계경영 이념 선포, 해외시장 본격 진출
▲1998년 재계 2위(자산기준) 도약
▲1999년 쌍용자동차 인수
▲1999년 8월26일 워크아웃 선언, 대우그룹 해체

한종해 기자  hjh@f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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